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모든 눈과 귀는 한나라당을 향하고 있었다. 치열한 공천전쟁 속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4번’. 강성천(67) 자동차노련 위원장이 받은 순번이다. 잘나가는 집권여당 한나라당에서 한국노총 출신이 확고한 당선안정권인 4번을 받은 것이다.

이리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버스회사 밑바닥부터 시작해 37년을 버스노동자로 살았던 강성천 국회의원 당선자. 그는 한국노총의 지도자 중 대표적 좌장으로 꼽힌다. 자동차노련 위원장 5선이란 흔치 않은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감 있고 노련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국회입성을 앞둔 요즘,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고 했다. 지난 21일 강 당선자를 만났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버스노동자

- 당선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솔직히 어깨가 무겁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국회에 가서 지금과 다른 노동운동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그 전엔 자동차노련에만 한정됐지만 이젠 한국노총과 나아가 전국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든다.”

40년생인 강 당선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먹고살기 힘들어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선택해야 했다. 55년, 16살 소년 강성천이 처음 입사한 곳이 버스회사였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조수’부터 시작했다. 운전사 옆에서 온갖 잡일과 차량보수까지 하며 힘들게 보고 배웠고, 마침내 그도 운전사가 됐다. 힘들어도 먹여만 주면, 기술 배우고 운전기사가 되는 게 꿈인 시절이었다.

- 자동차노련 위원장 5선을 했다. 그동안 어떤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왔나.

“72년에 노조운동을 시작했다. 당시엔 합승(좌석버스 전신)을 몰며 일했는데, 우리 동료가 사용자로부터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후 서울시내에서 3번째로 큰 버스회사인 신진운수에서 노조분회장이 됐다. 그때만 해도 버스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투쟁보다는 노사협력을 중시한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렇게 투쟁을 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투쟁만 갖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다. 투쟁을 하면서도 노사가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서울버스 지역위원장(지부장)이 되면서 투쟁보다는 상호협조를 유지하는 노동운동을 했다.”

강 당선자는 공익사업장이란 제약 속에서도 지난 97년 서울지역 총파업을 주도했다. 검찰조사를 받고 구속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투쟁 일변도로는 잘살기 어렵다”

하지만 강 당선자는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이다.

- 현직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노총이 정책연대를 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투쟁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투쟁만 해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잘살기 위해 노동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 투쟁만으로 잘살 수는 없다.”

강 당선자는 "집권여당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고 노동자가 잘살기 위해,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집권여당 내부에서 변화와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비례대표 4번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노총은 우리나라 최대 노동조직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국민경제 발전과 서민의 삶 개선을 말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계와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 비례대표 4번은 이런 고민들이 드러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운수노동자 위한 의정활동 희망”

- 노동운동을 통해서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나. 왜 정치를 하려는가.

“연맹 위원장 시절에 운수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법안을 만들려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 국회의원을 만났다.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정치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 늘 ‘운수노동자’를 말하는데.

“운수노동자들은 법과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래전부터 운전자에 대한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문제나 운수노동자 초과근로 비과세 적용 등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회에 청원해도 열 번 하면 하나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그런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 희망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는 어디인가.

“한국노총에서 조정할 것이다. 한국교통운수노조총연합(KTF) 의장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해양국토위원회(전 건설교통위원회)를 희망한다. 한국노총 출신 한나라당 의원이 4명에 불과하다보니, 환경노동위원회를 비롯해 보건복지위원회·재경위원회·건교위에 골고루 배치돼야 한다. 전문성으로 따져볼 때 건교위가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환노위를 갈 수도 있다.”

“노동자 피해 없도록 중재역할할 것”

상당히 조심스러운 답변이다. 한국노총 출신 직능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인 만큼 자신의 출신에 충실하면서도 한국노총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 상임위와 무관하게 노동자 비례대표로서 앞으로 굵직한 노동정책과 현안을 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친기업을 표방하는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입장차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전력노조 등 한국노총 산하 6개 산별연맹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공동대응에 나서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 정부와 집권여당은 5월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 기업 규제완화 등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에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당이 내놓은 공약도 있고, 한국노총과 정책협약도 맺었다. 정책협약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성실히 그 역할을 하겠다.”

-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피해가 예상되는데.

