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벗어나기 힘든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분석결과가 나왔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부)와 남재량 한양대 교수(경제학부)가 지난 해 12월 한국노동경제학회의 노동경제논집을 통해 발표한 '비정규직, 가교(Bridge)인가 함정(Trap)인가?' 연구논문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정착하는 경우는 전체 비정규직 종사자의 0.5-0.7% 정도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두 교수는 "일단 비정규직에 빠지면 그 곳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대부분 비정규직과 실업 및 비경제활동 또는 비임금근로를 옮겨다니게 되므로 비정규직 종사자 대부분의 노동시장 신분은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비정규직들, 어디로 옮겨가나" = 이번 연구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패널로 구축한 경제활동패널 자료 등을 이용해 이루어졌다. 우선 주목할만한 것은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경우 주된 탈출경로는 비경제활동상태이며, 견제위기로 인해 실업으로 벗어날 가능성도 크게 높아졌다.

93-99년까지 비정규직에서 비경제활동상태로의 유출률이 4-5%수준으로 가장 높고 유출자수도 20-30만명으로 압도적이다. 특히 비경제활동상태를 제외하면 97년까지는 정규직, 비임금근로, 실업의 순서로 유출률이 높았으나 98년들어 실업이 3.7%로 크게 높아지고 비임금근로가 1.9%로 상승한 반면, 정규직화는 1.7%로 순서가 완전히 역전되고 격차도 커졌다.

이에 대해 두 교수는 "'비정규직->비경제활동, 실업->비정규직'이라는 일종의 폐쇄회로속을 전전하는 거대한 근로자 군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정규직으로 옮겨가도 오래 머물지 못해" = 96년1월과 98년1월에 비정규직에 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2년동안 추적관찰한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은 과연 함정인가'에 대한 답변은 더욱 명확해진다.

96-97년의 경우 비정규직에서 떠난 40만명 가운데 3개월내 다시 비정규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15만명이며 이러한 복귀율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51.1%, 1년이 경과할 경우 68.0%, 그리고 22개월째에 이르러 80.7%에 달했다. 98-99년에도 22개월 복귀율은 80.9%로 별 차이가 없어,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비정규직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다시 비정규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2년도 안돼 80%를 넘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겨간 사람들 가운데 22개월까지 정규직에 머무는 사람들은 96-97년에 2.7만명, 98-99년에 3.7만명에 그치며, 이는 결국 비정규직 종사자 100명 가운데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0.5-0.7명만이 '가교'역할로써의 비정규직을 경험했다는 결론을 낳게 한다.

▶"비정규직은 주로 취약계층" = 비정규직들은 주로 어떤 계층으로 구성돼 있나? 먼저 여성의 비율은 51.8%(99년)에 달하는데, 상용직의 여성비율이 98-99년 25%에도 이르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정규직 취업자의 2배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또 24세 이하의 청소년이나 55세이상의 고령인구가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99년말 현재 16.6%, 13.5%인데 비해 정규직은 9.4%와 6.2%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97년에 이르러 비정규직의 고졸비중이 정규직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는 한편, 직종분포도에서도 단순노무직, 기능원 및 관련기능, 서비스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등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직무능력을 요구하는 직종이 많다.

결국 두 교수는 "비정규직 종사자중 여성, 고령자, 청소년, 저학력자 등 주로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며 "이 역시 함정으로서의 비정규직의 가능성을 제기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