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이번엔 힘들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힘겨운 전투 끝에 그는 낭보를 전해왔다. 진보정당의 지역구 수성. 돌아온 그의 어깨는 여전히 무거웠다. 지역에서 중앙에서 이곳저곳 인사해야 할 곳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리 차리겠습니다.”

권영길(66) 민주노동당 의원을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침 그의 소속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미FTA 청문회 일정이 가결된 뒤의 만남이었다. 권 의원은 쇠고기협상 청문회부터 하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보정당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 당의 분열사태 속에서 총선 불출마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안다.

“권영길이 걸어온 길, 노동운동을 시작해 민주노총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동당에서 걸어온 삶 자체가 망가지는 것 같았다. 지난 대선 이후 끊임없이 당의 분열이 나를 짓눌렀다. 지금도 극복됐다고 볼 수가 없다. 분열의 상처, 그 결과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 창원 역시 노동현장의 분열이 심각했을 것 같다. 뼈아픈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신랄히 비판하거나 분열된 아픔을 호소하는 동지들이 많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냉소적인 이들이 가장 심각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노동현장의 심리적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당의 분열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대통합이 돼야 한다고 말을 건네면 그제서야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 당선사례에서 ‘정리 차리겠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진보 내부의 논란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서민정당·민생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말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민생정치를 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

- 왜 정치를 계속 하려고 하나.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출마를 고려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당의 분열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창원에서 진보정치 세력의 마지막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서민 프렌들리’ 정치 해나갈 것

- 민주노동당의 총선평가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 총선을 평가한다면.
“국민은 민주노동당에 질책과 희망을 함께 보냈다. 희망은 창원과 사천에서 노동자·농민의 대표를 국회로 보냈다는 것이다. 계급정치의 희망을 만들어내라는 국민들의 명령이다. 질책은 우리끼리 분열해 안에서 싸우지 말고 민생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 희망하는 상임위는. 어떤 의정활동을 펼 것인가.

“교육위원회를 생각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를 지켜내기 위해 적극 활동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은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외침과 함께 시작됐다. 그 외침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을 18대 국회의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5석이란 한계로 ‘민생우선’이란 18대 의정활동 목표에 따라 상임위를 배정하고 있다. 통외통위를 포기하는 게 아쉽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마침 권 의원은 지난달 29일 발족한 ‘무상의료 실현과 건강보험 지키기 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 17대 국회에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성과와 과제를 꼽는다면.

“통상절차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제도화를 위한 통상절차법을 통과시키려 했는데,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게 가장 아쉽다. 한미FTA 통과 저지에 온 힘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에 대한 우려가 많다.

“공공부문 축소와 구조조정은 국가 공공성의 약화로 나타날 것이다.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는 부의 집중·심화와 노동자 고용안정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해법은 다른 게 없다. 노동현장과 민생현장에서 만들어진 힘과 여론으로 싸워나가야 한다. ‘서민 프렌들리’ 정치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레임덕 앞당겨졌다”

- 5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으로 쇠고기협상과 한미FTA 비준안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쇠고기협상 문제는 국민적 분노가 대단하다.

“국민들의 탄핵서명이 100만명을 넘겼다. 자발적으로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3개월만에 레임덕이 찾아왔다. 쇠고기협상 전면백지화와 재검토를 이뤄낼 수 있도록 하겠다.”

-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란.

“당초 이명박 정부가 2년 정도 지나면 (레임덕이란) 그런 구체적인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더 빨라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쇠고기, 영어몰입 등의 문제가 누적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는 실현불가능한 것이었다. 국제적으로도 수정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하게 추진하는 이 정부가 거두는 성과는 금방 드러나게 돼 있다.”

-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도 18대 국회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차원의 대응은.

“법을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수차례 경고하며 법안 통과를 막으려 했던 이유가 현실화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제도적 맹점을 바꾸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조직화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노동자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바꿔왔지, 그냥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홍희덕 당선자를 비롯해 현장의 힘을 모으고 국회에서 그 힘을 바탕으로 싸워나가겠다.”

- 한미 정상은 ‘21세기 전략동맹’에 합의했다. 바람직한 한미관계, 대북관계에 대한 의견은.

“북한이 '통미봉남' 노선을 취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통일은 이뤄져야 하며 남북 간 경제교류는 확대돼야 한다. 핵문제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은 매진할 것이다. 다만, 문화적으로 대중의 정서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은 문제였다. 소통하는 통일운동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사진=정기훈 기자
 
 
“진보대통합 흐름 자연히 형성될 것”

- 당의 분열에 대해 대통합을 얘기했다.

“현재의 분열을 해결하고 재결합과 단결을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쇠고기, 한미FTA, 비정규직,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진보 양당의 입장은 같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벌여나가다 보면 통합의 필요성은 자연스레 제기될 것이다.”

