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당선자 가운데 노동계 출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17대 국회와 비교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노동계 출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초대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인 최문순(52) 당선자가 민주당 비례대표 10번으로 국회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히 연락처는 맞는데 통화에 번번히 실패했다. 최 당선자와 어렵사리 통화해보니 그럴 만했다. 쇄도하는 보좌관 청탁을 피하고자 하는 그의 ‘자구책’이었다. 이는 그의 청렴하고 깔끔한 성격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그는 과거 방송사 사장 시절에도 모든 인사권·편집권 개입을 철저히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출동’의 스타기자에서 MBC노조 위원장,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을 거쳐 이제 국회로 입성하는 그에게는 어떤 평가가 뒤따르게 될까. 지난 16일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최 당선자를 만났다.

“언론의 정치·경제적 독립 추구”

- 이제 곧 18대 국회가 시작된다. 소감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두렵다. 잘할 수 있을지 자신감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회의원은 권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하겠다.”

- 스스로 어떤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하나.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게 노동운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 있건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 ‘초대 노조위원장 출신 MBC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닌다. MBC 사장 재임기간 동안의 성과와 아쉬움을 꼽는다면.

“노동운동 시절부터 지금까지 추진했던 것은 언론의 정치적·경제적 독립이다. MBC 사장으로 있는 동안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전엔 인사권·편집권 개입도 있었으나 재임 중 한 건도 그런 일이 없었다. 경제적 독립에 대해서는 좋은 프로그램 제작 등 경영성과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공영성을 훼손했다는 평가도 들었다.”

- 정치적 독립을 이뤘다고 했는데, 사장 재임 시절 황우석 박사 관련 , 삼성 X파일 사태 때 (정권의) 눈치를 봤다는 비판도 있다.

“황우석 사태 당시엔 우군이 없었다. 회사의 존폐가 걸릴 정도로 공격을 받았고 완전히 고립됐다. 정치권 압력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두려움이었다. 삼성 X파일은 공영방송의 실정법 위반에 대한 우리 자신의 모순에 대한 문제였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민주세력이 만든 것인데 그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데 혼란이 있었다. 그래서 결정이 늦어진 것이다. 내부 조정 과정이었다. 다만, 개인의 입장과 조직의 장으로서의 위치는 달랐다.”

황우석 ‘광풍’이 불던 당시 어느 언론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MBC 역시 모든 광고가 떨어져 나가고 상당기간 재정적·정치적 고생을 할 정도로 조직 전체가 흔들렸다. 최 당선자는 "조직 자체가 흔들리면서 구성원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리더로서 말 못할 고심이 느껴진다.

“언론은 공공재다”

- 사장 퇴임 뒤 곧바로 정치권에 직행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사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해 왔는데 그걸 깬 것은 아닌가, 고민도 했다. 그동안 갖고 있던 이미지, 살아온 방식, 후배들이 바라보는 시선 등을 지우는 데 시간이 짧았다. 그렇다고 입장을 바꾸거나 정책을 바꾼 것은 아니다. 초기부터 생각했던 정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을 선택했다.”

- 그런데 왜 진보정당이 아니라 통합민주당을 선택했나.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분기점에 있다. 4년 뒤 총선, 5년 뒤 대선에서 민주당이 한 번 더 지면 우리 정치체제는 일본식으로 간다. 보수정당 전부와 사회당·공산당 급진좌파 구도 말이다. 진보정당도 중요하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민주당 방어에 쐐기를 박아서 우리나라 정치체제가 완전 보수로 가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언론의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적 독립성의 상실, 즉 재정적 위기에 있다. 언론은 공공영역에 속해야 하나 시장주의에 맡겨지고 있다. 시장주의적 관점과 뉴미디어 시대가 만나 채널이 늘어나고 소비가 분할되다보니 각각의 매체 수입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광고주의 힘이 커지면서 언론시장을 흔들어버린다. 언론인의 기본적 존엄이 유지되기 힘들 정도의 상황이 되고 결국 정치적 독립성까지 흔들리는 정도가 된 것이다. 재정난이 타개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언론에 대한 어떤 정책을 준비 중인가.

“언론의 재정난 타개를 위한 법적방안을 준비 중이다. 우선 언론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높여야 한다. 구독료·시청료 등이 너무 싸서 공짜라는 생각까지 든다. 외국에 비해 낮은 게 사실이다. 저항이 있겠지만 설득해서 비용을 높여야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제공하는 콘텐츠 가격도 제값을 받아야 한다. 특히 발송비용 등 비편집 분야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네덜란드·스웨덴 등 서구에서는 국가가 보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공공재라는 사실이다.”

- 희망하는 상임위는.

“문화관광위원회다. 언론의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위해 한결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보좌진 구성도 이미 마무리했다.”

“노동배제하는 경제·노동정책 안돼”

-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을 어떻게 보나.

“노동을 배제하거나 분배를 적게 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고용없는 성장을 해온 이유는 IMF 이후 주주자본주의가 대폭 도입됐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주주 이익을 중시하다보니 고용을 적게 하고 이익을 많이 내려고 한다.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 당선자는 ‘종업원 주주회사’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궁극적으로 종업원 주주회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을 줄이는 체제로 가야 한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사회정책을 깨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시장정책을 확대하면서도, 공공정책을 확대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두 가지 공존이 가능하다. 종업원이 회사의 주주로 경영에 참가하게 되면, 회사는 이익을 내고 고용도 유지하는 체제를 갖출 수 있다.”

