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증권선물거래소 앞 코스콤비정규지부 농성장. 식사시간이 되면 박성오(36)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박씨는 농성장에서 ‘짬장’으로 통한다. 몇십 명 식사를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그의 ‘손맛’을 본 사람들은 백이면 백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어머니가 식당을 한 덕에 어려서부터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실력도 전문가 수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조합원이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 음식 만드는 것에 매달리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씨는 파혼의 아픔을 두 번이나 겪었다. 각각 7년, 3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날짜까지 잡아놓고 파경에 이른 것이다. 두 번의 파혼 모두 코스콤과 관련이 있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고 휴일에도 근무한 탓에 여자친구를 살갑게 챙겨주지 못했다고 한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갈등이 불거졌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이번 파업 때문이다.

“결혼날짜를 얼마 남기지 않고 파업이 시작됐어요. 농성에 참여하고 며칠 후 결혼할 사람으로부터 ‘없던 일로 하자’는 통보를 받았어요.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런 아픔까지 겪었는데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또 있다. 일하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다. 5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동생의 전화를 일 때문에 받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박씨는 “어머니가 고혈압을 앓았지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계속 가슴에 남는다”고 말한다.

쥐띠인 그가 올해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루빨리 정규직으로 고용돼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가정을 꾸려 아버님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박씨는 아버지와 여동생들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박봉이지만 빠듯하게 꾸려갈 수 있었는데, 파업 이후에는 이마저도 챙길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종가집 장손이에요. 회사일 때문에 명절 때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노여움을 샀죠. 인간노릇도 못하면서 15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그 대가가 박봉과 파견직이라는 멍울뿐입니다. 그나마 저는 여의도 출장소장을 맡아 다른 직원에 비해 몇십만원이나 많이 받았어요. 40대 형님들은 생활을 꾸릴 수 없을 정도로 저임금을 받고 있어요.”

박씨는 열아홉 살에 코스콤의 자회사인 증전이엔지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시절 IT업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만 했다.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회사에서 요즘에도 '복귀해 같이 일하자'고 설득한다고 했다.

그는 “노조를 설립한 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코스콤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직원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한 덕에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파업농성을 시작했을 때는 생활고 등으로 많이 흔들렸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실보다 득이 많은 것 같아요. 직원들 간 이기주의도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한가족처럼 지내요. 이번 어려움을 이겨내면 인생 살면서 어떤 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2의 인생을 살아야죠.”

박씨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열아홉 살 입사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코스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복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실력에서 밀릴까봐 그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번 파업이 잘 마무리되면 그동안 못했던 공부도 하고 싶고,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어려운 비정규직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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