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모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한 달에 100만원씩 인출해 집에 생활비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보험도 하나씩 줄이고요. 아직 회사로 복귀한 조합원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달 회사측의 성실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화학섬유노조 동양실리콘지회(지회장 주영보)가 24일로 직장폐쇄 37일째를 맞았다. 동양실리콘은 전북 익산에 있는 동양제철화학 계열사다. 회사측은 직장을 폐쇄하면서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부분적으로 직장을 폐쇄한다고 밝혔지만, 이후 단 한 차례도 지회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현재 익산공장은 본사에서 내려온 영업사원과 회사측 사무직원들에 의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24일 서울에 올라온 주영보(43) 지회장을 서울 중구 소공동 동양제철화학 앞에서 만났다.

노래자랑·난타공연, "즐겁게 투쟁한다"

파업 50일째, 직장폐쇄 37일째를 맞은 주 지회장의 얼굴에서는 전혀 어두운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솔홈데코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노래자랑도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동영상 못 보셨나요? '따이따이' 아시죠. 조합원들이 차력쇼도 했어요. 물통 갖다놓고 난타공연도 하고요. 파업하기 힘드니까 서로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동양실리콘지회 조합원들 사이에선 "투쟁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왕이면 즐겁게 투쟁하자는 것이다. 이날 1인 시위에 참가한 김세중 한솔홈데코지회 조직차장은 "동양실리콘 조합원들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10년 새 임금격차 30~40% 벌어져

동양실리콘 노동자 50여명은 지난해 9월18일 화섬노조 전북지부 소속 지회를 설립했다. 주 지회장은 지난 5년 사이 여름휴가와 여름휴가비·가족수당 등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임금인상 소급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동양실리콘은 원래 본사인 동양제철화학에서 결정된 임금인상률을 그대로 적용해 왔다. 그러던 것이 6~7년 전부터 본사 소속 공장 노동자들이 5%의 임금인상률을 적용받으면 동양실리콘 노동자들은 3% 인상률을 적용받았다.

"원래 동양제철화학 노동자들과 10% 정도의 임금격차는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0년 사이에 30~40% 이상 벌어졌어요."

대표이사 바뀌면서 교섭 난항

하지만 주 지회장은 10여 차례에 걸친 회사측과의 교섭에서 임금의 '임'자도 꺼내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회를 인정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대표이사는 교섭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비록 컨테이너이긴 하지만 노조사무실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회사측 태도가 달라졌어요. 노조를 인정할 기미가 보이자 본사 차원에서 대표이사를 바꾼 겁니다."

대표이사가 바뀌기 전까지는 본사에서 노무 담당자가 내려와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론 담당자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

대표이사인 이수영 경총 회장이 나서야

동양실리콘 노동자들이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측과 교섭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동양제철화학 본사가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7년 간 동양실리콘에서 일했다는 주 지회장이 말하는 노조의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직장폐쇄를 풀고 성실하게 단협안을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이사인 이수영 경총 회장이 나서줘야 합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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