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공사에게 올해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농촌공사노조가 스무번째 생일을 맞았다. 지난 88년 설립된 영산강 농지개량조합노조가 농촌공사노조의 시작이다. 공사도 올해로 설립된지 100주년이 된다. 1908년 전북 옥구서부수리조합으로 첫발을 뗐다.

김종석(50) 노조 위원장에게도 활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스무해가 된다. 앞장서서 노조설립을 주도했었다.

“20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지난 2001년 3개 노조 통합할 당시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통합위원을 맡았었는데 조합원들간 이해관계가 달라 이를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어요. 씻지도 못하고 회의만 했었죠. 당시 회사의 직급통합안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기도 했어요.”

농촌공사의 역사는 통폐합과 조정의 연속이었다. 수차례 명칭 바뀌었고, 조직체계도 수시로 변경됐다. 지난 2000년에는 전국농지개량조합과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가 통합해 농업기반공사가 설립됐고, 2005년 농촌공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노조도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공사 통폐합과정에서 동료 3천여명이 길거리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양 노총에 흩어져 있던 3개 노조가 2001년 통합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조직간 갈등을 겪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노조와 조합원들의 노력으로 현재는 갈등이 봉합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취임 직후부터 노사한마음전진대회와 청렴·혁신결의대회, 경영문화개선위원회 등 전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지난해 열흘 가까이 진행된 임금인상투쟁도 조합원들의 뜻을 하나로 묶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89년 수세(농수 공급에 따른 세금) 폐지를 놓고 농민들과 갈등을 빚었던 일도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함께 부딪히며 살았던 분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적이 된 거예요. 수세폐지를 계기로 농민회가 활성화 되기도 했죠.”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당시 위원장이었던 신기준 후보를 두 배 이상 표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70% 가까운 조합원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전남지역본부장을 세 번 역임했다. 또 한국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정서를 잘 읽어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고 말했다. 노조활동경력 20년 동안 늘 직원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달려갔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인들은 그에 대해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너그럽다”고 평가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기부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성 기준으로 구조조정 판단안돼

김 위원장은 “임기 내에 설립 20주년을 맞게 돼 영광”이라면서도 “어려운 시기지만 책임지고 조직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조합원들이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다.

조직 전체의 경사지만 축배만 들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김 위원장은 잘 알고 있다. 다가올 현실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4월 총선 이후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미FTA가 발효될 경우 국내 농업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이에 따라 공사의 운명도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 농업 서비스기관은 농촌공사가 유일합니다. 경제성을 들이대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논리입니다. 식량자급률이 3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식량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공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농업기반을 강화할 때입니다.”

김 위원장은 “농촌공사 존립은 국민들의 생명과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공사는 돈이 안되는 사업만 하고 있다. 전체 예산의 97%를 정부예산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구조조정 1순위다. 그러나 농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농업용수와 농경지 관리, 농지개발 등 농촌공사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300개에 달한다. 정부도 이를 인정해 준정부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노조의 바람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혁신도시 건설 등으로 우량농지가 줄어들고 있다. 새만금의 경우 처음에는 농지로 개발한다고 했다가 농지비율 70%로 대폭 줄였다. 이제는 30%만 농지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어떤 지역주민이 공부 못하면 농촌공사 직원처럼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난 6~7년 동안 3천명 이상을 줄였기 때문에 더 이상 감축할 인력이 없어요. 한 사람이 두 세 사람 몫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직원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어요. 14개 정부투자기관 가운데 임금과 복지수준이 최하위입니다. 자부심 하나로 버티는 거죠.”

김 위원장은 “정부와 노조는 공존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행할 경우 노조의 유일한 권한인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화가 최선이지만 고용안정이 위협받을 경우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외활동에 적극 나설 계획

김 위원장은 투명노조, 정책노조, 행동하는 강한 노조, 복지노조를 약속했다. 희망을 주는 노조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지난 1년 동안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던 40가지 공약 중 절반 이상 달성했다. 조직 내부적으로 산적해 있는 과제들도 많이 해결했다는 평가다.

현재는 대외활동에 눈을 돌리고 있다. 노조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 집행부와 달리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공공연맹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과 관련된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전국농민회, 축협노조 등 농업 관련 18개 단체로 구성된 연합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은 “참여하는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지 불만과 요구만해서는 안된다”며 “정당한 목소리 내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게 노조나 조합원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합원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조합원들과 같이 울어주고 웃어준다면 그게 올바른 활동 아닐까 싶어요.” 그는 “위원장에 당선될 당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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