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짧은 머리 위에 적힌 '파견철폐'라는 주홍글씨. 머리가 작기 때문에 '파견법 철폐'중 '법'을 뺄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하던 그. 좌우 20센티도 안 되는 그의 머리가 800만 비정규직의 마음을 담아 선지 유난히 넓어 보였다. 작년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때 "전경에 맞아 다친" 여전히 흔들리는 아랫니 4개를 보이며 웃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49).

"온몸으로 싸우고 싶었습니다. 머리띠는 사람들에게 잠시 보여줄 뿐이고 구호는 외침과 동시에 사라지니..." 비정규직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고민으로 주 위원장은 이대 앞, 광화문 등 9군데 미장원을 전전한 끝에 머리에 네 글자를 새길 수 있었다.

*'파견철폐'…"온몸으로 알린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을 잘 몰라요. 방송사 안에도 비정규직이 많으니 보도하지 않을 테고 저라도 나서서 사회에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난해 11월 초에 삭발한 후, 머리에 글씨를 새긴 다음부터 주 위원장은 버스 대신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하철을 타 맨 앞 칸부터 맨 뒤칸까지 무작정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의외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단다. "뭘 철폐하자는 거야?" 시민들의 물음에 목소리만 조금만 높여 설명하면 주위 열 사람 정도는 자연스레 듣게 된다는 것.

서울역에서 할아버지 한 분은 '파견철폐'를 '파전철폐'로 읽어 "술안주엔 파전이 최곤데 왜 철폐 하누?"라고 야단을 쳤다. 또 소송 건으로 법원에 갔는데 판사가 머리에 낙서하고 왔다며 화를 냈던 웃지 몰할 일들을 주위원장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라며 웃어넘긴다. 이런 위원장의 적극적인 행동에 회사관계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조합원들은 힘을 얻었고 몇몇 비조합원들은 노조에 가입을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높고 단단한 벽을 깬다"

"정규직이 운전하는 차는 추월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쌍욕이 그대로 나오는 걸요. 정규직 사무실에 있던 소파와 리모콘 텔레비전이 얼마나 부럽던지." 눈에 보이는 차별이 이 정돈데 근로조건이나 임금은 말로 해 무엇 하냐며 주 위원장은 말을 돌린다. "용역회사가 몇 번 바뀌긴 했지만 KBS에서 비정규직으로 10년 이상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중파견을 해오던 KBS는 자신들에게도 파견법이 적용된다며 100% 고용승계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이대로 해고를 당할 수 없다며 KBS 해당직원 27명은 지난해 5월 26일 노조를 결성했다. 한 여름 비오는 날은 노조 사무실이 없어 여의도공원 화장실에서 냄새도 잊어 가며 회의를 했다던 이들. 노조의 틀을 만들기 위해 파견법 2년이 되는 지난 해 6월 30일까지 거의 반 미치광이로 되어 뛰어 다녔다고 한다. "지금 해고된 동지들은 같이 없지만 한 달만에 SBS, MBC, YTN지부를 만들고 조합원이 400여명으로 늘어난 건 정말 잊을 수 없는 성과입니다."

결코 기쁜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위원장이 청원경찰들에게 맞는 것을 보고만 있는 조합원들을 보고 주 위원장은 공원 벤치에서 원 없이 울기도 했다. 반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돈 때문에 '끙끙' 앓고 있는 돈을 거둬 벌금을 마련해온 조합원들 앞에서는 기뻐서 울기도 했다고.

험한 산을 힘겹게 넘어 온 주 위원장은 올해 또 한번 큰 싸움을 준비중이다. 파견법으로 당장 다음달부터 해고노동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눈앞의 싸움뿐만 아니라 '파견법 철폐'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되는 날까지 투쟁하겠다던 주 위원장의 마음은 짐작대로 '처음처럼' 뜨거웠다. '삐리리~' 오늘도 주 위원장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지하철 첫 칸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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