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산업·업종 탐구’로 노동언론의 관심을 산업의제까지 확장한 데 이어 무자년 연중 기획으로 ‘현장을 가다’를 준비했습니다. 산업과 업종을 막론하고 생산·제작·운반·유통·서비스·판매 등 노동의 현장을 찾아 ‘현장의 땀방울’을 지면에 담아내려고 합니다. 매주 월요일자에 게재합니다.<편집자>
 
 
 



<매일노동뉴스가>가 충남 보령화력발전소를 방문한 지난달 28일. 귀가 따가울 정도의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기력 3·4·6호기와 달리, 5호기는 동력장치(터빈)와 발전기(제너레이터)가 속을 드러낸 채 분해돼 있다. 계획예방정비공사(Overhaul)를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5호기는 45일 간 대수술을 받게 된다. 수명이 끝난 부품은 교체하고 수리 가능한 것은 용접 등의 작업을 거쳐 재부착된다.

5호기 내부는 크레인 움직이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바로 옆 사람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사람 손으로는 들어올릴 수 없는 부품을 크레인을 이용해 이리저리 옮겼다. 한 개의 발전소는 대략 20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부품 중 작은 편에 속하는 너트 한 개의 무게가 1톤에 달한다. 큰 것은 10톤이 넘는다.

한전KPS(주) 직원 30여명이 옮겨진 부품을 꼼꼼히 살피며 마모된 부분은 없는지, 교체해야 할 것은 없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한전KPS는 국내 발전소 정비를 도맡아 하고 있다. 정비는 보통 계획예방정비공사와 경상예방정비공사로 나눌 수 있다. 계획예방정비공사는 한 호기당 1년 내지 1년 6개월에 한 번 진행한다. 운전 상태와 성능을 점검, 사전에 고장을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상예방정비공사는 발전기에 이상이 생겼거나 시급히 점검이 필요할 때 신속히 복구해 정상 가동시키는 작업이다. 주로 전력소비가 적은 야간에 작업이 진행된다.
 




작은 구멍·150미터 높이에 위치한 작업장

보령발전소에는 석탄을 활용해 발전을 하는 기력발전기 6개(1호~6호기)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원료로 하는 복합발전기 8개(1호~8호기)가 가동되고 있다. 기력 7호기의 경우 오는 30일 준공된다. 현재 시운전이 진행되고 있다. 8호기는 올해 연말 완공된다. 보령발전소는 전국에서 생산용량이 가장 큰 곳이다. 8호기까지 완공될 경우 전체 용량이 5천800메가와트(M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호기는 보일러 건물과 발전기 건물로 구성돼 있다. 5호기와 같이 계획예방정비공사가 진행될 경우 전국에 분포돼 있는 직원들이 파견된다. 상시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석탄이 이동하는 관부터 보일러·굴뚝·터빈·제너레이터·환경정비기계 등 전기생산에 필요한 모든 부분이 점검 대상이 된다.

발전소 작업 과정은 이렇다. 석탄이 부려져 있는 야적장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석탄분쇄기로 옮기고, 보일러를 가동해 물을 가열한다. 수증기 압력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고, 이 힘으로 제너레이터를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며 한전KPS 직원들의 작업현장을 살펴보자. 높이가 겨우 1미터 남짓 되는 석탄이 통과하는 관에 직원 5~6명이 직접 들어가 일한다.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고 잔해물을 청소한다. 이규장 한전KPS노조 보령지부 부위원장은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를 써도 온몸이 석탄가루로 뒤덮인다”며 “얼굴은 까맣게 변하고 마스크를 벗으면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팀은 석탄분쇄기에 투입됐다. 석탄을 분쇄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계다. 1미터가 넘는 3개의 대형원형 모터가 돌아가면서 석탄을 분쇄한다. 2톤가량 되는 모터를 분리해 마모 정도를 점검하고 교체 여부를 결정한다. 석탄분쇄기 정비 경험만 10년이 됐다는 한재학(51)씨는 “대형기계를 정비하는 작업은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한다”며 “작업을 마치고 퇴근할 때가 되면 힘이 빠지고 멍해진다”고 토로했다.

한쪽에서는 대형보일러 점검이 시작됐다. 16층 높이의 보일러 벽에는 작은 관 모양의 튜브가 부착돼 있는데, 이 튜브가 찢어질 경우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먼지 제거도 병행된다. 이를 위해 층별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지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떨어질 수 있는 아찔한 곳이다.

