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LG전자 노사의 이른바 ‘노경관계’는 오랜 기간 노동계와 학계의 연구 대상이었다. LG전자 노사는 노경관계를 기존의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역지사지의 상생관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자산업은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는 신기술 경쟁과 글로벌화라는 무한경쟁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사는 19년 동안 무분규를 이어왔고,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2월28일 취임하면서 ‘대기업 책임론’을 펼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보수언론과 사용자단체들은 ‘노동계의 양보’를 환영했지만, 노동계의 평가는 엇갈렸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일 박준수(54) LG전자노조 위원장을 서울 문래동 노조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쪽 벽에 ‘역지사지’라고 쓴 표구가 눈에 띄었다. 남종 LG전자 부회장이 박 위원장의 취임을 축하하면서 준 선물이라고 했다.

“임금동결 재원, 비정규 노동자 위해 쓸 것”

박 위원장이 노조위원장 선거에 도전하면서 내건 슬로건은 ‘행동하는 지식노동자’였다. 그는 자신을 ‘유연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에게 보낸 대의원들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지난 1월16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박 위원장은 단독후보로 출마해 대의원 105명 중 101명의 지지를 받았다. 박 위원장은 “지금까지 LG전자의 노경문화를 계속 발전시켜달라는 조합원들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지난달 7일 임금·단체협상에서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경총은 환영성명을 냈고, 보수언론들은 노동계의 ‘양보’를 칭찬했다.

“임단협 체결하고 3월 한 달 동안 현장을 돌며 조합원들을 찾아 직접 설득했죠. 임금동결에 왜 조합원들이 서운해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은 고용안정을 지켜달라는 얘기를 더 많이 하더군요.”

임금동결로 생기는 재원으로 마련할 ‘사회공헌기금’의 쓰임새도 관심의 대상이다. 박 위원장은 “노경이 합의서를 쓰기 전에 임금동결하면서 생길 재원으로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자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년 1월이면 경영평가를 한 뒤 성과급을 받는데, 같이 고생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생산직 가운데 정규직-비정규직의 비율은 3대 7 정도다.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현대자동차가 주축이라면, 한국노총 금속노련에서는 LG전자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박 위원장은 최근 공방이 일고 있는 대기업노조 책임론에 대해 "대기업노조가 소외계층에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LG전자 창원1지부장 시절부터 조합원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다고 한다.

“유가·원자재·물가가 모두 높은 3중고 상황입니다. 사실 국내 경제주체들이 잘못한 부분보다는 외부적인 영향이 큽니다. 그렇다고 외부요인만 탓하고 앉아 있을 순 없죠. 노사관계를 안정시켜 파이를 키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 공정한 분배를 해야겠죠. 대기업노조들은 사회약자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임자임금 금지하면, 문 닫을 노조 많다”

2010년 시행될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뜨거운 감자’다. 그는 복수노조로 노·노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로 노동운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사에 사무직 직원들이 만든 ‘디지털보드’라는 협의체가 있어요. 사무직노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사무직 협의체와 올해와 내년에 자주 만날 생각입니다. 2010년에 별도로 노조를 만들기보다 ‘지금 있는 노조도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특히 전임자 임금지금 금지 조항을 두고 노사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법으로 노조전임자 임금을 금지한 나라는 없다. 현재 LG전자노조는 서울본부와 지역에 10개 지부를 두고 있고, 전체 전임자수는 27명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이 법으로 금지되더라도 대기업노조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중소·영세사업체 노조들이 겪을 고통이 문제죠. 예를 들면 얼마 안 되는 조합원들이 전임자 임금을 주기 위해 많은 조합비를 갹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겁니다. 때문에 전임자 임금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노조를 말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입니다.”

산별노조, “원칙은 동의, 현실은 준비 부족”

LG전자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사업장 중 최대 사업장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산별노조 추진의 지렛대 역할을 했듯, LG전자노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금속노련은 오는 11월 산별노조로 전환한다는 목표로 세우고 있다.

“기본적으로 산별노조 추진에 동의합니다. 노조의 힘이 커지고 중소·영세업체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바람직하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점이 많아요.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업체 노조 위원장들도 자기 자리가 없어진다고 걱정합니다. 기득권을 걱정하는 대표자들이 많아 산별추진이 지지부진한 측면도 있죠.”

박 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별교섭에서 대표적인 기업의 대표자들이 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금속노조의 산별노조 추진 과정을 면밀히 주시하고,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보완할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물론 선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산별노조 추진은 5월에 있을 금속노련 위원장 선거를 마치면 심도있게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이나 사용자들의 정서를 봤을 때 준비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준수 위원장은…>
박준수 LG전자노조 위원장은 5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공고와 창원전문대를 졸업했고, 86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2001~2007년 LG전자노조 창원1지부 지부장을 지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는 80년대 후반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후배 사이다.
 

박 위원장은 1남5녀 중 장남이다. 15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국화빵장사를 하며 어머니와 함께 동생 다섯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도 했다. 노조 활동은 88년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됐다. 그는 자신을 “화끈하고 거짓말할 줄 모르는 의협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좌우명은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業 ).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원대한 장래를 설계를 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월16일 18대 LG전자노조 위원장에 선출됐다. 현재 한국노총 경남본부 의장도 맡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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