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1회용 노동력'이 아니다"

'외국인노동자 고용과 인권 보장에 관한 법률' 시급히 필요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후빈다는 크리스마스 이브. 부천에 한 시민단체 사무실엔 낯선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미얀마, 중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품고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준비한 '한국어교실 송년회'. '안녕하십니다(안녕하십니까)', '조는(저는) 노래를 잘캅니다(잘합니다)', '제 이름은 삼한입니다'. 5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어색한 한국어를 더듬더듬 사용해 자기소개를 하면서 밝게 웃고 있다.

먹고 노래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4개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한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들이 삶의 터전인 일터로 돌아갔을 때…. 우리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이주노동자 '조인'의 한국생활 6년…"주 70시간에 월 23만원"

"주 70시간에 월 23만원 받았어요"

지난 94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대구에서 '철 녹이는 일'을 했던 조인(가명·30·미얀마)씨는 2년 동안 말 그대로 장시간 저임금으로 '뼈빠지게' 일했다.

그 이후엔 '불법 체류자'로 이곳저곳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 있다. 임금은 연수생 시절보다 많이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매일 아침 8시∼저녁7시 혹은 저녁 7시∼아침 8시까지 주 60시간 정도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고 있다.

"다른 것 보다.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에게 맞았을 때 제일 힘들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료에게 맞아야 하는 이유도 몰라서 억울하다는 심정으로 울음까지 꾹 참았다던 조인. 사장이 있던 없던 열심히 일만 했는데 왜 맞아야 하는지 키가 작고 피부색이 검은 조인은 알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돈 없는 사장은 우릴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었던 적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언젠가 고무 공장에서 5개월 분 임금을 받지 못해 당장 끼니걱정으로 눈앞이 캄캄했다던 조인의 말이다.

이것저것 우여곡절 많았던 한국 생활 6년. 조인에게 남은 건 고국에서 건너온 부인과 '텔레토비'를 닮은 8개월 된 딸 티티. 담배도 술도 안 하는 조인은 딸에게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아 부인과 딸을 고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숨과 함께 털어놓는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내 아기까지 미워지면 안되잖아요." 혼자서 독학을 하며 배웠다던 조인의 한국어 실력은 '예?'라고 세 번 정도 반문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같이 살았으면.."이라고 말한 부분은 유난히 뚜렷이 들렸다.

*불법 체류자 산재보상금 '그림의 떡'…"보상금 타면 강제출국" 우려

"회사 관계자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겪게 된 어처구니없는 경우예요"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이란주 사무국장이 사진을 한 장을 보여주며 토시(가명·태국)이야기를 한다.

토시는 연수생 신분으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계에 손이 맞물려 산재를 당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그는 모든 치료비를 자신이 내야 된다고 생각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도중 도망쳤단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당한 것이다. 토시는 떠돌다가 올 초에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 상담을 했고 실무자가 알아본 결과, 그 당시 산재처리 중이었다는 것이다.

치료가 중단돼 이미 검지와 중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면서 이 국장은 안타까운 듯 사진 가장자리를 매만졌다.

"상황이 맞아 정당하게 산재보상 받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다행이죠. 사장들이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이용해 보상도 없이 쫓아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94년 2월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 14명이 경실련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을 계기로 불법체류자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업주들은 산재요율 인상을 이유로 꺼려하고, 이주노동자들은 적발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면 고국으로 강제출국 당할 것을 염려해 속으로만 끙끙거리고 있다.

"돈 벌러 한국에 왔는데 보상금으론 들어올 때 빚진 금액도 안되니 산재를 당하고도 '쉬쉬' 할 수밖에 없죠." 옆에 있던 간사는 산재를 당하고도 한국에 남아 돈을 벌려고 하는 이주 노동자의 처지를 보며 '악순환'이란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불법 체류자 18만명…'저임금·과다한 입국경비·송출비리' 원인

한국에는 노동자 신분을 가진 이주노동자가 거의 없다. 주 60시간 이상을 일하지만 기술을 배우러온 연수생의 처지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90년대 들어 몰려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2%를 넘는 27만 5,290명. 이 가운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가 전체 65.4%인 17만9990명. 이처럼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 머물게 되는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임금에 과다한 입국경비, 송출비리라고 지적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취업을 원하는 이들은 많고, 취업규모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수생 선정과정에서 비리가 일어날 소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연수생 모집, 송출기관 선정과 연수생 인원 배정권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독점하고 있다. 여기서 소문으로 떠도는 '송출업체들의 로비설'이 기정사실처럼 나온다고 이주노동자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말한다. 그는 또 "로비에 사용한 경비까지 연수생들의 부담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연수생들은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이르는 입국경비를 지불하고 한국에 들어와선 저임금을 받고 일하게 된다. 결국 임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옮겨 불법 체류자가 되고 계약기간이 끝나도 더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중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족 노동자들 대부분은 입국 때 연수생이 아닌 브로커들에게 700∼800만원의 커미션을 내고 들어와 빚에 허덕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알려진 바 있어 연수생 제도가 있는 한 불법 체류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때리지 말아요"부터 가르치는 한국어교실

이주노동자 인권위한 법적 장치 시급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지난 14일 '외국인노동자 차별철폐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외국인노동자 고용과 인권 보장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이번에 제출한 법안은 △외국인노동자에게 노동허가를 준다 △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 송출비리를 최대한 억제한다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의 사면과 합법적인 노동권 보장 등을 핵심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큰 변화의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의 지위가 '연수생'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바뀌어 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등이 적용되며 기본급 외에 연월차수당·상여금·퇴직금 등을 추가로 지급 받게 된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법안은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95년 1월 네팔인 산업연수생 13명이 명동성당에서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이주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지 5년이 흘러버린 올 11월, "우리도 사람, 때리지 마세요. 이번엔 참지만 다음엔 안 참아요" 등의 내용이 담긴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의 한국말 교재를 바라보는 심정이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이주노동자를 1회용 노동력으로 볼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법적인 신분 보장을 위한 정책 전환을 해야 할 때가 지금 이 시점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