굴뚝정비는 필수작업이다. 굴뚝에는 입구에서 공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FD펜과 굴뚝 끝에서 연기를 뽑아내는 ID펜이 있는데, ID펜 점검을 위해서는 150미터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야 한다. 최근 건설된 7호기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발전소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환경설비에 대한 점검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환경기준이 강화되면서 환경관련 설비가 늘고 있다. 석탄먼지를 모으는 집진기, 먼지가 공기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습식처리하는 펌프, 매연저감장치, 황 제거장치 등이 있다.







터빈·발전기 정비 최강자

발전기 건물은 5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는 전기실과 주급수펌프, 2층에는 가열기 등 보조설비, 3층에는 발전의 주동력인 터빈과 제너레이터가 있다. 4층은 운전본부 등 사무실이 위치해 있고, 5층에는 급수탱크와 고온스팀이 있다.

전기실 점검은 전기팀 몫이다. 전기설비는 두 개 호기가 함께 있는데 보통 6천900볼트의 전기가 흘러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핵심은 터빈과 제너레이터다. 직원 5~6명은 발전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터빈 개보수 작업을 한다. 터빈 개보수 작업에는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보통 경력이 20~30년 정도 돼야 터빈파트를 맡을 수 있다.

“한전KPS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터빈·제너레이터 정비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죠. 현재 3·4호기는 외주업체가 관리하는데 이 부분만은 한전KPS에 의존합니다. 과거 외국정비업체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100% 자체기술로 진행하고 있어요.” 김중걸 한전KPS노조 보령지부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급수탱크의 경우 60~70센티미터 남짓한 통로로 직접 들어가 정비작업을 진행한다. 바로 옆에는 물을 데우는 고온스팀이 있다. 여기서 발산된 스팀열로 발전기 건물 전체가 숨이 막힐 정도다. 찜질방이 따로없다. 선풍기 두세 대가 쉼 없이 돌아가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분진·소음·피폭·고온, "견딜 수밖에"

전국 발전소의 모든 정비·관리는 한전KPS의 몫이다. 다양한 업무만큼이나 노동환경도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일이 쉬운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게 직원들의 얘기다. 석탄 분진으로 인한 진폐증 위험에 노출돼 있고, 대형기계를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 많아 협착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현장 곳곳에는 배관 단열재에 사용된 석면도 눈에 띄었다. 현장 관계자는 “배관의 열을 잡기 위해서는 석면사용이 불가피하다”며 “보관·취급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엄청난 소음을 견뎌야 한다. 소음강도가 95데시벨(dB)이 넘기 때문에 4시간 이상 작업 진행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조속한 가동을 위해 규정된 시간을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시로 진행되는 경상정비의 경우 100도(℃)가 넘는 보일러 안에서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7천볼트 가까운 전류가 흐르는 전기실이 이들의 작업장이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정비는 어떤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작업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자신뿐 아니라 전체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정도 진행되는 핵연료 교체작업과 수시로 해야 하는 일상정비로 나뉜다.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피폭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국제기준을 준수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1년에 1천250밀리램 이상 피폭을 받을 경우 출입이 금지돼 있다. 별도의 생명수당은 없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20여년 근무했다는 구능모 한전KPS 기술기획팀장은 “지난 7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TMI 2호기에서 기기고장과 운전원의 실수가 겹쳐 발생한 원자로심 용융사고로 인해 미국은 30년 간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았다”며 “원자력발전소 정비는 그만큼 위험하고 주의가 필요한 작업으로 경쟁이나 효율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위험한 작업들이 많다보니 전문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한전KPS 직원들은 한 현장에서 보통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들이다. 4~5개 정도의 국가자격증은 보통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공기업 사유화 방침으로 인해 직원들의 심적 동요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장직원들은 정부 방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마음이 붕 떠 있어요. 사유화될 경우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죠. 무엇보다 사고위험이 높아질 겁니다. 지금까지 공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는데….”
 
 

석탄과 가스가‘전기’로 재탄생하기까지
우선 석탄이나 가스를 활용해 물을 가열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린다. 이어 제너레이터의 회전으로 이어지고,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다. 기력발전소는 석탄을 원료로 한다. 유연탄이 사용되는데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아 외국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국내 석탄은 무연탄으로, 이를 사용하려면 별도로 석유를 첨가해야 한다.
 

복합발전소는 가스를 원료로 한다. 원료가 다르다는 것을 빼면, 발전방식에서 기력발전소와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규모면에서 절반에 불과하다. 수입된 LNG를 평택기지에서 보령까지 공급받는다.
 

