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우연찮게 기회가 주어져 밴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묘한 자부심도 느낍니다.”

이상수(33)씨는 성남우체국 집배원 밴드인 ‘상수밴드’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밴드 멤버 15명 전원이 집배원이다. 올해 결혼을 앞둔 이씨는 “성남우체국 직원들 사이에서 상수밴드는 우체국의 자랑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우체국 행사는 물론 조합원들의 결혼식이나 돌잔치에도 상수밴드가 활약한다. 밴드 활동은 내부 행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상수밴드는 지난 11일 성남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지역 장애인을 초청해 공연을 가졌다. 공연 관람단체는 밴드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박상묵씨의 배달구역에 있는 장애인단체 ‘우리공동체’. 상수밴드는 3년 전부터 이곳 장애인들과 영화를 같이 보고 쇼핑도 같이 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공연에 온 장애인들이 낯설어 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금방 재미있어 하고 마치 나들이 나온 것처럼 환한 표정을 짓더라구요. 관중 몇 분이 올라와 춤을 췄어요. 묵묵히 지켜보던 장애인 아이들도 무대 위로 올라와 덩달아 몸을 흔들었죠.”

상수밴드가 자주 연주하는 곡은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온 ‘비와 당신’과 윤도현의 ‘아리랑’이다. 멤버들의 나이대가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되다 보니, 이른바 ‘뽕짝’부터 최신가요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이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한다. 우체국 공무원들은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하지만 그는 우편물을 받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늦게오냐’라는 불만 때문에라도 일찍 출근한다고 했다. 그는 우편물을 받는 시민들을 ‘고객님’이라고 표현했다.

“집배원업무도 서비스업무죠. 황당한 불만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지만 보람있는 일도 많아요. 언젠가 주소를 몰라 당황하던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시고 간 적이 있어요. 집배원이니까 주소야 금방 찾았지요. 그런데 며칠 뒤 할머니가 배 하나를 봉지에 담아서 보냈더라구요.”

이씨는 평일 오후 6시 이후 밴드 연습을 시작해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연습을 마친다. 업무를 마친 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연습시간이 그에겐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하는 '청량제'다.

그는 “집배원들은 계약직 10급 공무원”이라며 “정부조직 개편 때문에 공무원신분인 우체국 직원들마저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집배원들의 불안은 더 클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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