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보건의료노조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7월7일 새벽 2시 2007년 보건의료 산별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공중파를 타고 알려지자 어느 현장 간부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비용으로 임금인상분의 3분의1을 분담하기로 했다는 산별 합의사항에 대해 언론은 ‘우리 사회에 소나기처럼 시원한 소식’ 이라면서 ‘아름다운 파업’<권영길 의원> ‘아름다운 합의’<한겨레신문> ‘아름다운 양보’<내일신문> ‘병원노사의 아름다운 악수’<중앙일보> ‘아름다운 동행’<국민일보> 이라며 반겼다.

이달부터 비정규 기간제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산별차원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껴안기와 고용안정 해법에 주목한 것이다.

정규직 조합원의 전폭적 지지 속에 해결의 뼈대를 세워

이번 산별합의의 핵심은 임금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비용을 연동하여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3 ~ 1.8%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병원에 근무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비정규 악법에 의해 해고되거나 외부 용역화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으면서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고용보장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정규직 관련 또 하나 의미 있는 합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산별차원에서 ‘비정규직대책 노사특위’를 구성하여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대책, 단계적 정규직화 방안 등을 공동 연구조사하고 효과적인 시행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비, 청소, 주차 등 병원 내에 존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법정 기준을 초과하는 선에서 산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제 보건의료 노사는 산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가 일부 비용을 분담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비정규 문제 해결의 길을 텄고 ‘산별차원의 특위’를 구성해서 기업별 분쟁에 대한 조율기능과 산별차원에서 공동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산별최저임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산별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 뼈대를 세웠다.

이번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포함한 산별 노사합의안은 아직 조합원 투표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교섭단과 전국지부장, 현장간부들은 공세적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식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미 올 초 대의원대회에서 산별의 최우선 사업과 핵심요구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확정한 바 있고, 산별노조 건설이후 계속된 산별적 연대활동과 정규직-비정규직 공동사업 경험 축적은 거침없이 단숨에 이번 합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수세적 양보를 넘어 공세적 선택의 결과

이번 합의는 단순한 ‘수세적 양보’의 의미를 넘어 ‘공세적, 전략적 선택’의 결과이다. 산별노조로서 자본의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과 분열 정책을 깨고, 개별 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단기 이익을 뛰어넘어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껴안음으로서 더 큰 단결을 실현 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조가입으로 노조 조직률을 높이며,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고용안정을 확보하면서 산별노조의 사회적 위상 제고와 산업차원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타결을 계기로 눈에 띄게 달라진 사회적 시선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병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단지 개별노동자의 고용불안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안정되고 지속적인 진료와 간호에도 지장을 주면서 의료사고의 위험마저 우려된다. 따라서 병원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숙련된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서 국민건강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산별노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것이 바로 산별의 힘이고, 산별 연대정신의 승리이다.

벼랑 끝 전술 교섭, 산별교섭 질적 전환 이뤄내

이번 산별교섭 타결은 비정규 문제 해법과 더불어 산별적 노사관계 발전의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올해는 보건의료노조에 있어 산별교섭 시작 4년차이자 사용자단체 구성이후 첫 산별교섭의 해였다. 보건의료 산별교섭은 규모와 특성을 망라하여 산업을 대표하는 주요 병원들이 고루 포진해있고, 민주노총내에서 유일하게 임금을 포함하여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 산별교섭의 진전여부는 노동계 내부는 물론 노사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보건의료 산별교섭은 1998년 산별노조건설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사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하다가 2004년 주 5일제 쟁취를 위한 총파업투쟁의 힘으로 사상 처음 100개 병원 노사가 교섭장에 함께 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해는 사용자단체 미구성으로 실질적인 내용 진전이 어려웠고, 2005년은 직권중재회부와 중재안으로 걸음마 단계인 산별협약이 송두리 채 날라 갔다. 2006년 다시 어렵게 산별 5대 협약의 기본틀을 합의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고, 올해가 4년차이지만 사용자단체 구성 원년이자 산별교섭의 내용을 갖춰나가는 산별교섭의 실질적인 원년이었다.

이런 흐름속에서 올해 교섭은 그동안 불거졌던 산별 임금교섭 방식 개선, 교섭의제 개발, 산별교섭이란 거대한 장막 뒤에 숨어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부 특성과 병원에 대한 대응문제, 산별교섭의 비효율성 문제와 산별적 투쟁 강화 방안 등 많은 과제가 놓여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면 어렵게 쌓아온 산별교섭의 틀 자체를 깨뜨릴 수 있다는 벼랑 끝 심정으로 교섭을 시작했다. 결국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 보건의료 산별교섭은 질적 양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노사관행을 넘어 기업을 뛰어넘는 초기업적 논의 기구와 교섭의제가 대폭 합의되었다.

보건의료 노사는 산별중앙협약의 체결 후 산별적 노사관계 발전과 보건의료산업 차원의 노사공동과제 논의를 위하여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산하에 ‘산별교섭준비소위원회’와 ‘고용안정및 교육훈련소위원회’를 두어 내년 교섭방식과 의제준비, 고용안정 및 산별임금체계에 관한 연구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임금과 비정규 문제등 노동자의 핵심의제에 대해 어느 해보다 긴 시간을 가지고 노사간에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교섭을 진행하면서 이전보다 질적, 양적으로 산별차원의 대화 기법이 풍부하게 축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몇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별적 조정을 통해 산별 노사간의 가교 역할을 하였고, 막판 직권중재 보류 결정을 함으로서 노사자율 타결과 산별교섭 진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또한, 이번 합의 관련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의료노사정위원회’를 실질적으로 가동해서 노사정이 함께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자는 대목이다.

보건의료 노사는 이미 2004년과 2006년 산별교섭에서 의료노사정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노사합의를 바탕으로 정부의 참여를 요청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참여를 거부하는 민주노총에게는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설득하면서도, 병원 노사가 합의해서 요구하는 의료노사정위 구성에는 애써 무시해왔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사회갈등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기존의 짜인 틀에 연연하지 말고 보다 유연한 접근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중층적인 대화구조 마련에 적극 나서야한다.

기업을 뛰어넘는 산별 노사관계가 이만큼 진전되고 있는데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는 의료 노사정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다시한번 정부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노동부, 복지부등 주무부서의 책임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사용자들의 '아름다운 결단'을 기대한다

산별교섭 타결에 이어 현장교섭이 본격화되고 있다. 산별교섭이 ‘아름다운 합의’ 로 마무리 된 만큼 병원사용자들은 현장교섭에서 산별합의정신을 살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을 위해 ‘아름다운 결단’을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비정규법안을 악용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식으로는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환자 만족, 직원만족의 좋은 병원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비정규직 문제해결과 산별교섭 진전을 바라는 많은 이들과 함께 현장교섭 첫 타결소식 ‘아름다운 합의’를 기다린다.

나는 그날 바로 현장간부에게 문자로 답장을 보냈다.
“당신이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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