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많은 투쟁을 하다보니 1년이 흐른지도 모르겠습니다.”

9일은 테트라팩 여주공장이 폐쇄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자, 공장폐쇄에 끝까지 반대한 조합원 22명이 해고된 날이다. 테트라팩노조(위원장 정장훈)는 ‘연대하는 노조’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의 집회에 빠지지 않는 노조의 상징은 다름아닌 ‘버스’다.
노조는 지난해 4월 전국순회투쟁을 위해 510만원을 주고 중고버스를 구입했다. 원래 25인승 버스를 임대할 예정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운전기사를 따로 둬야 했고 이동할 때마다 임대 회사에 행선지를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정장훈(43) 위원장은 버스를 운전하기 위해 최근 버스대형면허를 땄다. 마지막까지 남은 조합원 11명 중 7명이 생계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버스를 운전할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7일 서울 이태원 테트라팩 사무소 앞에서 만난 정 위원장은 “공장이 재가동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중국 현지 공장. 중국에서는 현재 3개의 테트라팩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물량 대부분이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다.

“테트라팩 본사가 원래 중국공장 증설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테트라팩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테트라팩의 특허권 시효가 만료됐어요. 그러면서 중국에 유사한 제품공장이 19개나 생겼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테트라팩이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죠. 이후 중국공장 증설계획이 취소됐습니다.”

한국공장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회사측의 ‘폐업예정’ 사유로 해고를 당했지만, 회사측은 아직까지 폐업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노조가 포기하지 않고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자존심 때문이었다.

“스위스와 일본에서도 공장 통폐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에서는 회사측이 공장폐쇄 이전에 노조와 충분히 협의했고, 1년 정도 재취업 시간을 줬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폐업예고 후 20일만에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는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없이는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던 ‘그린필드조항(외국인투자촉진법)’을 폐지했다. 정 위원장은 테트라팩 사례를 통해 우리사회에 ‘먹튀자본’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싶다고 했다.

“버스와 노조의 운명은 같이 갈 것입니다. 공장이 재가동되거나, 테트라팩 자본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날 노조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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