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을 맞이하는 양대노총의 대선방침은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와 정책연대로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대선공간에서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97년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 권영길 후보를 중심으로 대선활동을 벌였다. 한국노총은 DJ와의 정책연합을 성사시켰다. 그 후 2002년 대선을 거쳐 세 번째 대선을 맞이하고 있다. 97년 이후 10년, 양대노총은 정치개입 속에서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양대노총의 대차대조표를 점검해 본다. <매일노동뉴스>는 10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발간되는 재창간 특별호에서 ‘2007 대선과 노동자의 선택’를 주제로 3대 기획을 마련했다. 1. 양분된 노동계의 대선전략 , 2. 노동정책 공약, 집중 검증, 3. 대선 후 노동계의 진로 ----------------------------------------------------------------------“정책연합이라는 것은 하나의 단계에 불과했다.” 97년 정책연합 당시 최대열 한국노총 홍보국장의 말이다. 정치세력화로 가는 긴 여정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때 정치국장을 맡았던 현기환(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씨는 “가장 낮은 수준의 정치방침”이라고 말했다. 97년 한국노총의 중장기 정치방침 로드맵엔 △97년 대선에서의 정책연합 실현 △2000년 총선에서 20석 확보 △2004년 노동자 독자정당 건설 △2012년 집권 등의 시기별 계획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의 시계는 1단계인 정책연합에 멈춰져 있다. 2004년 녹색사민당이라는 정치적 미아기를 지나 2007년 17대 대선을 맞아 이용득 체제의 한국노총은 정책연합의 또 다른 얼굴인 정책연대로 돌아왔다. 이용득 위원장이 주장하듯 세 차례의 정책연대 과정을 통한 2017년 영구정책연대가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의 최상의 해법일 수도 있다.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급격하게 고양시켰던 96년 총파업이라는 배경도 없고, 한국노총의 정치적 입지는 97년 정책연합의 성공 이후 내리막길을 달려왔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독자적 정당 추진과 집권에 대한 꿈은 홀로서기를 허용치 않는 정세가 연출되고 있다. 한국노총의 정당 건설의 역사는 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칭) 민주노동당 사건이 그것이다. 4·19 혁명 이후 박정희 정권 초반기에 김정원 광산노조위원장 등 8명의 산별위원장이 중심이 돼 민주노동당 창당을 본격 선언했다. 하지만 박 정권의 서슬 퍼런 협박과 회유로 창당 움직임은 봉쇄됐다. 이후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폭압을 거치며 기나긴 정치적 침묵을 강요당했다. 최초로 개혁의 화두를 던진 박종근 위원장 체제를 지나 박인상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정치적 자주화’의 여건이 비로소 조성됐다. 96년 겨울 한국노총의 노동법 총파업은 정책연합이라는 정치카드를 선택하도록 만든 촉매제였다. 박 위원장은 12월9일 김대중 후보에 대한 개인 성명의 공개지지 선언했다. 김대중 후보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 정책연합은 완성됐다. 하지만 전임자 임금, 실업자 노조 문제 등 노동계의 요구사항들이 거의 지켜지지 않으면서 배신감이 커졌고 1999년 12월13일 DJ와의 정책연합은 마침내 파기됐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라는 투표 결과가 나온 12월19일부터 시작된 정책연합은 1년 조금 넘는 시점에 미완의 실험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 한국노총은 50년간 오명으로 점철됐던 ‘어용’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불식시키는 전기를 마련했으며, 한국노총의 정치적 위상의 최대치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은 없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97년 정책연합의 성공이 2002년 대선으로 연속되지 않았다”며 “권력의 단맛을 만끽한 이후로 한국노총 내부의 정치좌표의 무중력 상태라는 공백기가 만들어 졌다”고 말했다. 97년에 세운 중장기 로드맵대로 정치세력화의 일정표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맞이한 2004년 총선에서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이라는 정당을 세웠지만 한국노총 정치세력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을 뿐이다. 조직과 정책과 홍보의 총체적 실패로 인해 0.5%에 불과한 지지율로 한국노총의 정치역량은 정책연합 이전시대로 회귀했다. 3년 후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로 17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곤 상층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대선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상층부 중심의 정치방침 결정은 정책연합과 정책연대에 차이가 없다”며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한국노총에서 사라진 단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97년 정책연합은 친노동자 후보 선택이라는 결정이 모든 것을 규정했지만 2007년 정책연대는 조합원의 자율의지를 존중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조합의 선택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때문에 ‘정책연대’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부성현 기자 b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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