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은 오는 28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장석춘 차기 집행부를 출범시킨다. 3년8개월을 달려온 이용득(54) 위원장의 임기도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임기 내내 뉴스메이커였고 노동계라는 무대의 단골 주연배우였다. 이 위원장이 최근 자주 인용하는 시구가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 위원장은 김대환 노동부장관 퇴진 투쟁, 김태환 열사 투쟁, 비정규직법 및 노사관계 로드맵, 외국기업 투자유치,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 정립, 노사발전재단 설립, 정책연대 성사 등 많은 일을 했다. 그게 이 위원장의 ‘빛깔과 향기’일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내달린 지난 일들을 뒤로 하고(완결을 짓지 못한 채) 한국노총을 떠난다. 이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한국노총으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해왔던 커리어를 통해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꽃’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또 그의 향후 행보와 정책연대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의 인생 4막1장은 바야흐로 개봉박두다.

사진=정기훈 기자

- 위원장 임기가 10여일 정도 남았다.

“보통 일을 마무리할 시점에는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섭섭한 부분은 없다. 시원한 부분만 있다. 그런 성격이 추진력으로 나타났던 것인지 모르겠다. 일을 하지 않았을 때가 없었고, 기존 일을 반복하기 보다는 상황변화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일들을 오랫동안 해왔다. 금융노조 위원장이든 노총 위원장이든 시대변화를 이끌어내는 일, 변화를 주도하는 일을 하다보니 피로가 쌓인 것도 사실이다. 우선 쉬고 싶다는 인간적 소회가 들었다. 후배들이 나보다 잘할 것으로 믿고, 맡기고 떠난다. 노동계에 다시 돌아올 기회는 없을 것 같다. 4년 후에는 조합원 자격이 없어진다. 이를 무한정으로 늘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 위원장 출마 포기는 적잖은 충격을 줬다. 결심의 계기는 무엇인지.

“어느 한군데 오래 하다보면 싫증을 내는 편이다. 3년8개월 동안 위원장을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은 노동계와 정부, 사용자 이 모두가 변해야 하는데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발목을 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선거는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당선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봤다. 하지만 내가 당선됐다고 했을 때 개혁과 보수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정책연대를 한 지금도 (한나라당이) 파트너로서 상의하지 않는데, 갈라진 한국노총을 가지고 과연 정책연대가 제대로 되겠는가 생각하니 답답했다. 하나로 화합을 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게 조합원들에게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 비정규직법과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임금 등 노동계의 최대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정책연대가 과연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정책연대를 했다고 상대(한나라당)의 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인정할 수 없다. 정책연대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인 요구를 관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사회통합 차원에서 상생이 될 수 있다. 정책연대가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협상을 하는 경우 대화를 하기 전 단계까지가 힘이 많이 소요되는데 그러한 시간낭비를 줄이고 바로 현안으로, 연대 차원의 논의구조로 들어갈 수 있다는 데서 효과적이다. 많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자꾸 아웃사이더로 겉도는 것보다는 주체로서 직접 핵심에 빠르게 접근해 대화하고 해결하는 것이 힘있는 노동운동의 자세다."

- 정책연대 상대에 만족한다는 뜻인가.

“만족한다거나 만족하지 않는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페이퍼(정책협정 체결문)로만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연대를 어떻게 해나갈까에 대해 사회정책수석과 노동부장관이 자꾸 의식하도록 만들고, 정례 협의회를 제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서로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가야 한다.”

- 대선 정책연대가 총선연대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한나라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하고 있는데.

“조직적 결정이 누구에게나 다 만족을 줄 수는 없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나라당 외에 다른 정당과 앞으로 한국노총은 일체의 협상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함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총선에 대한 조직적 결정 때문에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공조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이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 이명박 차기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가 많다. 차기 정부의 친기업 행보는 이 위원장이 자주 비판하는 '노동 배제'가 아닌가.

“한나라당에 노동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게 한나라당의 취약점이고 문제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느냐. 노동운동을 하는 현장 운동가들이 제도권으로 안 간다는 이념적 원칙이라든지, 보수정치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운동권 내의 금기사항에도 문제가 있다. 노동조합은 경제 주체로서 사업장이나 지역, 더 나아가 정치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어느 쪽과는 아예 담을 쌓겠다는 것은 자기 방식대로만 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화가 아니다. 이번에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는 정례적인 협의기구와 한국노총 출신들의 참여를 통해 집권보수정당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든 비즈니스맨 프렌들리든 노동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이는 (노동운동권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이 너무 이념 중심이 되다보니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참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 보고 노동계 시각을 가지라고 밖에서 요구한들 되겠는가. 당 안에 똑같은 사람들뿐인데. 사람을 교체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바뀌도록 해야 한다. 현재 한나라당 안에는 노동문제를 얘기할 사람이 없다. 변화의 계기를 만들 사람들의 진출이 필요하다.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을 만들어야 하고, 그곳에 참여해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진=정기훈 기자
- 왜 그런 노력을 한나라당 틀 안에서 하겠다는 것인지.

“그럼, 바깥에서 계속 투쟁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가 노동계의 승리로 나타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노동계의 위기라고 하는 상황이다.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것으로는 노동계의 발전이 없다. 결과와 상황에 따라서 운동의 원칙도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발언 같은데.

“집권여당에 (한국노총이) 5석 이상 진출하도록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집권여당에 적어도 3~4명이 있으면 군소정당 의원의 30~40명과 맞먹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 있다면 당의 노동정책도 그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교섭을 통해 노동을 바꾸려고 해도 그것에 대한 법적 기반을 만드는 사람이 노동조합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면 어떤 정책이 만들어지겠는가. 법이 만들어진 이후 투쟁하고 비판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책연대를 한 한국노총 출신이 집권여당에 포진해 있으면 정책연대를 챙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정책연대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 한국노총은 어쨌든 정책연대의 구심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 민영화 계획과 '무파업' 실적에 대한 고용보험 기금과 지방교부세 차등지원 등 노동계를 자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수위가 됐든 당이 됐든 노동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정책을 만들어내니 정말 현장운동가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채찍만 가지고, 어떤 제재조치만 가지고 노사관계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전혀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지자체의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 이영희 노동부장관 인선에 대해서는.

“박미석 수석은 노동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그 밑으로 전문인력을 채워야 한다. 인사를 누가 짜는지는 몰라도 비서관이나 행정관 선임에서 한국노총의 의사를 물어본 적이 없다. 인선의 문제에 대해 논평하면, 논평이 좋으니 나쁘니 이딴 소리만 한다. 파트너가 무엇인가. 사전에 의논하는 게 파트너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최근 나오는 결과들을 볼 때 걱정스럽다. 이영희 장관 내정자는 과거의 경력을 보면 상당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노동관련 학회활동을 안 한지가 15년 정도 됐다.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지가 관건이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노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노동부가 중심이 돼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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