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표된 한나라당의 총선 공약에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를 공사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우정사업본부는 외청 분리 없이 공사화 된 후 장기적으로 민영화나 지주회사 등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우정사업의 권리와 독립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우정청' 설립을 요구해 온 전국체신노조는 한나라당의 공약 내용이 공개된 후 연일 초상집 분위기다. "인위적인 인력 감축은 없을 것"이라던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을 받고 1월20일로 예정됐던 대규모 집회까지 유보했던 터라, 노조가 받은 충격의 여파는 더욱 커 보인다. 노조 내부에서는 "한국노총과 정책연대 한 결과가 구조조정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공공부문 산별연맹들이 공공기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대책기구를 출범한 2일 <매일노동뉴스>가 이원희(55) 체신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최근 '명예퇴직'이라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 상태다. 이 위원장은 "공사화 저지 투쟁이 본격화 되기 전 후임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후임자가 투쟁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진=정기훈 기자
- 위원장의 퇴직 결정으로 노조가 술렁이고 있다.

"우정사업분부가 워낙 거대한 조직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사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실제 사업이 추진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 정도에 공사화 추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장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인데, 그때 그만두면 후임자가 곧바로 투쟁에 돌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후임자를 세워서 현안 파악과 투쟁 준비에 돌입해야 정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위기가 오니까 피하려고 한다는 여론이 없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비판 여론은 감안하면서까지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임기를 끝까지 채우면,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 수도 있다."

- 공사화 또는 민영화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되나?

"지식경제부노조와 체신노조로 구성된 민영화 저지 TF팀은 계속 가동될 것이다. 현재의 우정사업본부를 유지하거나, 우정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보편적 사회서비스인 우편서비스가 경제 논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또한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무원 대령감원의 희생양이 돼서도 안 된다."

- 한나라당 총선 공약에 우정사업본부 공사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 공약이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 한국노총에 왔을 때 "걱정 말라"고 약속한 바 있다.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가 우정사업을 민영화 하고 인기도가 올라갔는데, 이 대통령이 그 뒤를 밟겠다는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일본 내 거대 공룡기업에 대한 구조개혁의 성격이 짙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우체국의 60% 가량이 산간벽지나 면단위에 있는데 이를 공사화 하면, 효율성을 잣대로 한 우체국 폐국이 뒤따를 것이다. 국민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해온 집배원들과 우체국 창구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국민 불편만 초래하는 구조개편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 정부는 우편·우체국예금·우체국보험의 공공성과 기업성을 조화롭게 관리하기 위해 정부 부처형 조직에서 공사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정사업본부는 특별회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곳 공무원들은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벌어 스스로 가져 간다. 매년 2천억원에 달하는 흑자가 발생해 정부 일반회계에 보태고 있다. 공공성과 기업성의 조화가 이미 자리 잡은 구조다.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인데 조직개편이 왜 필요한가. 공무원 수 줄이기 수단으로 공사화를 악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 일반 공무원들과 달리 기능직 공무원인 체신노조 조합원들은 노동3권을 보장 받는다. 구조조정에 대비해 단체행동을 포한한 강경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요구다. 특히 한나라당의 공사화 공약이 나온 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을 탈퇴해 민주노총에 가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체 조합원들이 원한다면 상급단체를 변경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강경 조합원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의견 수렴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다. 한국노총 공공기관 구조조정 저지 대책기구가 출범했다. 체신노조는 이들 노조와 함께 강경하게 투쟁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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