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현장을 돌겠습니다. 비정규직 문제와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 산별노조에 대한 답도 현장에서 찾을 생각입니다.”

변재환(51)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노조 위원장이 지난 22일 금속노련 위원장에 당선됐다. 변 위원장 당선자는 27일 여의도 한국노총 9층 연맹 회의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게으른 대기업노조 출신'이라는 쓴소리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별 노사관계에 익숙한 LG 출신이 산별노조라는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기엔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었다고 했다.

“요즘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시끄럽죠. 정부 당국자들이 쇠고기 협상을 하기 전에 축산 농가를 한 번 찾아보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노동운동도 현장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현장을 도는 1년 동안의 행보로 당선 전부터 쏟아진 우려를 ‘희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당선을 축하한다. 대의원들이 변 위원장을 선택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연맹은 2년 전에 치열한 선거전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단위사업장들이 분열됐다. 이번에는 단독 입후보한 만큼 통합의 정신으로 잘하라는 뜻에서 조합원들이 선택했다고 본다. ‘변재환’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누군지 모른다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역을 순회하면서 이 사람이면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하고 조합원들이 생각했던 것 같다."

- 장석춘 전 연맹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가면서 실시한 보궐선거였다. 단독 입후보했는데도 낮은 찬성률(78.6%)을 기록했다는 평가도 있다.

"연맹 사업장 가운데 열에 아홉은 중소·영세사업장이다. 대기업노조도 LG도 싫으니 다른 사람이 나와서 경선했으면 좋겠다는 여론도 있었다. 중소·영세업체 노조의 불만을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화기계공업사라는 업체에서 일했다. 베어링에 녹이 슨 걸 기름에 담가 녹을 떨어뜨리는 작업을 했다.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 선거기간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을 텐데, 현장에서 받은 느낌은.
 
"많은 질타를 받았다. 또 LG출신이냐, 대기업노조냐 하는 얘기였다. 연맹을 위한 활동을 한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연맹 위원장에 출마했냐는 쓴소리도 들었다.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LG전자노조 구미지부 조합 설립부터 지금까지 단위사업장에서만 활동했다. 연맹 위원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단사에서 일한 것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설득했다."

- 금속노련은 올해 11월까지 산별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노조의 힘이 커지고,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별노조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맹 안에서도 아직도 긍정과 부정의 목소리가 모두 존재한다. 어렵지만 한 번 가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극구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올해 당장 산별노조를 설립하느냐, 좀 더 두고 볼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보면서 산별에 대한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가도 파악해야 한다. 여러 부분을 고려하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 노동운동이 정규직 중심이라는 비판이 있다. 특히 제조업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대기업노조 임금을 자제하라고 했다. ‘자제’를 ‘동결’로 표현한 기사들이 많았다. 그런 기사를 놓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위원장이 동결한다고 했는데 무슨 임금인상이냐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노동운동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심각해진다. 대기업들이 임금을 자제하고 거기서 생긴 부분으로 협력업체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써야 한다. 원청 사용자들이 하청업체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상생의 정신이 필요하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

- 한국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보나.

"노사관계는 신뢰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LG의 경우 외국 투자자들이 회사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노조에 온다. 외국 투자자와 차 한잔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장을 만나기 전에 노조위원장을 만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 LG디스플레이는 경영성과를 분기별로 공개한다. 투명한 경영을 하면 노조도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신뢰감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사업장이 어려운데 어떻게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나. 우선 파이를 키워야 임금인상도 후생복지도 요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발전에 협조하고, 그래서 흑자가 나면 그 몫을 제대로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금속노련과 한국노총과의 관계, 그리고 정책연대에 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정책연대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책연대를 위해 ‘100’을 투자했다면 ‘200’을 받아야 한다. 노동부가 임금협상을 2~3년에 한 번씩 하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한국노총이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정책연대를 했더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86년도 구미공장 대의원이 되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바른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직장·반장들의 권위의식이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 욕을 먹더라도 권위의식에 도전했다. 12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 연맹 위원장의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 연맹 위원장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현장 중심으로 발로 뛰는 연맹이 돼야 한다. 직접 현장을 방문할 생각이다. 오전 11시에 단위사업장의 대의원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2시간 먼저 도착하겠다. 노조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듣겠다. 사실 연맹에서도 해당 사업장이 무엇을 만드는 곳인지 잘 모르는 곳이 많다. 적어도 그 사업장 매출이 얼마고 어떤 회사인지는 파악할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않지만 한번 약속한 일은 무슨 일이 생겨도 꼭 지킨다. 선거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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