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8주년이 되는 올해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은 그저 답답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지난 5월10일 평양에서 북핵 관련 자료를 들고 판문점을 넘어오는 성김 미국무부 한국과장 일행을 보면서 답답함은 더해갔다.
 
답답하게 거꾸로 가는 남북관계

곧이어 나온 미국의 50만톤 식량제공, 그리고 테러지원국 해제 추진 등 북미관계는 눈 녹듯이 가까워져 가고 있는데 남북관계는 더 꼬여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일본인 납치문제로 평행선을 달려온 북일 간의 대화 또한 6월11일부터 베이징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같은 열기는 ‘북일국교정상화그룹회의’를 기점으로 진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유독 이명박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은 지난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경색국면을 맞아 국제사회에서 대북문제의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다.

'무조건 반대' 정책의 산물

이명박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은 이미 대선 전부터 그 방향성이 일부 감지되었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ABR : Anything But Roh) 정책으로 일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축적되어 온 남북관계와 민간부문의 화해와 협력은 소수 정치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대중적 동의와 지지 그리고 참여 속에서 축적되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결여, 일방적인 지원, 대북 저자세 등을 비판하며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기본방향으로 정하면서 지난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우선시하고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제시하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더해 통일부 장관의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사업 확대 어렵다”, 합참의장의 “선제타격” 발언과 정부가 납북자 및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급기야 남북관계는 불안한 긴장국면을 넘어 격한 대치상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대선 이후 언급을 자제하던 북측이 각종 매체를 통해 “역도”, “반통일적, 반민족적”, “잿더미”, “친미굴종의 산물” 등 그 어느 때보다 격한 표현을 하는가 하면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강제로 철수시켰다.

더 늦기 전에 대북 통일정책의 대전환을

새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 기조로 야기된 남북 당국 간 대치상태를 바라보는 일부 지지론자들은 현 정부가 북측의 비방과 남북관계의 냉각에 대해 차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 정책기조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자들도 정권초기 강경자세에서 말 바꾸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은 후보자 시절, 당선자 시절, 대통령 취임, 한미정상회담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의 대북 강경정책에서 포용정책에 충실한 총론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아직도 냉전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널뛰기 대북 통일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지난 5월27일 ‘6·15공동선언 8주년 새 정부의 통일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개최한 통일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새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 점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서 지적된 새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의 문제점은 △북핵 폐기와 남북관계 발전을 연계시킴으로써,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 추진한다는 6자회담의 국제적 합의 정신을 위반했으며 △UN총회에서 지지결의까지 받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전면 재검토는 신의성실 원칙의 위반이자 국제법 위반이고 △남북관계의 모든 창구를 단절, 파탄시키고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일본에 넘겨줌으로써 그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북측 인권문제를 직접 거론함으로써 국제사회와 함께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북 통일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미 깊게 받아 들여 더 이상 실용의 잣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 인식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전면적인 대북 통일정책의 재검토와 전환이 필요하다.

관계개선에 남북당국 함께 나서야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달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6자회담 재개, 북·미·일 관계개선은 훈풍 속에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

급변하는 주변 정세 속에서 방관자로 전락하지 않고 주역으로 서기 위해서는 과거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을 무조건 단절하기 보다는 잘된 부분을 확대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또 국제관계에서 현실적으로 미일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해도 민족공조와의 균형적인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북측도 더 이상의 감정적인 대응보다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민족적 명제를 깊이 인식하고 당국간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 했던가. 이번에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회의 “민족공조! 조국통일!”의 함성이 통일의 비가 되어 남과 북을 촉촉이 적셔주기를 기대해 본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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