- MBC 사장 재임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당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채용 과정에서 정규직화 통로를 만들거나 임금격차를 줄이는 작업을 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한계가 있었다. 결국 국가정책으로 큰 틀에서 이윤이 적더라도 고용이 증가하는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기업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예컨대 삼성 등에 고용을 늘리라고 법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닌다. 이윤이 줄어들면 경영진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체제에선 어떤 경영진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공성을 담보하는 섹터가 보존돼야 한다.”

“MBC 민영화는 합법 가장한 언론통제”

- 새 정부가 공공연히 ‘MBC 민영화’를 말하고 있는데.

“MBC 민영화는 합법을 가장한 언론통제라고 본다. 민영화를 하려면 왜 하려는지 타당한 이유를 대고, 시청자와 국민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쇠고기 협상처럼 느닷없이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은 권력의 횡포처럼 비쳐진다. 지금은 언론의 사적영역이 너무 확대돼 있어서 문제다. 올해 IPTV(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제공되는 양방향 텔레비전 서비스)가 시작되면 채널이 1천개쯤 생긴다. (지금도) 지상파가 공공성을 담보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 한미FTA에 따른 지나친 문화산업 시장개방에 대한 비판이 많다.

“한미FTA에 따라 느닷없이 방송시장을 개방할 경우 광우병 쇠고기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KBS와 MBC 연매출은 총 1조4천억원가량 된다. 반면 미국 타임워너는 40조원가량 된다. 규모는 상대가 안 되는데도 시장이 개방되면 같이 붙게 된다. 그래서 설사 개방하더라도 몇 년 간 준비하고 방송경쟁력을 키워 어느 정도 준비됐을 때 열어야 한다.”

최 당선자의 주장은 “덜컥 열어선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시장개방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해도 치밀한 시장분석 뒤 절차를 밟아서 하는 '전략적 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독과점 심화에 따른 여론독점과 언론시장 교란을 낳을 수 있는데.

“신문과 방송 모두 재정이 어려워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겸영 주장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정난 타개가 안 된다. 신문이 방송에 투자하거나, 그 반대라도 이득을 내기 힘들다. 양쪽 경계가 무너지면 시장사정만 더 나빠진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작은 신문, 지역 신문과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각각 투입하는 자원을 늘리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처럼 졸속적 규제완화는 시장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최 당선자는 언론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정적 안정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언론의 핵심은 재정적 문제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신문법 문제도 비본질적인 것이다. 재정이 좋아지면 신문시장 양극화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신문보호법을 통해 신문시장만큼은 시장주의에 일부 저촉이 돼도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가 필요하다.”

달라진 언론시장, 언론노동운동의 과제는

- 진보개혁세력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노조뿐만 아니라 진보개혁진영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 진보세력이 보수세력보다 더 과거(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데 (진보세력도) 빨리 바뀌어야 하다. 언론 역시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론이 처한 문제가 변했다. 자본주의 활력과 다매체·다채널 두 축의 변화 때문에 언론은 재정적·정치적 독립의 위기에 직면했다. 평생직업으로서 위협받고 있고 언론인의 존엄이 유지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노동운동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기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한다. 언론노조는 그것을 정확히 읽고 해결하기 위한 주체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노동자와 가까이 있으니까 주체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용기있게 얘기해야 한다. 그 뒤 정치권과 부딪혀 정책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 정청래 통합민주당 의원이 어느 인터뷰에서 “최문순 의원의 보좌관이라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문광위 활동을 하며 보수언론의 표적이 되기도 했는데.
 

“선배 의원으로서 보좌관은 안 되니까, 그의 보좌관을 승계해서 쓰기로 했다.(웃음) 나도 언론노조 등을 할 때 보수언론과 충돌이 많았다. 이제 보수언론과는 성숙된 관계로 가고 싶다. 보수언론 역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문제에선 힘을 합쳐 같이 풀고, 논조가 다른 건 분리하는 성숙된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본다.”
 


- ‘카메라출동과 최문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시 기자로 돌아간다면.
 

“기자로 복귀할 계획은 없다.(웃음) 이제 카메라출동 같은 프로그램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옛날처럼 황당한 사건이 없었으면 한다. 물론 언론의 감시기능은 살아있어야 한다.”
 


-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17년 전 최문순 기자의 고백’에 빗대 자신의 심경을 밝힌 적이 있는데.
 

“예전 군사정권 시절에는 무조건 방송을 못하게 하는 식의 단순한 구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복잡하다. 단칼에 100% 정당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말의 구사와 주장이 정교하고 치밀해야 하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한 지도자는 비판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이상호) 후배는 그래야 한다. 후배의 비판 때문에 나 역시 편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었다.”
 


- 초대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 않나.
 

“지금도 부담스럽다. 지금도 가끔 MBC 사장직에 있는 꿈을 가위 눌리듯 꾼다. 당시 진보개혁세력의 유능함을 확보하기 위한 의무감과 부담감이 컸다. 내가 여기에서 실패하면 다음 사람에게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노심초사했다. 내가 가진 철학이 구체적 정책으로 나올 수 있나,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나, 늘 바로미터였다.”
 


- 후배 언론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배기자들이 주변 걱정 안하고 마음껏 기사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체제가 돼야 한다. 회사의 정치적·재정적 독립은 경영진에서 해결하고 국가정책으로 마련돼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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