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다음날인 26일 국민. 주택 두 은행의 업무는 사실상 마비상태였다.

이날 두 은행은 어음결제는 고사하고 대출이나 연말정산. 수출입대금 결제. 외환업무 등 손이 조금이라도 가는 업무는 전혀 처리하지 못했다.

두 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연말 운영자금을 못 구해 애를 태웠고, 겨우 문을 연 거점점포들은 예금을 찾으려는 일반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연휴기간 중 정부가 고심 끝에 마련한 대책들은 거의 먹혀들지 않아 되레 고객불만만 키웠다.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두 은행의 전산망을 가동하는 필수요원들이 25일부터 근무지를 대거 이탈함에 따라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전산망이 다운(작동불능)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두 은행을 거치는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된다. 이번 파업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크고 작은 금융사고와 기업들의 연쇄도산 등 금융대란이 올 수도 있다.

◇ 전산망 정지 피해야〓국민은행 전산정보부 직원 3백23명 중 노조에 가입한 2백97명 전원이 26일 출근하지 않았다.

국민은행측은 "전산처리가 대부분 자동으로 이뤄지는 만큼 4명만 있어도 일상적 작업은 가능하다" 며 "그러나 정상가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주택은행도 7백명의 전산요원 중 최소한의 인원만 출근했다.

금융전산망을 관리하는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국민. 주택은행의 전산망이 다운된다 해서 금융전산망 전체가 작동불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며 "지난 7월 총파업 때도 전산망은 정상작동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국민. 주택은행의 전산망이 정지되면 두 은행과 관련된 은행거래는 완전히 중단된다" 며 "연결계좌를 갖고 있는 증권. 보험사 거래는 물론 카드결제 등도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처럼 월말. 연말 결산이 몰릴 경우 전산장애가 일어나기 쉬운데, 현재 인력으로는 장애복구가 쉽지 않아 전산망 작동불능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정부 대책 안 먹혀〓정부는 국민은행 29개, 주택은행 59개의 거점점포가 정상영업을 할 것이라며 지역별 지점명단까지 배포했다.

하지만 이중 국민은행은 본점을 포함해 9개, 주택은행은 4개 점포가 아예 문을 열지 못했다. 그나마 문을 연 거점점포도 인력이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쳐 단순 입출금업무 외에는 처리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과 자산관리공사 등에서 파견된 인력은 은행업무에 익숙지 않아 업무정상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신한. 한빛은행 등에서 예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던 계획도 별도의 전산프로그램이 필요해 이날은 실행되지 못했다. 일러야 27일 중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금감원측은 "감독당국도 두 은행 업무 정상화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 이라며 "경찰력이 투입돼 농성이 풀리면 일부 직원이 복귀하는 등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 금융 총파업 재연될까〓금융노조가 28일부터 전금융권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실제 총파업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

금융지주회사. 관치금융 철폐 등 공동의 이해가 걸린 지난 7월 총파업 때와 달리 이번에는 명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26일 중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키로 했던 금융노조의 총파업 계획은 시작부터 삐끗하는 모습이다.

이날 찬반투표를 실시한 곳은 조흥은행 뿐이며,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 27일로 투표를 미뤘다. 투표결과도 지난 7월과 달리 낙관하기 어렵다는 게 각 은행 노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H은행 노조 관계자는 "금융노조는 정부의 강제합병을 막자고 주장하지만 노조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상태" 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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