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형화, 겸업화, 세계화를 달성하기 위해 은행을 대상으로 강제합병을 유도하고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의 개방을 가속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은 "은행 흔들기"로서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1차 금융구조조정을 성공이라고 평가했지만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절대 없다는 약속을 깨버렸다. 76조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10개 은행을 퇴출 또는 강제합병으로 유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4만여명의 금융노동자가 해고되었지만 은행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제2차 금융기관 강제합병은 이러한 문제를 또다시 강제합병과 인원감축으로 해결하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과연 정부의 뜻대로 은행을 합병하면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고 금융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현장에서 일하는 주체인 금융노동자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부실의 원인인 정경유착, 관치금융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기관의 부실 중에 금융노동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부분은 정책금융으로 인한 부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한보, 기아, 대우그룹으로 이어지는 부실의 책임은 명백히 정부관료, 정치인, 재벌, 은행경영진에게 있다. 이러한 연결구조에서 발생한 부실을 은행으로 떠넘기는 관치금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관치금융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화로만 지시한다는 감독기관의 행태는 유명하지 않은가? 우선 부실 발생의 진정한 원인인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극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도입으로 금융산업이 급격히 선진화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행위도 대단히 위험하다. 정부의 생각대로 3개 은행을 거대한 금융지주회사로 묶게 되면 민영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문제가 대두될 것인데 인수할만한 주체는 재벌이나 초국적 자본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시장의 안정성 문제와 주기적 위기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와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공적자금이 제대로 회수될지 의문이 생긴다. 투입된 공적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면 결국 재정적자로 이어지게 된다. 제일은행 해외매각을 고집하면서 입은 손실이 막대한데 향후 금융지주회사 매각 과정에서 공적자금 회수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90년대 이후 일어난 은행간 합병에 대한 유명 컨설팅 기관의 연구분석에 의하면 75%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것도 인수합병 환경이 양호한 국가를 대상으로 자발적인 인수합병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미국의 금융지주회사도 우량은행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10년 이상 준비하여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재벌개혁은 제대로 되었는가? 은행의 부실은 해소되고 관치금융은 극복되었는가? 자발적인 인수합병의 환경이 갖추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법 공청회를 한번 실시하고 나서 바로 입법하겠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정부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마치 "태풍이 불어오니 배들은 대피하지 말고 각자 모이고 뭉쳐서 태풍을 극복하자"고 외치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선택의 문제이겠지만 태풍이 오면 일단은 부두로 대피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버티지 못하고 전복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유감스럽지만 관료의 모습을 보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융노동자와 국민이 또 책임을 질 것이다.

금융노조는 합병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하며, 현 시점에서 은행이 부실을 떨어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줄 것과 향후 2, 3년간 금융시장 안정기조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이 건전해질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강제적으로 합병을 강요하지 말기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지주회사를 포함하여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모델을 도출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관치금융의 극복과 동시에 정당한 금융감독이 자리잡기를 희망하며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고대한다. 금융노동자의 요구는 결코 고용안정 차원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향후 한국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분수령으로서 금융산업개편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목표를 이루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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