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복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포함한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계획 발표가 임박하고 있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재벌 보수언론을 통해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비도덕성을 구실삼아 지속적으로 공공기관을 매도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공기업 직원에 대해 철밥통과 귀족 노동자라는 맹목적인 선입관을 가지게 됐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감사원과 검찰을 동원해 공기업 전체를 겨냥한 사정에 나섰다. 공기업들의 업무가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이 모두 부도덕하고 무위도식하면서 고액의 임금을 받고 사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볼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먼저 경영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공공기관이 하는 사업들은 주로 국민의 생명 및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사항과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익성이라는 잣대는 공공기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불합리한 것이며, 도덕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많은 재벌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과 로비, 경영권 편법 승계, 주가조작 등 이윤만을 위해 각종 비리를 저지른 데 비해 공공부문에서 발생한 도덕성 문제는 일부기관의 사례를 공기업 전체의 문제로 지나치게 부풀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판단으로 공기업을 매도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언론이 매도하는 것처럼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결코 아니다. 공공기관들이 국민의 생활과 편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는 도외시한 채 무조건 방만하다, 태만하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과 왜곡된 보도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사회 공공성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상실감과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분노를 갖게 한다. 이제까지 참아왔던 이성(理?)이 폭발 직전까지 와있다. 단언컨대 우리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언론의 일방적인 매도와는 달리 각 분야에서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본인이 근무하는 aT농수산물유통공사만 하더라도 지난 IMF 당시 공기업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7개의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고 전체 직원의 48%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었다. 떠난 동료의 업무를 메우기 위해 지난 10년 간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근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새 정부 들어 농정의 관점이 농업을 1차 산업에서 ‘식품산업’이라는 2·3차 산업으로 변화됨에 따라 aT는 이러한 농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인력을 차출해 식품사업단 구성, 선진유통팀, 직거래·공정거래지원센터 발족 등에 투입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인력을 더욱 짜내 거의 모든 직원들이 수개월째 ‘밤을 낮처럼, 낮을 낮처럼’ 하는 생활을 휴일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한 직원도 불만 한 마디 없이 국민과 농민을 위한다는 마음에 기꺼이 일하는 것을 볼 때 위원장으로서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다.

농업부문 구조조정에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어떤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지 간략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곡물가 폭등으로 식량이 무기화되는 세계적 흐름을 감안할 때 농산물 수급정책의 공공성 확보가 필수적

유엔에 의하면 지난 한 해 국제 쌀 가격은 74%, 밀 가격은 130% 폭등했다. 브라운 유엔 사무국장은 “최근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식량수출 금지조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크게 우려했다.

식량자급률이 25%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일 것이다.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해 효율성·수익성만을 기준으로 농산물 수급을 시장에 맡긴다면 자칫 외국과 민간기업에 국민의 생존권이 내맡겨질 수도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어떻게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2005년 참깨 민간수입 시 일부업체의 물량독점을 위한 담합으로 가격이 폭등해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개입해 안정시킨 사례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이에 따라 국민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고 투명한 비영리기관이 농산물 수급을 책임지는 것이 최선이다(※농수산물유통공사는 오랫동안 국영무역을 수행한 전문성, 그리고 3년 연속 국가청렴도 1위에 선정된 가장 투명한 공공기관임).

■ 식품안전이 중시되는 글로벌시대에 농·식품 수출전문 공공기관의 기능 강화 필요

이미 수년 전부터 광우병·조류인플루엔자·유전자 변형 농산물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세계적으로 식품안전이 중요시되고 있으며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조치도 강화되고 있다. 농·식품의 경우 문제 발생 시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공산품 등 다른 상품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산·포장, 운송, 검역, 마케팅 등 수출의 전과정이 공산품과 완전히 달라 프랑스·독일과 같은 선진국들도 공산품 외에 농·식품 수출전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농식품 수출전문 공공기관과 해외조직망 무용론은 농업의 특성과 중요성, 그리고 국제적 추세를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 농민과 소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유통구조 선진화에 공공기관이 적극 나서야 함

농산물은 생필품이기 때문에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미약한 데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민이 영세해 일부상인의 매점매석으로 유통마진이 무한정 확대되는 특성이 있다. 즉, 우리나라의 농업은 유통부문 민간 독과점의 폐해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은 유통구조 선진화보다는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까지 농업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물류표준화, 직거래 조성 등 유통구조 선진화를 주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과 기득권만을 위해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며, 농업·농촌의 생활을 개선하고 나아가 국민의 식량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확보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서민과 빈곤층의 생계보장을 위해 농업을 주관하는 공공기관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부와 당국자들이 새롭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업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수 없으며 환경보전·식량안보 등 다원적 기능을 가진 생명산업이다. 따라서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1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는 혜안을 제시하는 정책을 펼쳐줄 것을 부탁드린다. 국민들도 이러한 우리의 진심어린 마음을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23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