“무엇보다 조율 역할이 중요하다. 그게 정치다. 정책연대 실행자로서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노동자 마인드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붙을 수도 있다. 항상 한국노총에서 파견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한국노총 사업장이 아니지만, 현재 이랜드·코스콤·KTX 등 주요 노동현안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18대 국회의 몫으로 넘어갈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시민·사회단체 간에도 이견이 있다.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현실적 수준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론화 과정에 집중할 생각이다.”

- 의정활동 계획은. 무엇에 주력하고 싶은가.

“지난 국회를 통해 몇 가지 얻어낸 것이 있다. 모든 차량 보험가입, 기사폭행시 보호법안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 풀지 못한 과제가 있다. 운전기사 노동시간단축 특별법을 만드는 게 평생의 숙원이다. 30년 된 숙원사업이다. 지난주 법안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정치력을 발휘해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운전기사의 권리제고에 앞장설 것이다.”

“한국노총 출신 의원들과 공조할 계획”

강 당선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이 정책연대를 맺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4개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연대 내용이 가시화된 것은 없다.

- 인수위원회 국정과제나 한나라당 총선공약 등을 보면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에서 약속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책연대 이행을 위한 구상은.

“총선 끝난 지 얼마 안 된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정책연대 이행 여부를 말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다. 현재 청와대와 한나라당, 한국노총 간 정책협의를 위한 고위급·실무자 단위를 구성키로 합의한 상태다. 여기에서 각각 의제를 놓고 논의할 것이다.”

강 당선자는 ‘공개적 정책연대’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에서 파견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이나 노동현안 등 노동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새로운 정치실험이다. 열심히 공부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과거에도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4명이 한꺼번에, 그것도 같은 당 소속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공조가 더 잘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은 공개적으로 협약을 맺었다. 이게 무섭다.”

-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 4명만으로는 정부와 여당의 친기업 성향과 노동소외 기조를 극복하기엔 힘이 부칠 수 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뭉쳐서 못할 일이 없다. 열심히 하겠다. 자신 있다. 당선자들의 좌장 역할을 맡을 것이다. 서로 같이 잘하자고 약속도 했다. 평소 개성이 강한 이들이긴 하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 정책연대 무시 못할 것”

- 앞으로 한국노총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갈 것인가. 향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앞두고 노-정 갈등이 예고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노총과 수시로 만나 최대공약수를 찾을 생각이다.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가 마련돼 있다고 본다. 다만 방법론에서 노정 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민영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한국노총 내부에 공공부문이 가장 많다. 우선 공공부문 조직들의 고민과 방향을 수렴하고 함께 논의해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 의정활동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아직 상임위가 결정되지 않아 보좌진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정책을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음달 중순이면 상임위가 결정될 것이다.”

강성천에 대한 오해와 이해

- 67세라는 나이 같지 않게 상당히 동안이다. 비결이 뭔가.

“비결은 따로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 게 전부다. 매일 저녁 성산동 집에서 나와 월드컵공원에 가서 한 바퀴 돈다. 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마음을 즐겁게 갖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정년을 연장한 끝에 자동차노련 위원장 5선을 했는데.

“노조간부들의 조합원 자격에 관한 것이었다. 조합원 자격을 연장한 것이다.”

-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기자회견까지 했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한국노총 정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한나라당이 공천한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학력은 문제가 안 된다. 꿈을 꿔야 한다. 나는 노조분회장이 된 뒤에야 이런저런 교육을 받았다. 과거 이영희 현 노동부장관이 간사로 있던 크리스찬아카데미에 교육생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 가장 존경하는 노동운동의 선배는.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다. 박 전 위원장은 항상 조직을 소리없이 잘 꾸려왔다. 위원장 시절 어렵고도 힘든 일을 많이 했다. 난 해병대 출신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내게) 한 번 위원장은 영원한 위원장이다. 나 또한 영원한 위원장으로 남고 싶다.”

- 민주노총 출신 비례대표인 홍희덕 당선자와 종종 비교가 된다. ‘라이벌’인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노동자다. 특히 홍 당선자는 나와 세대도, 학벌도, 살아온 환경도 비슷하다. 사안별로 다르겠지만, 이견이 있을 때 조정하면서 노동자를 위해 같이 가기를 희망한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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