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어려운 비정규 노동자를 나몰라라 했습니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과천 코오롱본사 앞에서 만난 최일배(40) 전 코오롱노조 위원장은 투쟁 발언을 요청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요즘 다른 노조의 초청을 받아 종종 교육을 가는데 정규직들이 아직도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노조간부들은 조합원들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지만 나태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죠.” 최 전 위원장도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으며 정규직으로 일할 땐 비정규직의 현실을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자본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정규직들은 전혀 위기상황에 대비하지 않고 있죠. 노동과 자본의 투쟁에서 노동자가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복직투쟁 1천141일째를 맞고 있는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도 계속 세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세 명의 노동자가 활동을 접어 29명의 해고자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5명만이 꾸준하게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얼마 전 아내로부터 “코오롱이 그렇게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데를 찾지 않고 왜 자꾸 다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최 전 위원장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13년 간 일한 회사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부당하게 정리해고당한 아빠가 되긴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29명의 동료를 이끌고 있는 그로선 '노동운동'을 위해 '생계’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이 결코 낮지 않다.

“함께 투쟁했던 선배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자녀를 두고 있는 저도 집에서 이제 그만 활동을 접어달라고 하는데 대학생 자녀를 둔 선배들의 상황은 오죽하겠습니까."

최근 복직투쟁을 마무리한 GS칼텍스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한 그의 심정은 어떨까.
“정말 오랜 기간 싸웠던 동지들은 나중에 내가 왜 싸웠을까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노동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 속에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GS칼텍스 해고노동자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8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