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거 신권 지폐가 안 들어가잖아요?"

지난 18일 오후 2시30분 경전철 5호선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 방향 매표실 앞. 역무원 2명이 자동매표기 앞에서 한 손님에게 승차권 구매방법을 설명하는 사이, 또 다른 손님이 짜증나는 듯 물었다. 매표실은 불이 꺼진 채 입구가 막혀 있었고, 역무원들은 손에 잔돈을 한 뭉큼씩 쥐어들고 자동매표기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역무원 정아무개씨는 "자동매표로 전환하면서 승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불만이 폭주하고 있어서 이렇게 잔돈을 들고 일일이 설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자동매표기가 4대 있지만, 신권 지폐가 들어가는 기계는 두 개밖에 안 돼요. 게다가 위조지폐 분별 등을 위해 매표기는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지폐가 쉽게 들어가지 않아요."

정씨가 기자에게 잠시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돈이 안들어간다. 잔돈이 없다. 카드는 어떻게 충전하냐"는 승객들의 질문이 잇따랐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대규모 인사발령과 함께 무인매표와 자동매표를 전격 시행했다. 공사는 "기존 매표인력을 안전이나 서비스 담당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며 무인매표 시행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308명의 역무·사무직들을 서비스지원센터로 발령냈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인사이동에만 급급한 나머지 공사가 주장한 무인매표의 본래 취지마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 홈페이지에는 자동매표의 불편함 등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최충웅'씨는 15일 공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먼저 장비부터 갖춰 놓고 무인매표를 해야지, 시민은 그냥 당신들의 처사에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거냐"며 따졌다. 아이디 '김소영'씨는 16일 글에서 "T머니 충전기기가 하나도 작동을 안한다"며 "직원이 없으며 기기라도 제대로 설치해야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충분한 준비 없이 무인매표와 인사발령이 단행되면서 공식 방침인 무인매표도 들쭉날쭉 시행되고 있다.

지난 18일 같은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 방향 매표실은 매표소 창구를 폐쇄한 채 자동매표를 시행했지만, 같은 시각 종로구청·교보문고 방향은 공사 직원이 매표소에서 직접 승차권을 발매했다.

종로구청 방향 매표실에서 매표 업무를 하던 직원은 "손님들이 워낙 많아서 무인매표를 실시해도 금방 (매표실)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직원은 광화문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도 아니었다. 천호역에서 일하다가 14일 서비스지원센터로 발령난 뒤 급하게 광화문역에 투입됐다. 안전과 서비스 강화하기 위해 서비스지원센터로 발령났다는 직원이 매표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역에서도 서비스지원센터 소속 직원이 매표업무를 했다.

하성만 서울도시철도노조 역무본부 사무국장은 "노조 항의 여부, 승객수 등에 따라 무인매표도 뒤죽박죽 시행되고 지원인력이 투입되는 등 업무지휘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안전과 서비스 강화를 위한 인사발령이 허울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공사는 무인매표와 함께 기존 3조2교대제 근무를 2조1교대로 축소하고 한 조당 3~5명이었던 근무인원도 3명으로 줄였다. 또 야간근무제도도 없앴다. 이 때문에 밤 10시 이후부터 전철운영이 종료되는 새벽 1시까지는 각 역마다 부역장 1명만 일하고 있다.

하성만 사무국장은 "광화문이나 여의도, 천호역 등 승객이 많은 역에서도 심야 취약시간대에 부역장 1명만 일하면서 안전 무방비 사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음성직 공사 사장은 18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인사발령에 따른 시민불편을 알고 있다"며 "노사가 머리를 맞대 차차 보완하자"고 밝혔다. 공사가 14일 532명의 기술직을 창의업무지원센터로 발령냈다가, 인력부족에 따라 이틀만에 462명을 현업부서로 재발령 낸 사실도 인사발령에만 급급한 공사 구조조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1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