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국민과 주택은행 지부의 파업 집결지인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 노조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시각은 21일 저녁 9시께.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연수원에 들어선 노조원 2,000여명은 대운동장에서 마련된 단상 앞쪽부터 열을 지어 앉아 사전집회를 시작했다.

1시간 30분쯤 지난 저녁 10시 30분께 찬바람이 점차 세게 불어오는 가운데도 일산 연수원에 모인 노조원수는 6,000여명으로 불어났고 사전 집회의 열기도 더해갔다. 대전에서 근무한다는 국민은행 소속의 한 노조원은 "대량 감원이 뻔한 합병 논의를 중단시키기 위해선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올라왔다"며 "사람들 수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날 일산 집결지엔 또 노조 가입신청서는 냈지만 아직까지 정식 노조원 자격을 갖지 못한 주택은행 소속의 계약직 노동자들도 월차휴가를 이용, 1,000여명 이상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국민은행과의 합병설이 제기되면서 더욱 신분 불안을 느낀 이들 주택은행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100%가 노조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은행지부의 한 관계자는 "인원감축이 단행되면 계약직 노동자들이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정규직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이 대부분 초행길인 주택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집결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주택은행지부가 이번 파업을 앞두고 한 벤처 통신업체와 그룹문자전송 서비스 계약을 맺은 덕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은행지부는 이번 파업을 준비하면서 7,500여명 전 노조원들의 휴대전화기 번호를 비상연락망으로 확보, 집결지 이동 경로는 물론, 집결지 상황 등과 관련한 정보를 문자로 전송해 노조원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을 가능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집회를 마치고 연수원 현장 지도부가 주최한 본행사인 '강제합병저지 금융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시각은 21일 자정께. 이미 대운동장엔 1만여명을 훨씬 넘긴 숫자의 노조원들이 운집한 상태였다.

결의대회에선 김동만 금융노조 부위원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김기준 수석부위원장은 투쟁사를 통해 "무능한 경제관료들을 처벌하고 7. 11 노정합의의 이행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조원 여러분의 투쟁 의지가 지금과 같다면 우리는 분명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의대회엔 특히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단 위원장은 연대사를 통해 "현 정부가 7. 11 노정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 여러분들의 투쟁은 정당하다"며 "우리나라 금융과 경제를 지키기 위한 여러분의 투쟁에 민주노총은 적극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 위원장은 최근 한국통신노조 파업과 관련, 한국노총쪽에 제안한 연대투쟁이 성사되지 않은 것과 관련, "두 번 제안했는데 모두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함께 만나고 동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총파업 결의대회에 이어 노동문화제가 시작할 즈음인 22일 새벽 2시께 연합뉴스 등을 통해 노사정위원회 협상에서 4개항의 합의문이 작성됐다는 보도가 나온 사실이 노조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급속히 퍼지자 집결지 현장 간부들은 "지도부의 최종 확인 전까지는 그 어떤 언론보도도 믿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국민은행 지부의 한 관계자는 문의하는 노조원들에게 "지난 7. 11 파업 당시 연세대 농성장에서도 이런 언론 보도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결국 총파업에 들어가지 않았느냐"며 "협상 지도부의 확인 연락을 기다려보자"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화제 공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운동장 주변 구석구석에선 모닥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달래는 노조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시각이 새벽 3시를 넘자 피곤에 지친 노조원들은 하나, 둘 씩 연수원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노조원들의 경우 대운동장이나 건물 주변에서 비닐이나 침낭을 덥고 새우잠을 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전체 파업 참여 노조원의 절반 가량인 7,000여명은 여전히 대운동장에서 초청가수들의 공연을 지켜보며 파업 지도부를 기다렸다.

○…결국 노사정위원회 합의문 작성 이후 노사간 협상을 위해 1시간 30분 가량 두 은행장의 연락을 기다리던 금융노조 협상지도부가 3시 40분께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고 노사정위원회를 철수, 한국노총 회관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일산 집결지 현장에 알려지자 종합상황실의 두 은행 노조간부들은 "이제 파업이 시작되는구나"하며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한 국민은행 지부의 간부는 앞서의 연합뉴스 보도를 가리키며 "역시 실제 합의 여부는 협상 지도부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다"며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새벽 4시 40분께 교섭 대표였던 이용득 위원장과 국민·주택 두 지부 위원장이 일산 연수원에 도착, 단상에 오르자 노조원들은 큰 함성과 박수로 이들을 맞았다. 이용득 위원장은 두 은행장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합병문제와 관련한 교섭이 결렬된 사실을 노조원들에게 전하면서 "노조원 여러분이 흩어지지 않고 여기에 있는 한 우리의 요구사항을 100% 쟁취할 자신이 있는 만큼 이번 성탄절과 연말을 이곳 연수원에서 지낼 각오로 투쟁하자"며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이 정도 추위로 당하는 고통이야 목이 잘리고 해고되는 것에 비하면 값진 고통이 될 것"이라며 "내 가족과 부모 형제를 위해 지금의 희생을 감내하자"고 말했다.

○…파업 돌입을 선언하고 금융노조 상황실로 자리로 옮긴 이용득 위원장 등 지도부는 곧 바로 파업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금융노조 지도부는 우선, 파업 대오를 유지하고 이탈자를 방지하기 위해 규찰대를 강화하고 각 지부 차원에서 노조원들을 상대로 한 상황 공유 작업과 파업 결의를 높기 위한 조직 사업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22일 '파업'의 아침이 밝은 뒤에도 대운동장을 떠나지 않은 7,000여명의 노조원들은 파업 진군대회에 참석, 투쟁 의지를 다졌다. 대회에선 특히 장기파업에 대비하기 위한 이용득 위원장의 투쟁지침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지침에서 △이탈자 방지책 마련 △은행쪽 회유를 차단키 위한 휴대전화기 꺼놓기 △파업 불참 동료들의 동참 독려 등을 당부했다.

○…오전 중엔 또 일산 인근에 집을 둔 파업 참가 노조원의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일산 인근 지점에 근무하는 며느리인 국민은행의 여성 노조원을 위해 사전 연락도 없이 직접 음식물과 옷가지를 싸들고 연수원을 찾은 시어머니는 아들까지도 22일 파업을 마친 한국통신 노조원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민은행 지부의 한 관계자는 "부모의 마음이야 항상 자식 걱정이 앞서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파업 진군대회가 한창인 가운데 종합상황실에는 이날 오전 중으로 금융노조 파업 지도부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된다는 믿을 만한 소식통의 전화 제보가 있어 금융노조 간부들이 한 때 긴장하기도 했다.

특히 비슷한 시각 10개 중대의 경찰병력이 연수원 외곽에 배치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체포영장 발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파업 참가 노조원이 두 은행지부 전체 노조원의 7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각 은행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22일 파업 돌입으로 인해 국민·주택은행의 업무에 적지 않은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요로를 통해 입수한 한 은행의 파업 대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영업불가' 판정을 내린 영업점이 110개 곳에 이르렀고 자동화 기기만 가동되는 곳은 무려 200여 군데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23일 역시도 은행의 파행 영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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