기력발전소의 한 호기당 생산할 수 있는 용량은 1시간당 50만킬로와트(kWh)다. 1천600가구에서 한 달 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반면 복합발전소의 경우 한 호기당 15만킬로와트를 생산한다.
 

기력발전소의 경우 원가가 저렴한 반면 가동하기까지 8시간이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복합발전소는 원가가 비싸지만 전기가 생산되기까지 불과 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연료당 발전량이 높아 주로 한여름 전력사용량이 많을 때 집중 가동한다.

 

한전KPS는 수·화력발전소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정비에 있어 국내 최고봉에 올라 있다. 과거 외국정비사의 지도를 받았지만 현재는 자체정비기술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GT정비센터를 설립해 가스터빈 수리기술 확보에도 성공했다.
 

자체기술을 갖기 전에는 고장날 경우 싱가포르로 이동해 수리를 하곤 했다. 엄청난 비용 감소효과를 본 것이다. 발전소 기계 대부분이 해외제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다. 특히 터빈과 제너레이터, 회로설비와 무정전설비 기술은 따라올 곳이 없다. 원자력발전소 정비 기술자립도도 97%에 달한다.
 

일부 업무에 대해 외주화를 하고 있지만, 핵심 기술만은 한전KPS가 담당하고 있다.
“발전단과 계약할 때 ‘경쟁업체에 기술이전’ 조항이 포함돼 있어요. 불공정 계약이죠. 결국 경쟁자를 키워 경쟁하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정부의 무원칙한 경쟁방침은 한전KPS의 경쟁력, 나아가 한국 발전정비 기술경쟁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KPS는 베트남·인도·파키스탄·아프리카 등에서 일본 도시바와 프랑스 알스톰을 제치고 발전소 정비공사 수주를 따냈다. 최근에는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에 계획예방정비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발전소 시운전까지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1억달러의 수주를 달성했다. 기술력 자체가 국가자산인 셈이다.
 

이대형 한전KPS노조 보령지부 위원장은 “외국업체들이 한전KPS를 선호하는 이유는 저렴한 비용과 높은 기술력·성실함 때문”이라며 “외국에서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업체들의 경우 부품 교체율이 높은 반면 한전KPS의 경우 수리를 우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등 세계 발전소의 수명은 20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0년을 넘기고 있다. 가동률도 세계에서 가장 길다. 고장으로 인해 정지된 시간이 가장 짧다는 것이다. 정비기술이 발달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들려오는 정부의 공기업 사유화 방침에 한전KPS가 뒤숭숭하다. 인력이 재산인 한전KPS를 사유화하는 것은 ‘인신매매’와 다름없다고 아우성이다. 박찬희(53) 한전KPS노조 위원장은 “사유화를 강행할 경우 지방이전과 경쟁업체에 대한 기술이전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미 이전 예정지인 나주시에도 통보한 상태다. 정부의 사유화 방침이 발표되는 즉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도 밝혔다.
 

“사유화할 경우 정비비용 상승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민간업체의 경우 수익극대화를 위해 교체를 선호하죠. 그러나 한전KPS는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리를 통해 비용을 절감합니다.”
 

박 위원장은 과거 민영화됐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시행착오를 또 겪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이 정비업무를 보수공단으로 분리한 적이 있었는데, 98년께 공단을 한국중공업에 매각했다. 그러다가 정비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전이 정비업무를 또다시 매입, 한전 보수공단으로 편입된 바 있다. 이후 한전 자회사가 된 것이다.
그는 “사유화할 경우 해외업체들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전력 운전까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비부문이 민간에 넘어갈 경우 운전까지 점령당하는 일이 외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렵게 쌓은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자력의 경우 절대 민간에 넘길 수도, 넘겨서도 안 되는 작업입니다. 정부의 방침대로 효율성을 추구할 경우 다시 기술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습니다. 민간업체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개발을 하겠습니까.”
 

실제로 제조업체인 두산중공업의 경우 93년부터 정비시장에 눈독을 들였지만, 기술투자에 소홀해 시장진입에 실패했다.
 

반면 한전KPS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 직원들의 기술력 향상이 곧 경쟁력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체 직원 87%가 3~4개의 국가자격증을 소유하고 있고, 자체 자격증제도도 활성화돼 있다. 기술특허만 686건을 보유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경제살리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기업을 팔겠다는 발상에 어처구니가 없다”며 “오히려 기술력을 보존하고 적극 지원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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