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을 민주노동당 선거운동본부는 ‘초절정·스피드·드림팀’이라고 명칭을 정했다. 박인숙(42)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지역구 후보로 결정된 이후 30일 동안 지역민심을 다지기 위해 필요한 건 ‘스피드’였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23년 간 끈기 있게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왔다는 점과 중앙정치 4년의 경험, 학교급식조례제정 통과 등 지역사회운동을 두루 경험한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소개했다. 80~90년대 노동조합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 인노협 시절 알게 된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박 후보와 24시를 함께하고 있다.

- 총선에 나서게 된 배경.

“86년도부터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서 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노동자가 승리하는 그 날까지 싸운다는 약속을 했다. 대선 이후 진보의 구심인 민주노동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 번이나 여성위원장이라는 당직을 맡은 사람으로서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지역선거에 나가는 것이 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명박 부자정부시대에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이 국회로 진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경제살리기 구호는 넘쳐나지만 그 속에 노동자가 빠져있는 상황에서 노동과 여성, 서민의 편이 필요했기 때문에 출마한 것이다.”

- 후보구도와 경쟁력은.

“계양을은 연고가 있는 곳은 아니다. 당활동도 취약하다. 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지역을 개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송영길 통합민주당 의원이 2선한 지역으로 압도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평화통일가정당 등 5자구도다. 송영길 의원은 대표적인 386주자였지만 개혁주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번 선거공약도 개발중심의 공약으로 한나라당과 구별이 없다. 경인운하와 계양골프장 건설에 찬성하고 뉴타운과 명문고를 육성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다른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두 번의 후보자간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만이 정책적 차별성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 지역구의 유일한 여성후보다.

“총선 슬로건이 여성과 아이가 행복한 계양이다. 다른 낙후된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교육이 잘되는 곳으로 보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30대 엄마가 많은데 보육시설이 없어서 아이들을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많다. 여성 일자리의 문제와 취학 전 무상보육의 문제, 아토피 스톱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30~40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 지역 특성 및 현안을 소개한다면.

“계양산 골프장과 경인운하 건설이다. 지역의 유일한 녹지인 계양산을 친환경생태역사공원으로 만들어서 지역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일부 재벌이나 부자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골프장 건설을 통한 고용효과는 비정규직 포함해서 100명이 채 안된다. 세수도 7억밖에 안 된다. 경인운하는 원래 굴포천의 방수로 공사 차원에서 얘기됐던 것이다. 홍수시 물조절을 하는 기능이지 물류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원래 계획이 없던 만큼 백지화해야 한다. 여기 계양에서 서울까지 얼마나 많은 물류를 실어나갈 수 있는지의 문제와 물류운하로서 하천의 폭과 너비에서 효용성이 떨어진다. 송영길 후보는 대선에선 경인운하에 반대하다가 총선에서는 이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인운하 착공은 경부대운하의 건설의 전초전이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권이라는 큰 꿈을 꾸는지는 몰라도 경인운하 건설은 국가의 장래와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차원에서 볼 때 비극이 될 것이다.”

- 선거 목표는 무엇인가.

“당선이라는 기본적 목표는 있지만 이 보다는 계양구에 진보정치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사람과의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 단기에 승부를 걸기보다 중장기 적으로 계양구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 여성의 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희망이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제목
출신지 : 전북 정읍
소속 :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총선 출사표 : "부자정부시대 서민을 향합니다."
내 인생의 경구 :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내 인생의 감동 : 87년 인천지역 민주노조 사업장 중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건설했을 때.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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