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는 지난해 7월 사용자단체들과 주 44시간 노동을 핵심으로 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61일 간의 파업을 통해 얻은 성과였다. 정부를 상대로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등록 요구도 관철시켰다.

다음달 1일부터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다. 건설현장에 '하루 8시간 노동'이 뿌리내리는 것이다. 22일 오전 서울 대림동 건설산업연맹 회의실에서 이용석(41) 타워크레인분과장 직무대행을 만났다. 그는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장을 겸하고 있다.

지난 93년 이용석 직무대행은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친구를 따라 건설현장에 갔다. 친구의 권유로 타워에 올라간 순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고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젊으니까 한번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보험회사 계열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97년 타워크레인 기사가 됐다.

97년 외환위기가 노조결성 계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비정규직이 돼 있더라고요. 회사측은 일한 지 364일이 되는 날 해고를 했습니다. 퇴직금을 안 주려고 말이에요.”

갑자기 비정규직이 된 타워노동자들은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뭉쳐야 했다. 98년 노조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2000년 8월 건설산업연맹 아래 전국타워크레인노동조합의 깃발을 꽂았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전국 단일노조였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앞둔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어떨까.

“물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게 오랜 관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2006~2007년 파업을 거치면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담금질이 돼 있는 거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단체협약을 준수하면 되는 거니까요.”

타워크레인노조는 이미 2001년부터 노동시간단축을 요구했고, 건설현장의 일요휴무를 정착시켜 왔다. 타워노동자들은 스스로 "태어나자마자 뛰면서 투쟁하고, 길거리(건설현장)에서 싸우면서 컸다"고 농담처럼 얘기한다. 현재 건설노조 산하 타워크레인분과 조합원은 1천300여명. 이 직무대행은 조직가동률이 70~80%를 웃돈다고 말했다.

전문직에 대한 자부심과 남다른 책임감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공중에서 일합니다. 다들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나의 실수 하나가 건설현장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안전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책임감도 남다르죠. 반장이 안 나와도 공사는 돌아가지만 타워기사가 안 나오면 현장이 멈춰버립니다. 시쳇말로 타워기사가 어리버리하면 현장에 못 보냅니다. 나와 다른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요.”

이 직무대행이 말하는 조합원들의 출신은 다소 특이하다. 교사·특수부대 출신과 북파공작원까지 있다. 해병대 출신은 명함도 못 내민다고 한다.

‘하루 8시간 노동’ 현장에 확산될까

건설현장에서 파업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타워크레인을 멈추는 것이다. 타워크레인이 건설현장 골조(건물의 뼈대)공사 공정의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타워는 건설현장의 터파기 공사가 끝난 다음부터 건물이 다 세워질 때까지 모든 재료를 올려주고 철수한다. 타워가 멈추면 공사 진행이 안 되는 것이다. 타워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하면 건설현장의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단축될 수밖에 없다.

“초반에는 작업시간이 서로 달라 마찰이 생길 수 있겠죠. 하지만 단 10분이라도 철공·목공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준법투쟁으로 오후 4시까지 근무하는 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 있던 다른 노동자들에게 박수 많이 받았어요.”
건설노조 간부들은 요즘 건설현장에 '하루 8시간 노동'을 홍보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노동시간단축이 올해 핵심사업이기 때문이다.

주 44시간 노동과 건설기계등록을 이뤄낸 타워노동자들의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타워노동자들의 99%가 비정규직입니다. 1년에 3~4개월은 대기실업 상태에 놓여 있어요. 불안정한 고용문제에 시달리는 타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입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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