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분열사태 속에서 민주노총의 두 전직 위원장의 선택은 엇갈렸다.

4년 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꿈을 안고 국회에 입성했던 한 전직 위원장은 당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또 다른 전직 위원장은 침몰위기의 ‘민주노동당호’를 구하겠다고 승선했다.
떠나기로 한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인 단병호(59) 의원.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다. 숱한 나날 고뇌한 결과라고 했다. 지난 11일 단병호 의원을 만났다.

단병호 의원은 지난달 20일 아침 현관 앞에 붙인 ‘민주노동당 당원의 집’이란 스티커를 스스로 떼고 나와 민주노동당 탈당과 18대 총선 불출마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대중조직과 의회의 교량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 어떤 고민 속에서 탈당을 선택했는지를 듣기 위해선 4년 전 국회 입성 당시 포부를 듣고 싶다.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 말인 2003년 12월께 주변에서 직접 국회에 들어가서 민주노총이 그동안 주장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하는 역할을 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당초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으나 갈수록 동지들의 요청이 강해졌다. 추상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국회에서 구체화된 정치적 행위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대변하고 이를 위한 정책의 제도화, 대중조직과 국회와의 교량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 지난 4년에 대해 냉정히 평가한다면.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 원내와 원외활동을 소통시키고 의회활동을 강화하는 원외의 힘을 조직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했는지라는 측면에서 원활하지 못했단 평가를 스스로 내린다. 17대 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로드맵·산재보험법 등 주요 법안이 커다란 정치적 의제였으나 원내외가 잘 소통이 안 됐다. 생각처럼 잘 안 됐다.”

의회 내는 생각보다 더욱 공고했다고 한다. 의욕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입법 활동을 벌여왔다. 바깥의 노동관련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고민과 토론 속에서 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회에서 실제 정책으로 완성됐느냐의 문제는 다르다는 냉정한 평가다.

- 왜 원내외 소통이 예상과 달리 안 됐는가. 지금 민주노동당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의원단의 제도권화를 꼽기도 한다.

“그렇다. 원활하지 못했다. 그러나 복잡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서 한 마디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의원들의 능력의 문제일수도, 혹은 구조의 문제일수도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 작동 속에서 나타난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바깥 힘을 같이 조직해서 의회와 소통의 교량역할을 염두에 뒀지만 잘 안된 것이 사실이다. 왜 안 됐는가, 여러 가지 정황과 조건을 놓고 평가해야 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다”

- 그런 와중에 대선참패와 분당사태가 터졌다. 하지만 단 의원은 당이 소용돌이 칠 때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당시 적극적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처음부터 판단했다. 이미 내가 성명을 내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능하면 분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노력했다.”

단 의원은 분당을 결심한 이들을 만났다고 한다. 갈라지기 전 원인이 뭔지 평가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미 서로 같이 갈 수 없는 조건만 확인되는 상황이었단다.

“논쟁 자체가 처음부터 내가 수용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조직 내 패권은 있었다. 다수의 힘이 잘못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패권의 존재는, 조직을 어렵게 했고 조직의 힘을 모으는데 장애가 됐다. 하지만 당시 나의 고민은 자칫하면 대중운동의 붕괴, 진보정치의 공멸까지 이어지게 될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 단 의원은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때문이라고 이미 규정지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왜 실패했는가.

“최소한 진보정당으로서 자기 이념과 가치를 실현할 강력한 정치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토대는 당의 확고한 정치적 기반, 노동자 농민이다. 그 속에 확고히 뿌리를 내려야 했다. 일반적 외연확장의 측면에서 노동자 숫자만 늘리는 게 정치의 토대인가.”

단 의원은 이 같은 실패는 당의 강령 수행을 위한 통일적 정치적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각종 정파적 논리가 작동되고 패권적 질서가 행사됐다는 평가다.
“진보적 정책의 개발과 새로운 어젠다의 정치화보다는 내부 권력화에 치중했다. 당내에서도 과거처럼 긴장감과 경각심이 없어졌다. 도덕적 해이도 나타났다. 당 활동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나타난 문제들이다.” 

 

 “민주노총은 책임이 없다. 당의 문제일 뿐”

- 배타적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에 대해 민주노총의 책임은 없다. 당의 어려움에 대한 책임이 민주노총에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당원 확대 등 역할은 다했다. 당원을 만드는 것은 당의 역할이다. 당이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조합원으로만 남고 당원으로 남지는 못했다.”

- 단 의원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과 부문할당의 역기능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으로 작동돼왔다. 앞으로도 역기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제도 자체가 갖는 문제다. 당은 배타적 지지만 받고 싶어 했지 노동자를 당의 기간대오로서 양성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를 내 호주머니 속의 카드 정도로 인식한 게 아닌가.
부문할당제도 역시 민주노총은 정책을 당에 요청해서 적극 관철시키려 노력하기보다 할당된 대의원, 중앙위원을 통해 쉽게 접근하려 하게 했다.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이미 확보된 의사결정 구조 내에서 반영시키려는 손쉬운 방법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이것이 조직의 생동감을 떨어뜨렸다.”

