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흔해빠진 이야기 하나 하자.
민주주의는 시대적 산물이다.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을 빠트리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던 엄혹했던 시대의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설렘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는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의 28일 파업은 아직도 이 시대는 민주적이지 않음을 입증해주었다.

병원의 당당한 주체인 60여 직종의 일반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의사의 비대칭적인 폭력에 의해, 아니 지배층의 자리를 차지한 그들에게 여전히 멸시받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병원 사용자들이 10억원의 손해배상·가압류와 직장폐쇄로 노동조합의 목을 죄는 현실을 묵도하면서 민주주의의 미완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파업 종결 후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관리자들과 의사들이 ‘노동조합은 끝났다’며 가하는 고압적 행태와 파업에 대한 수구언론의 야만적 난도질은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 처한 굴절된 민주주의에 대한 슬픈 자화상이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된 연세의료원 파업은 우리 사회 주류층에 대한 노동자의 도전이 그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은 한달 간의 파업 끝에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다시 환자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사용자와 수구언론은 몰매를 때리고 있다.

‘노조의 백기투항’, ‘법과 원칙의 승리’, ‘뚝심의 경영진’ 등은 이번 파업의 목적과 본질에 흙탕물을 튕기고 있다. 다인병실 확대, 간호등급 상향조정, 일년 이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요요구로 내걸었던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의 지극히 합법적인 쟁의행위조차 이들 언론과 사용자에게는 ‘배부른 투정과 불만’으로만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다.

법과 원칙을 운운하는 그들의 그릇된 경영권에 대한 '광신'은 이슬람의 탈레반을 연상시킨다. 병원 경영에 관련된 노조의 공익적 요구는 의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전락되고 지극히 합법적인 노동자들의 파업은 환자와 가족들을 인질로 한 노조탄압의 빌미가 돼버렸다.

‘초일류’, ‘세계제일’을 지향하는 지금의 연세의료원에서 의사의 권위에 대항하는 병원 내 일반직 노동자들의 단결된 행동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간호사를 늘려 환자에게 더욱 세심한 케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다인병상 확대로 환자․보호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도 연세의료원에서는 의사집단, 그들만의 고유영역이었던 것이다. “감히 일반직들이”라는 말과 함께.

병원 사측은 파업 이전 개최된 14차례의 교섭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으면서 파업이 6개월 넘어가더라도 절대로 일반직 노조에 밀리지 말라는 의사들의 요구에 성실히 복무했다. 몸이 너무 아파 살려 달라고 큰소리로 외쳐댈 수도 없는 가물거리는 환자들의 생명 앞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수구언론의 입을 통해 그들은 강변한다. 환자를 볼모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겠노라고.

병원 사측은 하나님의 병원이라며 일반직들의 병원이 아니라며 초유의 병원 직장폐쇄까지 강행하며 거리로 노동자들을 내몰고 여전히 의료공공성 확대요구는 '경영권과 관련된 협상의 대상의 아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참에 노조를 손보자고 주장하는 일부 권위적 의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목숨이 꺼져 가는 환자들이 도와 달라고 간절하게 내미는 손마저 냉정하게 뿌리쳤다. 환자를 볼모로 삼은 것은 노조가 아닌 병원 사측이다.

연세의료원노조의 지난 28일간의 파업을 엄호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나라 병원은 민주화가 진행되어도 변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의 표상이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서민들에게 병원은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곳, 시키는데로 따라야하는 절대적인 것만큼 비민주적이며 개혁의 논외지역이었다. 의약분업사태로 벌어진 의사들의 파업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지 않지만 비주류 계층인 병원 내 일반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노무임금적용이 법에 따른 원칙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세의료원 4천 조합원의 28일의 강고한 파업은 더욱 값지다. 병원 내 권력의 작동방식을 풀어보고, 피 권력자가 좀 더 맘 편하게, 몸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몸을 맡길 곳이 우리 사회 가장 비민주적인 공간이라면 과연 인도적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되돌아볼 단초를 제시했다.

앞으로 또다시 연세의료원 일반직 노동자들이 잘못된 의료원체제에 대항한 조직적이고 정당한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한국노총은 병원 로비와 의료원장 집 앞에서 손배가압류에 맞설 각오로 굳건히 ‘연대’의 이름을 걸고 서 있을 것이다. 지금과는 좀더 다르고 집요하게 전개될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의 향후 투쟁에서 한국노총은 연세의료원 노동자들과 여전히 함께 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9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