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경제체제가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항상적 구조조정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에서 열린 '2007 한국사회포럼 대토론2: '외환위기 10년, 그 야만의 시대'에서 주제발표를 한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지난 10여년 간 한국사회경제에서 일어난 일의 경과와 그 귀결은 '주기적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 교수의 항상적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은 '경제불황→구조조정→경제회복'이라는 관점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어 주목된다.


◇항상적 구조조정이 체제 성격으로 굳어져=유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체제는 호황과 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미국의 '월가-백악관-재무부'의 삼자복합체 가설에 입각해 외재적 변수를 중심에 두고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재벌체제와 국가주도의 이른바 '동아시아 모델'을 지적하면서 내재적 변수를 중심에 두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유력한 또 하나의 해석은 자본주의 체제가 본원적으로 안고 있는 '과잉생산'의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한국의 외환위기는 자본주의적 과잉생산이 구조조정을 통해 해소되도록 만들면서, 오히려 자본의 집적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과잉생산의 모순이 해소되는 계기의 연속선상의 관점에서 한국의 외환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불황을 계기로 촉발되는 주기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하나의 경제체제가 다른 하나의 상태로 옮겨가는 불연속적 과정이 반복됐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에서 추출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주기적 구조조정의 관점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과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유 교수는 현재 한국자본주의 체제에서 계속되는 구조조정 그 자체가 '하나의 체제 성격'으로 격상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항상적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했다. 항상적 구조조정이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노동자의 삶에도 '항상적 불안정'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게 유 교수의 진단이다. "나의 경제적 삶은 향후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내 아이는?" 식의 불안감이 노동자들에게 내면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가속화=유 교수는 또 현대자동차가 현대캐피탈과 함께 중국에 가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융합하면서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적 수익성 원리를 노동자·경영자·정부 모두에게 강요하는 금융우위의 경제질서(금융화)를 '금융화'로 해석하고, "금융부문이나 제조업이나 각각 전통적인 고유의 자본 순환 방식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구분이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강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재벌그룹이 은행 없이도 은행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등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항상적 구조조정이라는 경제체제적 성격을 특징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금융자본이든 산업자본이든 '자본'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관료개혁 없이 신자유주의적 대안 성공 어려워
김상조 교수, "시장통제만큼 관료통제도 중요"
이날 대토론회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집권세력이 누가 되든 간에 국가 관료에 대한 개혁과 통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제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중의 참여를 기반으로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든, 유럽대륙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하든, 정부의 산업정책을 통해 국민경제의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하든 간에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관료개혁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특히 경제정책 영역에서 급진적인 접근방식을 쉽게 포기한 '원인 중 하나'는 관료기구의 보수성, 즉 경제정책이 관료기구에 포획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국내외 독점자본에 종속되는 것은 예정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집권세력의 교체는 있었지만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기술관료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한국의 관료들이 여전히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의 연속선상에서 부국강병의 중상주의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규제완화'와 '개방'이라는 관점에서 도출할 뿐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의 관료기구가 '중상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착종'이라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득권 세력의 대변인으로 역할하고, 스스로 기득권 세력화하는 관료들을 통제하는 것은 시장을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며 "국가 관료기구를 통제하는 것도 개혁·진보진영의 핵심적 과제로 설정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민주의를 둘러싼 '공방'
토론회 이모저모
○"진보진영 최대 과제는?"…지정토론자로 나선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진보진영 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그 특징을 △금융화 △불확실성 △무한경쟁 등으로 요약한 뒤, 한국의 경제가 '모방'에서 '혁신'으로 가야되는 상황에서 막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용은 유연화 됐는데 복지가 없다" 고 진단했다.
 


○"사민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다"…김상조 교수는 토론에서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사민주의"라고 말했다. 그는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렇다고 독일식, 게르만식 자본주의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은 사민주의에 대한 합의와 이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준비"라고 말했다.
 


○"사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토론회가 '사민주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보진영의 최대 과제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이자, '다함께' 회원이라고 밝힌 한 청중은 "사민주의가 대안으로 언급됐는데, 사민주의 국가도 경제위기를 맞고, (노자 간의) 계급적대를 해소하지 못한다. 또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면이 있지 않냐"고 반박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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