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철(40)씨는 지난 20일 예순이 넘은 고모가 사온 생일케이크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인 전씨는 열 달이 넘게 여의도 코스콤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그의 나이 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고모는 어머니나 다름없다.

“그렇게 말렸는데 불편한 무릎으로 제 얼굴 한 번 보신다고 오셨어요. 약해질까봐 그러셨는지, 끌어안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무시더라구요.”

전씨는 지난 91년 코스콤(옛 증권전산)에 입사했다. 97년부터는 위장도급 논란이 된 증전엔지니어링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8년 전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를 보내기 전까지 낮에는 병간호를 하고 밤에는 코스콤에서 시설관리업무를 했다. 17년을 근속했지만, 그의 연봉은 2천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26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씨는 지부에서 ‘철인’으로 통한다. 2년 전부터 철인3종경기를 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콤사태가 터지고 천막농성에 들어가면서 무려 열 달을 쉬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국제 트라이애슬론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대회를 위한 준비기간은 열흘이 고작이었다.

“준비를 제대로 안하고 대회에 참가했다간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어요. 그동안 운동을 못해 몸무게가 불었고, 준비기간도 짧아 두려움이 컸죠.”

그가 도전한 올림픽코스는 일반인도 참가할 수 있다지만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완주해야 한다. 별다른 준비도 못했는데 무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코스콤을 포함해 비정규직 투쟁을 알리고 싶어 있는 힘껐 뛰었다”고 말했다.

대회 당시 전씨의 가슴과 등에는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라는 몸벽보가 선명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관중들은 "비정규직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이런 목소리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철인3종경기는 끝까지 버티고 완주해야 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과 비슷합니다. 대회 완주를 하고 나니까 조합원들이 ‘수고했다, 잘했다’고 말하더라구요. 동료들에게 끝까지 버텨보자는 메시지를 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그의 도전은 두 가지다. 20년 가까이 일해온 코스콤에 직접고용되는 것과 철인3종경기 아이언맨코스에 도전하는 것이다. 철인3종경기 아이언맨코스는 수영 3.9㎞,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를 달리는 경기다. 모든 코스를 17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17시간 동안 교통통제를 감당할 곳이 없어 제주도에서만 단 한 번 열렸다고 한다.

“KTX 여승무원들도 기륭전자 동지들도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만의 싸움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회가 된다면 아이언맨코스에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30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