-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철회돼야 하는가.

“그렇다. 철회하는 게 맞다. 앞으로 진보정당이 몇 개가 될 지 알 수 없다. 어느 것 하나가 절대가 아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출범할 때 상황하곤 다르다. 무리하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잘못하면 대중조직에게 심각한 상황을 야기시킬 수 있다. 또한 힘을 모아야 하는 조합원의 정치적 의사를 제한시킬 수도 있다.”

- 지금 분당사태가 대중조직에 미치는 파장에 대한 우려가 보인다. 항간에서는 분당사태로 인해 민주노총의 분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문제가 가장 곤혹스럽다. 분당이 몰고올 파장이 어디까지 갈 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진보정당이 노동자를 토대로 하지 않고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중조직이 무력화될 때 진보정당이 서있을 수가 없다. 조직노동자가 1차적 기반인 상태에서 비정규직까지 확대시켜야 한다. 하지만 분당이 대중조직 내부의 갈등을 넘어 프랑스처럼 정치조직과 바로 직결되는 분화과정으로 간다면 우리나라는 최악의 상황이다.” 

“사퇴한다고 해결될 문제면 차라리 간단하다”

- 앞서 4년의 의정활동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많다. 민주노동당 전략명부 2번 비정규직 홍희덕 후보는 지난 비정규직법 통과 당시 단 의원이 책임지고 사퇴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비단 홍 후보만의 평가는 아닐 것이다.

“그런 평가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평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논쟁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의원직 사퇴가 책임지는 것이었다면 간단했을 것이다. 그 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가 의회 내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자본의 힘을 깨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이 같이 달라붙어줬어야 한다고 점이었다고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부가 법안을 낼 때는 사전에 자본과 조율된 입장이란 점이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어떤 법안이든 정책이든 타협의 폭이 좁다. 결국 이를 깨는 힘은 국회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외부의 힘 없이는 바꾸기 어렵다.”

외부의 힘은, 결국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대중조직의 힘을 말하는 것일 테다. 민주노동당 의원만으로 구심력이 형성되지 않으니 대중조직과 원외정당이 원심력을 발휘했어야 같이 발휘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비정규직법 통과에 앞서 2년 간 수십 차례 회의장을 봉쇄하는 등 별짓 다했다. 안 됐을 때 사표를 냈어야 한다고 평가를 너무 단순화 한다면 이후에도 똑같은 학습이 반복될 것이라고 본다. 다음에는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국회에 입성할 게 아니냐. 국회의원들이 의회내에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엇이 한계인지 냉철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노동자계급 중심성이 진보정당의 핵심이다”

- 탈당 이후 정치행보에 대한 관심들이 높다. 진보신당으로 가는가.

“진보신당은 4·9 총선 이후 새로운 당을 만든다고 할 때 생각을 해보고 있다. 지금은 총선용으로 만드는데 굳이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4·9 총선 이후 새 당을 만들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비롯해서 진보정당의 가치설정 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과정, 노동자 중심성이 확고한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역사적 임무이기도 하다.”

- 진보신당은 평등·생태·평화·연대의 핵심가치를 내걸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진보신당은 내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의 모습과는 다르다. 다만, 총선 이후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에 이후 만들고자 하는 정당에 대해 성급히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속단할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 어떤 모습이 생각과 다른가. 진보정당은 핵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신당은 비정규직·생태·환경·여성·소수자 등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못한 부분에 대해 많이 제기한다. 물론 다 중요하다. 하지만 수평적 나열이라면 곤란하다. 환경이든 이주노동자 문제 등 핵심은 모든 것이 노동자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노자 간 문제와 직결된다. 사실상 수평이 아니다. 노동자의 의식전환과 주체적 행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문제해결에 한계가 있다.” 

“재결합 쉽지 않을 것”

- 민주노동당 권영길·천영세 의원은 이후 두 당의 재결합을 말하기도 한다.

“권·천 의원은 우리사회를 바꾸려면 진보의 힘을 하나로 묶어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힘이 모아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그렇게 되긴 어렵지 않겠느냐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워낙 분화초기라서 기반이 제한돼 있고 각자 성장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후 모아질 수 있는 요인이 작동하기보다 자꾸 멀어지는 요인이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당분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같이 가야 할 노력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난달 불출마 선언 뒤 단 의원은 고향이자 출마를 준비했던 포항에 내려가 지인과 주민 등을 만나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에 탈당계를 내는 시점은 오는 20일로 예정해 놓고 있다고 했다. 이 때까지는 그동안 지난 4년 간의 의정활동을 정리하는데도 힘을 쏟고 자문위원 등 그동안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도 하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마도 고민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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