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산업이 덩치를 불리고 있다. 올들어 남해안을 중심으로 신규 조선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해안가 주변을 따라 돌다보면, '축 조선산업단지 유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조선산업이 최대 호황국면을 맞으면서, 예전에 블록생산을 하거나, 수리조선업을 하던 업체들이 배를 건조하는 신조선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선산업이 덩치를 불릴수록 그만큼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조설비의 과잉 중복투자로 산업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5일 “신규 조선소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개별기업의 투자활동을 업계나 정부가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시황이 좋아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불황이 닥친다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남해안에 대규모 조선벨트 형성

업계에 따르면 직접 배를 만들겠다고 나선 업체는 2000년 이후에만 무려 16곳에 달한다. 대부분이 선박용 블록을 생산하거나 배를 수리하던 업체들이다. 이날 현재 남해안에는 동쪽 끝인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면, 해남군 회원면부터 시작해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고성군 동해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9곳에서 2천8백만제곱미터(㎡)에 이르는 조선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압해면과 고흥군 도양읍 일대에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1천772만㎡ 규모의 중소특화도시가 만들어진다. 전라남도는 이를 위해 3조991억원의 민간자본을 유치했다. 2011년까지 조성될 신안조선타운(1천471만㎡)에는 891만㎡의 중소형 조선단지와 일반단지, 66만㎡의 해양레저 조선단지, 515만㎡의 배후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사업에는 씨엔중공업과 진세조선, 태형중공업, 신텍, 푸른중공업 등 5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남해군은 지난 6월 백성종합건설과 서면 중현지구에 조선단지 조성투자협약을 체결했다. 30만톤급과 10만톤급 선박 건조시설을 갖춘 조선단지를 2009년 9월 착공, 2012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경남 고성군에는 상호컨소시엄 등이 참여해 오는 2010년 중대형 조선소(290만㎡)가 들어선다. 투자금액만 9천억원이 넘는다.<표 참조>
 

조선산업의 불균형 심화 우려

하청업체에서 원청업체로 발돋움하려는 조선업체들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실제로 블록생산업체였던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이 지난 2003년과 2004년 신조선업체로 전환했다. 이후 SPP해양조선과 진세조선도 올해부터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수리조선업체였던 광성조선도 지난 2004년 신조선업체로 전환했다.

국내 수리조선부문에서는 길이 170m의 2만톤급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도크를 갖춘 오리엔트조선이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건조되고 있는 선박들은 대체로 300m 이상의 초대형급이다. 대형선박에 대한 수리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수용할 공간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수리조선업에 주력해왔던 업체들마저 신조선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수리조선부문에서 점차 외국 업체들에게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블록생산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선박 건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배를 구성하는 블록의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을 생산하던 업체들은 생산설비를 늘리기보다는 배를 건조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대형조선소들이 중소업체들에게서 블록을 공급받아 배를 만들어 왔던 조선산업의 구조상, 앞으로 블록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형 선박업체들은 자체 선박블록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97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 설립했던 블록공장을 확장했다. 산둥성 롱청시에는 두 번째 블록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연간 12만톤의 블록을 자체 조달하던 삼성중공업은 내년 상반기부터는 연간 40만톤을 공급받게 된다.

대우조선해양도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블록공장 건설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2010년에는 연 22만톤의 블록을 자체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블록업체들은 신조선업에 뛰어들고, 대형 선박업체들은 자체 블록공장을 짓는 중복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설비과잉투자…호황기가 지나면?

새로 건설된 조선소 대부분이 2010년을 전후가 돼야 본격적인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0년은 중국이 조선소에 대한 1단계 설비투자를 완성하는 해이다. 연간 4천만DWT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럴 경우 세계의 선조능력은 1억DWT로, 수요(7천만 DWT)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향후 3~4년 내에 조선업의 공급부족 현상이 잦아들면서 조선경기가 하락세로 반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조선산업 성장의 가장 큰 영향은 기술적인 추격보다는 선박가격 하락으로 인한 국내 기업의 채산성 악화에 있다”며 “중국업체들이 저가공세를 강화한다면 과거 1990년대 말 한국과 일본의 경쟁으로 선박가격 하락이 장기화됐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신조 호황세가 꺾이기라도 한다면 국내 조선산업 전체가 연쇄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는 “한때 조선강국이었던 독일에서도 70년대 초 수주물량이 많아 설비를 늘리다가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연쇄적으로 도산한 사례가 있다”며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상황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조선소는 기술개발, 중소업체는 전문성 확보에 나서야

이에 따라 기존 대형조선업체들은 기술 고급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선종개발에 주력하고, 새롭게 신조선산업에 뛰어든 업체들은 각 업체별로 선종을 특화시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벌크선과 탱크선을 주력으로 했던 우리나라 조선업은 최근 들어 대형 조선업체를 중심으로 LNG나 LPG선 등 보다 부가가치가 큰 선종으로 전환하고 있다.

반면에 새롭게 조선업에 뛰어든 중소업체들은 무조건적인 설비확장보다는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해 중국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전문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국내 중소형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인 벌크선과 탱크선 등에서 가격하락을 주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벌크선과 탱크선을 만들더라도 한국의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선박을 만들지 않는다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산업은행 산업분석팀은 “중소형 조선사는 선종별 무분별한 경쟁을 지양하고 주력 선종을 각각 선택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동업자 정신과 공동운명체 인식을 바탕으로 중소 조선소간 저가수주 등 격심한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조선업체간 협력을 논의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개별 조선소들이 자기만 살아남고자 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미리 모색해야 한다”며 “조선사마다 주력 선박, 주력 기술 등을 갖출 수 있는 ‘분업적 경쟁력’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별기업을 뛰어넘는 초기업단위의 논의기구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기업이나 정부, 노조가 개별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만큼 조선산업에 관련된 노사정 모두가 먼저 뜻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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