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전력 배전분할 중단이라는 노사정위원회의 정책권고가 나오기까지 전국전력노조가 중심에 있었다. 자회사인 발전사노조가 장기간 파업으로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맞섰다면, 전력노조는 치밀한 해외조사 등을 통해 정부의 민영화 논리를 무너뜨렸다.

지난 4일 전력노조 위원장에 세 번째 당선된 김주영(46) 위원장은 당시 노사정위 공동연구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김 위원장에게 전력산업구조개편의 회오리가 다시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

정부 논리를 이기기 위해 노정 연구단 구성을 제안했다는 그에게 새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주영 위원장의 전술은 의외로 명확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왜 중단돼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은 이미 2004년 6월 노사정위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새로운 논리도 필요없기 때문에 투쟁이 불가피하고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 새 정부 들어 전력산업구조개편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인수위 시절 기획예산처는 배전부문 경쟁도입과 민영화를, 산자부는 송·배전부문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보고했다. 테마섹 방식도 나오고 있다. 노조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뭔가 변화가 오는 느낌은 있다. 대통령께서 후보자 시절 한국노총 산별대표자와의 간담회를 통해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경쟁력, 서비스정신을 인정하면서 민영화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공이 '공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인 경제학자들이 자기들 인기관리를 위해 자가발전하고 있다. 민영화가 모든 공기업에 적용되는 것이 맞는지 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산자부든 기획예산처의 보고서에는 그런 고민이 없는 것 같다."

- 당선된 뒤 전력산업 배전분할 중단은 2004년 6월 노사정 합의사항임을 강조했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9개 나라 32개 기관을 방문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을 뒤집으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노사정 합의를 뒤집을 만한 이론도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성공사례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것인지 검토해야 하는데 경제학자들은 원론수준의 얘기만 한다. 시장 경쟁이 좋으냐, 독점이 좋으냐 논리만 갖고 말하는데 전기의 특성을 모르는 문외한들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통합 한국전력으로 돌아가야"

- 일선 현장 분위기는 어떠한가.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10년 가까이 구조조정 스트레스에 시달려 불안감들이 존재한다. 전력 구조개편 논의가 재론되지 않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배전분할을 중단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조 지도부가 잘 마무리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 발전사가 분리되기 전인 통합 한국전력으로 되돌아 가야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발전이 분리되고 분할돼 경쟁효과가 생겼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 2001년 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분리 뒤 진행된 전력산업구조개편 효과가 없다는 것인데.

"5개 발전사와 수력원자력이 따로 분리되면서 (고위직)자리만 늘어나고 비효율적인 요소들이 생겨났다. 과거 통합 한국전력일 때는 연료 구매력이 일본보다 좋았는데 지금은 더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 공동연료구매가 시도되고 있는데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다시 통합을 해야 한다. 2006년 4월 제주도에서 2시간30분 동안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회사를 쪼개 놓은 폐해였다. 그 작은 섬에 한국전력을 포함해 남부발전·전력거래소·한전KPS가 전기를 운영하고, 유지·보수도 한다. 정전사태가 일어나도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안 됐다. 분할되고 한전에 계통운영권이 없어 전력거래소 지령을 받아야 한다. 통합 한국전력 시절에는 정전이 돼도 금방 복구됐다. 제주도부터라도 통합한다면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 전력산업 역시 적자를 이유로 구조개편이 얘기되는데.

"연료값은 오르는데 정부는 서민부담 완화를 위해 물가를 내린다고 한다. 당연히 서민들에게 전기요금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연료값이 상승하는데 무슨 근거로 물가를 내리겠다는 건가. 그러면 적자를 얘기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포퓰리즘도 이런 포퓰리즘이 없다.

결론은 민영화를 통해 전기요금을 올리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정책요금을 시장요금으로 바꿔서 서민들이 전기를 아끼게 하겠다는 논리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지 120년이 됐다. 짧은 시간 동안 경제성장을 하는데 한전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기업이 값 싸고 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전 노동자만 500여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지켜온 전력산업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밀실에서 논의하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기술개발, 통일시대 고민해야"

- 전력산업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뭘 고민해야 하나.

"외국 보고서를 보면 앞으로 65년 뒤에 화석 연료가 고갈된다. 이 시점에서는 전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 연료전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태양광과 태양열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분할·경쟁·민영화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사회적 파장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논쟁을 계속해야 하나. 오히려 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 최근 노동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통일시대 전력산업을 강조했다.

"통일시대라는 것은 통일 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북한에 전기를 주는 것은 '퍼주기'가 아니다. 전기 철탑과 인프라는 그대로 남는다. 미리 투자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북한의 경제사정을 끌어올리려면 남쪽의 전기가 들어가야 한다. 통일시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북쪽에 전기를 공급할 것이다. 민영화된 기업이 전기를 공급할 것 같은가. 우리나라 전력망은 고립돼서 마치 섬나라와 같다. 에너지의 98%를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나 중국과 연결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구조개편을 밀어붙이면 국민들만 피해 본다."

"논쟁은 끝나, 투쟁만 남아"

- 김대중 정부 시절 전력노조는 노사정위 논의를 통해 배전분할 중단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발전노조는 38일 파업을 했다. 전력산업 노동자들의 민영화저지 투쟁을 평가한다면.

"전력노조가 어용노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유감스런 부분이 있다. 국가기간산업의 핵심인 전력을 멈추고 파업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고,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전력산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 왔고 우리의 주장은 현실화됐다. 싸워본 경험은 없었지만 전력산업을 지키려는 열정은 누구보다 높았다. 전력산업구조개편 법안이 통과되고 전력산업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발전노조가 파업을 했다. 후유증도 있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정당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정부를 이기기 위해 노정 연구단을 제안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배전분할은 중단됐다. 노조가 직접 참가해 발언했고, 우리 주장을 관철시켰다. 전력노동자들이 싸웠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지켜낸 것이다."

- 정부의 민영화 논리에 맞서는 노조의 논리는 무엇인가.

"논리적으로는 이미 정리가 다 됐다. 전력 민영화를 하면 왜 안 되는지 2004년 6월에 나온 배전분할 중단 권고문에 모두 들어가 있다. 새롭게 논의한다고 해서 달라질 내용도 없다. 일단 국민들에게 전력산업의 중요성을 알려 내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환기시키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투쟁하겠다. 파업도 불사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전력산업 규제로 회귀하는데 한국에서 밀어붙인다면 투쟁을 피해갈 수 없다."

-발전노조 등과의 연대투쟁 계획은.

"전력연대라는 틀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양대노총 소속의 9개 사업장 노조가 참가하고 있다. 집행부 성향과 관계없이 전력산업을 지키기 위한 연대투쟁은 당연하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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