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인들 사이에선 '8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통용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공인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우리 우정사업본부가 또 한 가지를 추가했다는 말인데요. 공무원조직으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을 우정사업본부가 달성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죠."

지난달 21일 진행된 전국체신노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항구 위원장(53)의 말이다. 무엇이 불가사의라는 것일까. 이어지는 이 위원장의 대답. "9년 연속 고객만족도평가 1위를 차지했고, 10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지난해에만 3천억원의 흑자를 냈어요."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정부에 손 벌리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자생구조가 안착돼 있다는 말이다. 비법이라도 있었을까.

"불가사의 경영성과는 죽도록 일한 결과"

우정사업은 전국의 각 우체국·집중국·취급소에서 우편물을 접수·배달하는 기본 우편업무(통상우편물·소포우편물 등)와 부가우편서비스(등기 취급, 우편물 방문접수, 택배, 우편주문판매, 우체국쇼핑, 민원우편 등) 외에도 우체국예금·우편환·우편대체업무·우체국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1884년 우정총국이 개국되면서 우편사업이 시작된 이래, 우정사업은 정부부처의 형태로 정부가 사업운영을 독점해 왔다. '보편적 서비스'라는 우정사업의 속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편사업의 재정적자가 심화됐고, 이는 정부기관의 독점적 경영체제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낳았다.

우정사업 운영체계 개편논의는 9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94년 1월 체신부 업무보고에서 '1997년 공사화 방침'이 보고됐고, 이듬해에는 체신공사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사화는 보류됐다. 그 이유를 이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97년 우정사업 공사화가 추진됐지만, 전문가들의 검토 결과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기관으로 남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노조를 비롯한 구성원들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생긴 게 사실이고요."

공사화가 보류된 후 우정사업은 정부부처형 공기업체계를 유지하면서 경영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97년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이 발효되면서 정보통신부 안에 우정사업본부가 만들어졌고, 2000년 7월 책임운영기관의 형태로 출범했다.

특례법에 따라 독립적·자율적 운영을 보장받았지만, 특례법 외에 정부조직법·국가공무원법·예산회계법·기업예산회계법·국유재산법 등을 함께 적용받으면서 조직·인사·예산 및 자산 운영에 있어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경영합리화'의 잣대가 작용하면서, 인력증원이나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자체 평가를 통해 '경직적인 인력운용'과 '고비용 저수익 구조'가 경영부진을 낳는다고 진단하고, 긴축재정과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경영개선에 매진했다. 이와 함께 민간기업과 달리 세금을 낼 필요가 없고, 민간금융기관처럼 금융감독원의 지도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우정사업본부 수익개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노사를 떠나, 적자가 나서 국민에게 손 벌리는 상황이 오면, 국민과 정부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습니다. 정부조직으로 살아남기 위해 버텨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불가사의 같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들이 죽도록 일했기 때문입니다."

"왜 반대하냐고?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으니까"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우정사업본부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우정사업 민영화가 언급됐고, 정부조직 개편으로 정보통신부에서 지식경제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에서 우정사업 공사화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체신노조는 "공사를 거쳐 민간에 넘기겠다는 단계적 민영화 방안에 반대한다"며 정부의 정책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정부조직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공사화 내지 민영화를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 저렴한 요금으로 기본적 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보편적 서비스의 기반이 무너지고 국민이 부담하는 서비스 비용이 인상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저비용 고효율을 좇는 기업의 속성상 산간벽지 주민 등을 위한 서비스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 이유는 공사화되면 현재 기능직 공무원인 체신노조 조합원들의 신분이 바뀌고, 결과적으로 고용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공사화·민영화를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불편해지고, 집배원들은 고용이 불안해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정부 입장에서도 득이 될 게 없습니다. 우정사업본부가 공사로 전환할 경우 종사자들의 임금인상분을 포함해 연간 수천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갑니다. 정부기관이라서 면제됐던 각종 세금도 납부해야 합니다. 이 돈을 어디서 끌어오겠습니까. 결국 국민들에게 손 벌리겠다는 건데…."

"파업, 필요하다면 하겠다"

전임 위원장의 퇴직에 따라 보궐선거를 거쳐 당선된 이 위원장의 임기는 앞으로 1년. 그러나 그는 2~3년 뒤를 내다보며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조직의 규모와 위상 등을 따져볼 때 정부가 우정사업본부 공사화를 하루아침에 할 수는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노총과 한라나당 간 정책연대의 향방도 체신노조가 투쟁계획을 세우는 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총선 전 공사화 공약을 들고 나오자 노조 안에서는 "정책연대의 성과가 겨우 이거냐"라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책연대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니까 일단 더 지켜봐야죠. 사실 희망을 걸고 싶어요. 지금으로써는 한국노총 외에 믿을 곳이 없습니다. 물론 노조 자체적인 대응책도 당연히 마련해야죠."

이 위원장은 당선되자마자 노조 안에 투쟁팀·협상팀·실무팀·법무팀 등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조합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우정사업본부가 왜 정부기관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리는 대국민 홍보작업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국민의 사랑이 체신노조의 최대 무기입니다.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필요하다면 파업도 불사할 생각입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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