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의 어느날. 한명희(36)씨와의 인터뷰는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인 한씨와 그의 동료들이 이랜드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장로로 있는 강남 사랑의교회를 찾아갔는데, 교회측이 정문을 잠궈버렸기 때문이다. 미리 교회 안쪽에 들어가 있던 한씨는 "새해 희망을 말하기엔 내 처지가 너무 우울하다"고 운을 뗐다.

홈에버 면목점에서 정규직 계산원으로 근무해온 한씨는 7개월째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같이 근무하던 비정규직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노조의 파업에 동참했다는 한씨는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 장기화에 따른 피곤함보다는 자신들의 요구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는 현실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새해엔 길바닥 신세 면했으면"

"노조 때문에 홈에버 장사 망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매출 손실만 부각해서 보도하는 언론 때문입니다. 회사가 직원들을 함부로 해고하지 않았다면, 매출 손실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한씨는 9살짜리 딸 초희와 5살짜리 아들 동호, 중소 인쇄업체에 다니는 남편과 시어머니, 시동생과 한집에 살고 있다. 한창 엄마손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파업현장에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정신적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어 마음의 짐을 덜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파업 이후 월급이 끊기면서, 여섯 식구의 생계를 남편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 몇 달은 그 전에 모아놓았던 돈으로 버텼는데, 금방 바닥이 나더라고요. 아이들 학원부터 끊었죠. 요즘엔 민주노총에서 지급된 생계비로 차비 정도는 해결하고 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다 비슷한 처지예요. 내 몸 불편한 건 상관 없는데 가족들에겐 정말 미안하죠."

쥐띠인 그의 올해 소망은 여느 해와 다름 없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다. 여기에 새로 한 가지 추가된 것은 하루라도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매년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요. 그저 저와 동료들이 길바닥 신세를 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죠."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특별한 종교가 없다는 그는 교회까지 찾아와 농성을 벌이다 보니, 평소에 안하던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교회 장로라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기독교 정신인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면, 이랜드사태가 조금 더 일찍 마무리될 수 있지 않을까….'

"이명박 당선자가 일자리 창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어요.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제2, 제3의 이래드사태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더욱 커진다는 것을 차기 대통령이 유념했으면 좋겠어요."
 
 
<매일노동뉴스> 2008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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