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길(46)씨는 지난 86년 풍산 안강공장 품질관리부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24살이었던 정씨는 20년 넘게 해고자로 살면서 어느덧 40대를 훌쩍 넘는 중년이 됐다. 그는 89년 1월30일에 해고된 안강공장 노동자(29명) 중 한 명이다.
“지금도 건설일용직 노동자 일을 하는 동료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저는 몸이 약해 건설일용직 일도 할 수 없었어요. 92년에 결혼했는데 아이들은 커가고 생계가 막막했죠. 아직도 피아노학원을 하는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정씨는 88년 풍산노조 안강공장 초대지부장을 지냈다. 그해 12월 회사측과 노조위원장이 결탁해 안강공장 교섭대표들을 배제하고 단체협약에 직권조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정씨는 직권조인 철회와 재교섭을 요구했다.
같은해 12월28일 노태우 정권은 '민생치안에 관한 특별지시'를 선포했다. 정씨를 비롯한 풍산 안강공장 노동자들은 노태우 정권 노동탄압의 첫 희생양이 됐다. 정씨는 88년 1월4일 군·경찰 병력 5천명이 공장에 투입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파업을 일단 철회하자는 노조 결의 때문에 조합 사무실에 있던 1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기숙사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40명을 잡아가려고 무려 5천명이 들이닥치는 거예요. 저항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 경찰병력 등 5천명은 잠자고 있던 조합원들을 연행했고, 노조간부들에 대한 수배령을 내린 뒤 간부 8명을 구속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2007년, 정씨를 비롯한 안강공장 노동자 19명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올해 3월28일에는 위원회로부터 복직 권고도 받았다. 하지만 회사측은 위원회가 회신을 요구한 다음달 30일까지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복직을 위한 단 한 번의 대화자리도 없었습니다.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을 위한 길은 원직복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복직이 된다면 20년을 기다려온 정든 일터로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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