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최고경영자 지위까지 올랐다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옆 나라인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 추세도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과 경영, 둘 다를 이해하는 것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상생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면 은행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제에게 주어진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금융호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우리금융지주와 산하 은행 최고경영자가 공식 취임했다. 이번 최고경영자 인선에서는 노조위원장 출신 첫 은행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난 27일 광주은행장에 선출된 송기진(56)씨가 바로 그다.

은행권 노동계도 관심을 보였다. 노조위원장 출신이 부행장급 임원으로 선출됐던 적은 있으나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에게 집중되는 시선도 많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고경영자 되겠다”

송 광주은행장은 1일 "노조위원장 출신 첫 최고경영자가 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노동운동을 하는 후배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능력을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노조위원장 출신 최고경영자라고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송 은행장은 노동과 경영을 모두 아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사람(노동)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협력하고 타협할 때 나올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운 조직운영 방침도 ‘강화의 원리’다. 다그치기보다는 격려하고, 벌을 주기보다는 칭찬을 하자. 그것이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때문에 그는 5대 경영방향 중 하나로 'JOY & FUN 경영'을 내세웠다. 먼저 직원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일해야만, 고객들도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철학이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고 설명했다. 그가 노조 간부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이다. 벌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1년 옛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행한 후, 노조 조직국장과 상임부위원장을 거쳐 84년부터 4년 동안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72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총학생의장을 맡으면서 유신철폐 운동을 하기도 했다. "억압당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했다. 노조 활동도 학생운동 연장선상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다 보니 총학생의장과 노조위원장도 맡게 된 것이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훈련된 노조위원장, 훈련된 경영인으로

그는 "훈련된 노조위원장"이라고 회고했다. 선배들로부터 노조활동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모든 활동에 충실했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상업은행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최초로 '출산휴직제'를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출산·육아휴직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20년전에 이같은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노조 여성부장만 여기저기 인터뷰하러 다니느라 바빴죠"라며 웃어넘겼다. 당시 노동계는 물론 여성계에서도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느냐라고 질문하자 "조합원들의 노력한 결과"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노조활동을 하던 시기는 5공화국 군부독재 정권시기. 노조나 재야활동에 대한 탄압이 서슬 시퍼렇던 시절이다. 그는 "은행권은 다른 산업보다 노조활동을 상대적으로 편했지만 당시에는 노조활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 체계로 바뀌면서 단결력도 줄어들어, 강압적이던 분위기에 맞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했던 시절"이라고 떠올렸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그는 지금은 훈련된 경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최선을 다했다”며 “조직 구성원(직원)들이 합심해서 함께 뛰어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친화력, 노조에서 배웠다”

그동안 시대도 많이 변했다. 그는 노조위원장직을 정리한 후 지역 지점장을 거쳐 우리은행 영업지원단장, 우리은행 부행장 등을 역임하면서 경영인으로서 역량을 쌓았다. 그때와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는 "노조는 단결력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조직화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내가 영업 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마케팅을 하면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 노조활동을 하면서 배웠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정성을 다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조직화의 기본이라는 설명이다. 또 그는 "대화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노사 관계는 결국 타협을 위한 과정"이라며 "노조위원장을 역임할 때도 경영진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거나 조합원들의 뜻과 어긋나는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노조 간부들이 강한 것과 과격한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조합원들의 뜻을 모으고 동의를 얻어 행하는 것은 강한 것이지만, 노조 간부들이 자신이 가진 권한을 넘어 행하는 것은 과격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만큼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38년을 은행원으로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은행원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은행 간 인수합병, 외환위기 등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도 많았다. 그는 “살면서 가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함께 노력해주고 성과가 날 때마다 보람을 느끼면서 한 길을 걷게 됐다”며 “이제는 최고경영자로서의 나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후배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터를 닦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의 좌우명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命)'이다. 우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하면 길이 생기고,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신조를 일생을 살았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다음은 하늘의 뜻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그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노조와는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나갈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모든 사항들에 대해서 뜻을 같이할 순 없더라도 끊임없이 만나서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또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겨진 광주은행 민영화에 대해서도 "정부·주주·지역민·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시켜 최대공약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노사관계가 안정돼야 사회가 안정되고, 회사가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며 "훌륭한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배출되고, 최고경영진 등 다양한 사회참여가 보장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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