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그래픽=이정민 기자 happyend@
 
 
지난 97년 IMF 외환관리체제는 금융산업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낳았다. 김대중 정부가 주장했던 것처럼 공공∙재벌∙노동∙금융 등 4대 부문의 구조조정 가운데 금융부문은 가장‘성공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그만큼 혹독했다는 얘기다.
 
금융권에 이른바‘노동의 소외’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새롭게 추가되는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고용불안과 업무과중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산업차원 교육 통해 노동자 적응 유도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단기적으로는 노동자의 산업변화 부적응과 개인주의적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금융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공공성 약화추세에 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개별 노동자에 대한 지원강화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금융권의 사업다변화와 같은 변화에 앞서 노동자에 대한 교육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이 변했으니, 스스로 변화에 적응하라”는 식으로는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기 힘들다. 은행과 증권, 보험 등 업종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직원들은 각 업체의 업무다변화 추세에 맞춰 자격증 따기에 내몰리고 있다.

은종민 증권노조 대한투자증권지부 지부장은“카드, 방카슈랑스, 수익증권, 해외펀드, 주식채권, 부동산펀드 등 보통 한 직원이 10여개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업무적응을 위한 직무교육은 전적으로 금융노동자 개인의 몫이다.
 
직무교육의 내실 강화는 노동자들이 급변하는 산업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연착륙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금융산업 차원의 교육강화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금융권 고령자의 이직과 재취업을 위해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민경윤 현대증권노조 위원장은“단순히 직원 교육을 넘어 대학투자나 교육시설 투자에 이익의 일부를 투입해야 한다”며“산업차원에서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과노동 해법은‘인력충원’

금융권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과로사를 초래하는 초과노동의 근본적 해법은 결국 인력충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직원들의 업무 다기능화의 원인 중 하나가 인력감축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밀도 있는 노사협의를 거쳐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금융노동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사제도와 관련한 제도개선 논의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래야직원들이 제도변화가 이뤄지는 의사결정과정에 참가,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인의식을 배양해 애사심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권현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에 참가하는 방안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현 단계에서는 인사제도 개선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도록 경영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수익의 일부분을 노동자들에게 배분하자는‘이익 배분제’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금융권 수익의 일부분이 인력감축을 통한 인건비 절감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회사는 인력감축으로 수익을 얻었지만, 직원들은 많은 업무만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안정, 처우개선 방안 필요 금융권에서 퇴출되는 고령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력자의 대인관계 풀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수 증권업협회 이사는“어차피 은행이나 증권업종은 고객과 얼굴을 맞대는 인간이 중심에 선 사업”이라며“경력자에 대한 우대가 고객과의 신뢰강화를 통해 장기적인 회사 발전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간제, 시간제 등으로 유입된 비정규직은 금융권 노동소외의 또 다른 그림자다. 정규직이 나간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방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금융권에서 분리직군제와 저직급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에 대한 기업차원의 대응으로 해석된다. 상시적 고용불안과 단계적 처우개선이라는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차별고착화’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정규직’,‘ 중규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공공성 회복 통한 금융산업 발전 모색 필요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분리직군제는 여성에게 집중된 직무를 비정규직으로 한정해놓고 있어 성차별과 고용차별 요소를 모두 포함한 제도”라며“분리직군제보다 낫다는 저직급제도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측면에서 미흡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노동소외 현상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금융권 대형화∙겸업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일단 덩치를 키워놓고 보자는 규모의 경제 추구는 곧 금융권의 공공성 상실로 나타났다. 서민층을 위한 소액금융(Micro Finance)과 협동조합과 같은‘풀뿌리 금융’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금융권의 공공성 상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찬근 인하대 교수는“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금융분야에 취한 일련의 조치는 그대로 금융회사의 수익창출 강화로 이어졌다”며“조직과 인력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고 주주들에 대한 이익배분에만 급급한 것”이라고 비난했다.시중은행들은 지난 2003년 LG카드의 유동성 위기해소를 위한 정부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수익창출에 목표를 둔 외국자본 소유의 은행들이 한국경제의 지속∙발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단적인 사례다.
 
외국자본의 손에 맡겨진 금융분야의 소유권 재편이 필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투기자본 중심의 소유구조로는 장기적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며“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유구조 일정 부분에 국내 자본이 참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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