- 진보대연합에 대한 구체적 구상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어렵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중요한 점은 진보진영의 준비가 지금부터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적 준비는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진보진영이, 민주노동당이, 민생정치·진보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명박 정부의 한계가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그 다음은 진보정치가 요구되는 시기가 온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결국 진보 대 보수 구도만 남을 것이다.”

- 실제 의석수나 야당들의 성향으로 볼 때 진보 대 보수구도가 형성될지 의문이다. 진보대연합에는 민주당도 포함되나.

“민주노동당만의 복원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대통합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를 넘어서는 총괄적인 통합을 의미한다.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포함해서 사안별 연대, 공통과제를 두고 공동사업을 하다보면 새로운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 민생정치를 유독 강조하는데.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민생정치는 우리가 내걸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호로만 남았다. 이를 위해 몇 가닥의 정책은 마련돼 있지만 실제 움직임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와 건강보험제도 포기 등은 당이 국민들과 함께 운동을 펼쳐야 하는 사안이다. 집회에서 뭘 하자는 게 아니다. 함께 호흡하고 함께 운동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지양해야”

- 18대 국회 시작에 앞서 17대 의정활동 평가도 중요하다. 어떻게 평가하나.


“시선이 미래와 민생으로 향했어야 할 시점이었는데, 과거의 틀에 매여 있었던 것은 인정해야 할 잘못이다. 창당 이후 10년을 되돌아보면 일이 잘되고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때는 정파갈등이 부각되지 않지만, 일을 풀어가지 못할 때 정파갈등이 부각된다. 리더십의 문제도 발생했다.”

- 정파정치의 폐해를 말하는 듯하다. 해법이 있나.

“국민에게 다가갈 실력이 부족하니까 안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두 선거를 거치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민생정당으로 가지 않으면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파정치는 노동자·농민·서민과 소통하는 정치가 이뤄지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 ‘선임자’로서 의원단을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인가.

“숫자가 줄어든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의원단 구성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곽정숙·홍희덕 당선자는 각각 장애인·비정규직 당사자이고, 이정희 당선자는 벌써 정책적 능력의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강기갑 의원과 함께 중심을 잡아갈 것이다. 17대 국회 의원단은 역사적 상징성이 부각됐다면, 18대 국회 의원단은 당사자로서 절박함이 특징이 될 것이다.”

- 혁신-재창당에 대한 의견은.

“혁신과 재창당의 핵심은 '민생'이라고 본다. 노선과 담론보다 사업이 중심에 서야 한다. 분열의 이유, 난맥의 핵심적 원인은 국민과의 소통 부재에서 나왔다. 지난 대선 이후 현재까지 민주노동당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제는 일하는 정당, 민생정당, 서민정당으로 나가야 한다. 이게 혁신과 재창당의 방향이어야 한다.”

“당권에 도전할 생각 없다”

- 당은 강력한 지도체제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강한 방점을 두는 것은 불만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의 정치에 몰두하는 것인데, 마치 지도체계와 조직체계에 더 문제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현재 혁신의 내용이 일면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지금 시기 민주노동당이 요구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창원에서 새로운 진보정치 모델을 만들어내고 무상교육·무상의료 현실화를 위한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권 의원은 재차 확인하는 질문에 “권영길은 당직을 맡지 않고 당에 기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끝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지난 두 선거와 당의 분열사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한다고 보나.

“민주노총이 잘되고 민주노총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때 거리두기를 할 수 있겠지만, 민주노총이 어려운 오늘 민주노총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정치적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돌팔매를 맞으면 당이 함께 피 흘리며 맞아야 한다. 더 많은 일을 함께해야 하고, 더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권영길에 대한 오해와 이해
- 5석과 10석의 차이는.
 
 


“5석과 10석은 실제 큰 차이가 있다. 그동안 (조승수 전 의원 낙마 뒤) 9명일 때 임종인 의원 등이 활동을 같이했다. 법안 발의를 위해 10명이 필요하나 앞으로는 나머지 5명을 채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소통이 될 수 있는 (타당) 의원과 개별적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 민주노동당의 바람직한 원내외 관계는.
 
 


“17대에서는 원내외가 충돌했다기보다 당과 의원단이 어떻게 결합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몇 차례 사고도 있었지만 그 뒤 실제적 움직임은 없었다.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 4년 전 첫 당선시 부인과 같이 기뻐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번엔 부인의 반응은 어땠나.
 
 


“4년 전 두 번의 눈물을 흘렸다. 선거 막바지 일주일을 앞두고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모여 꼭 이기자고 호소하면서 울었고, 그 힘으로 선거운동원 전체가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당선된 뒤 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부인이 옆에서 너무 힘들어했다.”
 


- 18대 국회에서 의원회관 내 진보·개혁적 동아리가 방을 빼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동아리들도 위기다. 대안이 있나.

 
“민주노총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주 만나 그런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다. 좋은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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