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에 못 미치는 임금과 고용불안…체신비정규직 '권리찾기'의 중심

"돈 더 안 받아도 좋으니 연휴엔 우리도 쉬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집배원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을 했다. 구랍 23일, 체신비정규직모임의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크기스마스 카드, 연하장 등 업무 폭주로 인해 집배원들이 가장 바쁜 연말연시인지라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많은 집배원 회원이 모이질 못했다.

상시위탁집배원 제도가 생긴 이후 이들은 우체국별로 자발적인 친목모임을 형성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정규직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 '권리찾기' 운동의 중심에 '체신비정규직모임'이 있다.

작년 가을쯤 4개 우체국 모임으로 시작된 체신비정규직모임은 현재 12개 우체국 모임의 2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지난 9월부터는 B4크기의 '좋은 만남'이라는 소식지도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갖는 정기모임이 열린 구랍 23일 오후 8시쯤 종로성당 3층 노동사목위원회 회의실. 먼저 박형동 회장의 근로기준법에 대한 짧은 '강의'가 있었다.

이어지는 분위기는 "우리가 몰라서 당했다"라는 성토대회다. 실제로 상시위탁집배원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근을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 삭감을 당해왔다.

그러다 박 회장이 정보통신부와 노동부에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한 연월차 휴가 적용문제에 대해 질의회시를 계속적으로 보내자, 박 회장이 소속돼 있는 서초우체국을 시작으로 해 연월차 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우체국들이 예산을 핑계로 해 연월차 수당을 다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체신비정규직모임이 모임을 확대하려 하는 이유중에 하나. 우체국별로 계약을 맺고 있는 많은 상시위탁집배원들이 아직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임금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박형동 회장의 대답은 간단하다. "법에 나와 있는대로 대우해줄 때까지 계속 요구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노조 가입"

김창호 여의도우체국 상시위탁집배원모임 회장은 "나처럼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 집배원이 체질에 맞는 직업"이라며 '직업자랑'을 시작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면 자신이 '사장'일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정규직 집배원은 공무원 신분이라 제약이 많지만 비정규직인 상시위탁집배원은 그런 제약도 없어 마음도 편하다고 '직업자랑'에 덧붙인다.

김 회장은 비정규직모임에 참여한 후 요즘 집에서도 노동법 공부에 여념이 없다. 아들에게 아빠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 즐겁단다. 김 회장의 모습에서 "이제는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배나오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배우는 기쁨이 흘러 넘친다.

이런 김 회장은 일년씩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 고용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인쇄업에서 일했던 김창호 회장처럼 상시위탁집배원들은 우체국에 입사하기 전 대부분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힘들지만 집배원 일 자체에 보람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고용불안은 가장 큰 그야말로 '불안'이다. 체신비정규직모임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모임의 목표를 '노조 가입'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노조 가입을 통해 고용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 "모든 노동자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박형동 회장은 작년에 서초우체국비정규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결과는 반려였다. 반려사유는 '복수노조'라는 것. 유니온 샵인 체신노조의 규약에는 가입대상이 비정규직까지 포함돼 있다.

비정규직만의 노조설립이 무산된 이후 박 회장은 체신노조측에 가입을 촉구하고 있다. 체신비정규직모임은 조합가입과 관련해 빠른 시일안에 체신노조측에서 확실한 답변이 없을 경우 노조 사무실에서 항의농성까지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체신노조에 노조가입서를 우편으로 발송했지만, 노조측에서 조합비를 공제하지 않자 이날 회의에서 조합비를 통화등기로 보내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체신노조 관계자도 분명 비정규직 집배원이 '전문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 수많은 우편물과 주소를 외우고 정확하게 배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체신노조는 오는 4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지만, 정부가 집배원을 비정규직화한 이유중의 하나는 '예산절약'이라는 명분이 있었을 텐데 비정규직 집배원에게도 조합원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체신노조는 대의원대회때까지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위해 대의원 설득 등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거듭 밝히고 있어,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활기 넘치는 체신비정규직모임의 이날 모임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활동들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기대되고 있다.

이들과 헤어진 후 이들이 건네준 체신비정규직모임의 월간소식지 '좋은 만남' 맨 머리에 씌여있는 글귀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모든 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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