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이 몸살을 앓고 있다. 겉으론 가동률이나 업체수를 볼 때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으론 중병을 앓고 있다. 전국의 공단마다 터줏대감이었던 대기업과 외자기업이 떠나고, 중소영세업체로 채워지고 있다. 전통산업인 제조업체는 줄어들고, 신흥산업인 서비스업체로 대체되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그 자리에 파견·용역직, 이주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공단이 ‘복합적인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공단을 살리려는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전개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 가운데 경기도 부천시는 가장 선도적인 사례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해 지역경제를 살리려 한 방식이 아니다. 부천시의 경우 노·사·정이 지역 파트너십을 통해 지역의 공단과 산업을 살리려 했던 독특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역차원의 노사정협의회를 상시적으로 가동해 경제발전과 고용 및 직업훈련 분야를 논의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부천시가 노사정협의회를 구성하게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부천시의 실태를 살펴보자.

쇠퇴하는 부천지역 경제

부천시 경제와 산업의 실태는 전국의 공단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부천시의 전통산업이자 핵심산업인 제조업은 쇠퇴하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우리나라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부천에서도 서비스업은 발전했다. 수도권 규제로 인해 대규모 사업장들도 떠났다.

2006년 발간된 ‘부천지역 고용 및 인적자원 개발백서’에 따르면 부천시의 총 인구는 86만명. 15세 이상의 노동가능인구는 68만명, 이 중 경제활동인구는 38만명이다. 취업자수는 37만명이었다. 사업체수는 5만1천개.

제조업의 비중은 94년 49.1%에서 2002년 35.4%로 8년 만에 14%나 하락했다. 종사자수도 같은 기간 8만4천여명에서 6만3천여명으로 24.6% 감소했다. 대신 서비스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50.9%에서 64.7%로 약 14% 증가했다. 정확한 종사자수의 수치는 통계적으로 조사되진 않았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늘고 있는 만큼 종사자의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부천 노사단체들의 일관된 의견이다.

비정규직, 불안정 고용에 처한 노동자들도 늘었다. 제조업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부천지역 내 9천여개의 제조업체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제조업에 취업한 6만3천여명 중 1~4인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4.2%에 달했다. 10인 미만은 58.4%. 절대 다수인 94.9%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정규직과 불안정 고용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급격히 늘었다. 간접적으로는 이들의 노동조건을 나타내는 통계로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다.<표1, 2 참조> 2003년 기준 부천지역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처우는 전국 평균은 물론 인근 중소도시에 비해서도 열악했다. 당시 부천시의 노동자 평균 임금은 162만원으로, 전국 평균 194만원의 85%에 그쳤다. 특히 부천 지역 사업체에 종사하는 전체 근로자의 33.9%가 월평균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인 임금수준도 낮았지만, 상대적 임금격차도 커졌다는 것이 지역 노사단체들의 분석이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문제는 지역사회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정리해고가 먼저 지역을 뒤흔들었고, 이후 취업난이 덮쳤다. 생산액 10억원당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릴 수를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는 92년 18.0명에서 2002년 8명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역노사정협의회가 설립되던 98년 당시에는 부천 내 ‘빅 3’라 불렸던 대규모 사업장인 경원세기, 동양엘리베이터, 유성기업이 각각 다른 이유로 부천지역을 떠났다. 일부는 수도권 규제에 의해, 일부는 경기침체에 따른 어려움으로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부천 경제와 산업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노사정 파트너십으로 대안 모색

이러한 변화는 부천 지역 노사정에게 위기감을 갖게 했다. 때문에 노사정은 공동의 모색을 시작했고, 지역노사정협의회를 만들었다. 부천지역의 노사정 파트너십은 나름대로 역사가 존재했다.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부천에서 노사정협의기구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92년이다. 80년대 말께 일어난 전국적 규모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부천에서도 90년대 초반까지 노사분규는 극심했다. 극단적인 투쟁이 줄을 이었다.

동시에 벼랑 끝 대결에서 벗어나자는 인식도 나타났다. 노사간의 의견교류나 조정과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시작된 것이다. ‘부천지역 노사공익협의회’. 한국노총 부천지부와 부천 대한상공회의소가 만나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든 노사대화기구였다. 하지만 조정자 역할은 쉽지 않았다. 기업별 노조체제에 익숙했던 시절이라 상급단체의 개입을 통한 조정이 쉽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노사공익협의회’는 2년 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부천지역노사정협의회가 새롭게 구성된 것은 지난 98년 말이다.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기업의 몰락과 구조조정 그리고 실업의 공포속에서 노사정은 위기감을 갖게 됐고, 공동으로 해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부천시의 지원도 한 몫 했다. 부천시의회는 그해 12월 ‘부천지역 노사정위원회 구성 및 운영조례’를 의결했다. 부천시청과 한국노총 부천지부, 부천 상공회의소가 위원회 구성회원이었다. 지역노사정협의회의 구성은 한국노총 부천지부의 역할이 컸다. 부천지부는 지자체 선거의 후보자에게 지역노사정협의회 지원을 공약사항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부천노사정협의회는 △공공근로사업 중 중소기업인력지원사업의 효율성 제고 △부천지역 관급공사 시 지역인력 우선채용 △노동복지 관련시설 민간위탁 △근로자장학사업 모색 △부당행위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문 채택 △오정동, 대장동 생산녹지 공업지역화 대정부 건의 등에 대해 합의하면서 지역 일반 현안들에 대한 개입을 시작했다.

