“정부는 중복기능 해소와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술보증기금(기보)을 통폐합하려 하고 있다. 한편에선 한국개발펀드(KDF)를 설립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중복기능을 하는 기관을 새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더구나 KDF의 전대(On-lending) 방식은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도 아니고 중소기업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책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갖고 있는 문제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없고 구조개편을 위한 정치적 논리만 무성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면, 오히려 신보·기보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구자군(44) 금융노조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은 22일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구 위원장은 "신보와 기보의 기능을 강화해야 하다는 주장은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말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큰 방향이 세워진다면 그에 따른 구조개편은 논의할 수도 있다”면서도 “지금은 갑과 을이 바뀐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보다는 KDF를 설립하기 위해 중소기업 정책을 바꾸고 있는 실정이라는 설명이다. 신보와 기보의 통폐합도 그런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구 위원장의 인식이다.

KDF가 수행할 예정인 온-렌딩 지원방식은 정부기관이 민간 금융기관에게 자금을 대출(전대)하면, 민간 금융기관이 지원대상을 심사·선별하는 간접지원제도다. 그렇지만 온-렌딩 방식의 중소기업 지원은 중소기업별 주거래은행제도(독일)가 정착돼 있거나, 벤처캐피탈(미국)이 활성화돼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소기업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간 금융기관들이 심사·선별을 할 경우 중소기업에 대한 효율적 지원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해 구 위원장은 “신보·기보 통폐합이나 온-렌딩 방식은 말만 그럴싸하게 들릴 뿐이지 내용을 조금만 살펴봐도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며 “정부가 진정성이 있다면 관련 전문가들이나 노조와 논의를 갖고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결정한 뒤 구조개편을 논의하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 기보와의 통폐합 저지투쟁이 최근 KDF 설립 반대투쟁으로 전환된 듯하다.

“현재 금융공기업 구조개악 저지투쟁을 하고 있다. 통폐합 저지에서 최근에는 KDF 설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동조합인 만큼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게 핵심이긴 하지만, 우리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나라 경제의 근간인데, 정부는 그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도 내놓지 않고, 통폐합이나 KDF 설립만을 얘기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후에 구체적인 대책들을 내놓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이다.”

- 신보·기보 통폐합이나 KDF 설립이 중소기업 육성책이 아니라는 말인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진정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라면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정책을 구상하고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통폐합이나 KDF 설립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정부 정책은 산업은행 민영화나 KDF를 만들겠다는 상수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가며 다른 정책을 입안하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경제논리에 따라 금융공기업을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논리·목적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신보·기보의 통폐합이 중복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보와 기보가 지난 89년 분리되면서 중복기능을 수행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통폐합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두 기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동안 노력을 통해 중복기능을 해소했다. 현재 중복보증은 올해를 기준으로 기보 입장에선 전체 보증액 중 3.3%, 우리 입장에서는 1% 수준에 불과하다. 2005년에 특화 정책을 펴면서 중복기능을 거의 다 없앴다. 또 3년 전 기보는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중복기능과 비효율적인 부분을 스스로 없앴다. 중복보증 비율도 의미 없는 수치가 된 상황이고 자체 혁신도 진행했는데, 불과 3년만에 다시 통합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 자금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KDF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KDF 설립은 경제적·정책적 모든 부분에서 모순투성이 정책이다. 정부는 중복기능을 해소하기 위해 신보·기보 통폐합을 한다면서, 한편에선 KDF를 만들어 같은 일을 하는 또 하나의 기관을 설립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정부가 밝힌 효율성, 즉 금융공기업 구조개편 방안과도 모순이다.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정당성 논리를 세우기 위해 국책금융기능을 KDF에 맡기겠다는 것인데, 다시 산업은행에 위탁·운영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그것도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논리와 모순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KDF를 통한 중소기업 육성책이 우리나라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다. KDF의 온-렌딩 방식은 중소기업이 아닌 지원을 중계하는 민간 금융기관만 살찌울 것이다. 또 우량기업에만 지원이 집중돼 중소기업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 온-렌딩 방식은 민간기관에서 중소기업 대출업무를 하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정부 인식을 반영한 것 같다.

“정말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의 핵심은 대출 여부나 대출금액보다는 각 기업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후, 지금은 어렵더라도 지원을 통해 육성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전문성 없이 겉만 보고 판단할 경우 지원할 곳을 지원하지 않아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반대로 지원하지 않을 곳을 지원해 부실률을 높일 수 있다.

신보 직원들은 하루에 최소 5개 이상의 중소기업 사업장을 방문해 관련정보를 보고 듣고 판단한다. 반면 은행은 체크리스트 한 장 들고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어느 기관이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인지는 비교해보지 않아도 분명하다. 특히 신보에서도 온-렌딩과 비슷한 위탁보증제도를 도입했다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부실률이 평균 5%에서 3배 이상(15~20%) 증가했다. 은행이 전문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중소기업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중계 민간 금융기관만 살찌운다는 지적은 무엇인가.
 
“신보는 중소기업을 지원·육성하는 국책금융기관이다. 그렇지만 은행 등 민간금융기관은 수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온-렌딩 방식은 국책기관이 낮은 이자로 은행에 자금을 대주고(전대), 은행은 좀 더 높은 이자를 받고 중소기업에 돈을 대출하는 방식이다. 은행은 중계만 해도 이자 차이로 인한 수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부실이 발생할 경우에는 정부가 일정부분(약 50~80%) 상환을 면제해준다. 신보는 국책기관인 만큼 수익이 나면 그 자금도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사용하지만 민간 금융기관은 그렇지 않다. 한편에서 은행은 수익성을 증시하기 때문에 일정부분 상환을 면제해준다 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우량기업에만 대출을 할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육성이라는 정책목표도 우량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달성할 수 없다. 특히 앞서 지적했듯 은행이 중소기업을 심사할 만한 전문성을 갖추지도 못했다.”

-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신보는 32년 간의 노하우를 축적한 중소기업지원 전문국책기관이다. 베트남과 멕시코 등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해 수입하고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 이미 존재하는 전문집단을 더 활용하지 않고 새 기관을 설립하는 것만이 좋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학자들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특히 그 새로움이 공공성을 해치고 중소기업 지원을 더 부실하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변해야 한다면 변하겠지만, 그것은 정부 말대로 더 효율적이고 중소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보·기보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지부는 현재 구조개악 저지 투쟁본부를 설치하고 전직원이 투쟁조끼와 리본을 착용하는 등 투쟁의지를 다지고 있다. 잘못된 정부정책을 바로잡고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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