부천노사정협의회는 본회의와 실무회의를 두는 단선구조에서 시작해 그 형태를 더욱 다양화 해 왔다. 현재는 택시업종 협의회와 공공부분협의회, 전기전자협의회 등 업종별 협의회도 만들었으며, 노사포럼과 고용포럼 등 주제별 포럼도 구성했다. 고용포럼에는 부천노사정 외에도 지역 내 자활후견기관, 근로자 종합복지관, 노동복지관, 산업진흥재단 등을 포괄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도 어느 정도 확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본회의의 의장은 부천시장, 부위원장 부천노동부지청장이 맡고 있다. 위원회는 이들을 포함에 노사공익 각각 2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회의는 분기별로 한번씩은 정례적으로 열리는 등 안정화 돼 있다.

진행 중인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협의회 강화사업’과 ‘고용인적자원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협의회는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형적 확장과 더불어 내부적인 교육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협의회 강화사업의 핵심이다. 노사정위원회는 3년째 ‘지역노사정협의회 시범사업’ 명목으로 지원하고 했다.

고용인적자원개발은 지역사회의 현안이자, 협의회가 구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유일한 집행사업이다. 그러나 노동부나 노사정위원회 등 중앙정부에서 수주하는 사업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 외에 지역전반의 고용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지난해 부천노사정협은 노동부로부터 지원받은 3억1천만원과 자체부담금 1천9백만원 등 3억2천9백여만원으로 노사공동훈련사업을 진행했다. 부천지역 내 중소기업의 인력수요 현황조사와 함께 취업희망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처음 목표는 120명을 교육해 취업시키는 것이었다. 실제 사업수행결과 수료인원은 연간 393명으로 목표치를 300% 이상 달성했다. 취업자는 평균 약 80%에 이르렀다. 올해도 약 3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같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교육훈련 사업을 보다 발전시켜, 취업 이후의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겪는 어려움까지 해결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외에 부천 노사정이 함께 청와대에 청원서까지 넣으면서 진행했던 생산녹지 공업지역화 사업은 최근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오정동과 대장동에 공단 택지 조성 허가가 났다.

김응래 부천상공회의소 부장은 “처음 노사정협의회는 각 기업과 노조의 어려운 점들을 서로 상의하는데서 시작했지만, 최근 교육 훈련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를 통해 회사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공급받아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고, 이는 곧 지역경제화의 활성화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꼭 필요하다”고 이를 설명했다.

사장과 경리 한명, 외국인 노동자 2~3명이 직원의 전부인 기업체에서 자체적인 교육훈련을 진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숙련 없이는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지역차원에서 노사가 진행하는 교육훈련은 노동시장에 개입하기 위한 출발이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 이어진 김 부장의 설명이다.

위기가 사라진 후 약화되는 파트너십


타 지역과 달리 노사정 파트너십으로 지역 현안과 고용 및 분쟁을 해결해왔던 부천시의 사례도 ‘성공 사례’라고 규정하기엔 이르다. 파트너십은 ‘지역문제 원인 분석 및 해결방안 연구’→‘필요성 공론화’→‘원칙 합의와 초기 제도화’→‘시범 사업의 진행과 성공’→‘제도화 강화’의 순서로 발전한다. 부천노사정협의회는 겉으로는 4번째 단계에 이른 듯 보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부천지역의 경우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빠지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체가 이를 대체하고 있지만 고용유발 효과가 크지 않다. 게다가 서비스 산업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부천시의 지역적 한계, 고용창출원인 제조업의 쇠퇴는 지역차원의 노사정 파트너십만으론 해법을 찾기 어렵다. 전국의 공단이나 지역경제가 겪고 있는 공통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부천지역노사정협의회 구성원의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최대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제조업체를 대체해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업체의 경우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서비스업체의 경우 대부분 노동조합이 조직화돼있지 않은 탓이다. 노조 조직률이 쇠퇴하면서 대표체로서 위상이 약화되고 조정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부천지역노사정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노총 부천지부의 딜레마이다. 여기다 외환위기라는 위기적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노사정의 긴장감도 사라졌다. 파트너십의 절박성이 감소되면서 지역노사정협의회의 결속력도 이완되고 있는 것이다.

노사정 차원의 파트너십을 지원·강화해야 할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지원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가장 문제다. 부천지역노사정협의회의 교육훈련을 중심으로 한 고용사업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아직 자체적인 실무집행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에서 이를 제도화할 만한 계획도 아직 없는 상태다. 재정과 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다음해 노사정협의회는 공전만 거듭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해결해야 할 의제는 많고 추진할 후속 사업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정과 인력을 마련할 방도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의제의 고갈’이 아닌, 실천에 따르는 ‘재정과 인력의 빈곤’이 부천노사정협의회의 새로운 난제였다. 김준영 한국노총 부천지부 의장은 “노사정협의회의 발전을 장기적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사업을 통해 외형을 확장하고 다시 그것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침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그 동안 몇몇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져왔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발전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제도화를 통한 일관된 실무집행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들이 필요하다”고 상황을 진단했다.

부천지역 노사정이 파트너십에서 “부천이 모범”이라는 외부의 평가가 부담스러운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은 노동부, 교육부, 산업자원부 등 각 부처별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 교육훈련사업들이 하나로 엮어 지역노사정협의회를 통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들이 지역협의회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계이며,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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