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지난 3일 이른바 ‘차별시정제도 안내서’를 발표하였다. 노동부의 주장대로만 하면 곧 차별이 해소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차별시정절차가 부도수표임이 드러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노동부가 만들어 배포한 이 책자는 이후 각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하게 될 심사관(노동부 공무원)들을 사실상 구속하게 될 것이고 비상근인 차별시정위원들의 판단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중앙노동위원회가 했어야 할 일이고 집행기관인 노동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쟁점과 해석상 논란이 있는 부분까지도 노동부는 자의적인 해석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이 정답인양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소송기간만 4~5년 차별시정신청 어려워

먼저 차별시정제도에 의하면 차별시정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기간제, 단시간, 파견노동자에 국한되어 있고 노동조합이나 관련 노동단체, 여성단체 등 제3자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지위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 도대체 누가 노동위원회에 사업주를 상대로 차별시정신청을 할 수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하거나 노동조합이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에 한해서만 신청이 가능할 것인데,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8.%에 불과하다. 더구나 사용자는 차별 시정명령이 내려진다면 유사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가능한 한 최종심까지 가려고 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 경우에 지방노동위원회 최소 3개월 → 중앙노동위원회 최소 3개월 → 행정법원(1년) → 고등법원(1년) → 대법원(?)까지 짧아도 소송기간만 4~5년이 걸린다. 그리고 차별시정은 어렵고 복잡하므로 노무사, 변호사 등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4~5년의 시간동안 그리고 상당한 소송비용을 들여서까지 결과도 불투명한 차별시정 신청을 할 수 있을까.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하여 이른바 ‘무기계약직’은 형식적으로 위 3종류의 신청권자에 해당하지 않아 종전의 차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더라도 위 차별시정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고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차별시정신청을 하려면 제척기간이 3개월로 되어 있고 이는 차별적 처우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는 그 종료일). 안 날로부터 기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제척기간 3개월을 지키지 않으면 설사 늦어진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신청은 불가능하다. 해고나 부당노동행위와 같이 사건 발생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것과 달리 차별행위는 차별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모를 수도 있고 비교대상인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건이 차이가 나는지도 쉽게 알기 어렵다. 제척기간 3개월을 지키지 못하여 신청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안내서 초안에 나와 있는 노동부 해석처럼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의 경우까지도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로 보지 않고 당해 지급시점으로 종료되는 차별로 보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리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 왔더라도 마지막 3개월 부분만을 신청대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결과가 된다. 대부분 회사를 그만둔 뒤에 신청을 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대체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3개월 동안 임금 차별받은 것을 받으려고 애써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하겠는가. 이대로라면 실효성이 거의 없는 사문화된 제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분리직군·위장도급시 차별시정신청 불가능
 
차별시정제도에 의하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해서 차별을 당하는 경우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일 사용자가 직군을 분리하여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없게 만들면 차별 시정 신청은 불가능하다. 이미 경총은 지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군과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면 차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분리 운영 배치할 것을 지침으로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현재 차별시정제도의 비교대상은 산업별 동종 또는 유사 노동자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업(회사) 내에서 비교대상자가 있어야 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사용자가 비정규직 직무를 분리하여 위장도급으로 전환시키면 아예 비정규법이 적용되지 않게 된다. 위장도급이 되면 다른 회사 소속 노동자로 되기 때문이다. 제조업 현장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내하청의 경우에 아무리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도 차별시정신청을 할 수 없다.

불법파견이니까 파견법의 차별시정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물음이 있다. 법문구상 불법파견 노동자도 신청권이 있을까 매우 의문이 든다. 더구나 노동부는 지난 4월19일자로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에 관한 지침을 슬그머니 변경하여 이를 대폭 완화한 바 있다. 즉 정부 구별지침 변경 내용은 판단방식에 있어서 각 기준들을 열거하면서 ‘종합적 고려’를 하여 판단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종전 노동부 고시가 ‘제시하는 기준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도급관계로 보는’ 판단방식을 채택하여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 요건(3가지- 세부7가지)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 요건(3가지-세부4가지)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도급으로 보았던 것에 비하여 매우 후퇴한 것이다.

말이 좋아서 종합적 고려이지 노동부나 검찰이 자의적으로 알아서 판단하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위 새로운 지침은 △작업배치, 변경결정권 △업무지시 감독권 △휴가병가 등의 근태관리권 및 징계권을 3가지 주요기준으로 명기하고 있는데, 이는 거꾸로 위 3가지 기준만 잘 피하면 파견의 혐의를 벗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업무지시감독권은 이미 현장대리인을 중간에 두고 동일한 지시를 단지 현장대리인을 통하는 방식으로 이를 회피하고 있고 또 작업배치와 변경, 그리고 근태관리 역시 외형상으로 용역업체가 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이 아주 쉬워 이것은 사실상 불법파견 규제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사업주는 위장도급 전환을 통해서 손쉽게 차별시정제도를 회피할 수 있게 되고 실제 이미 여러 사업장에서 아웃소싱 등의 명분 아래 위장도급이 진행되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차별 합리화하는 ‘합리적 이유’ 문제

또 비정규법이 말하는 차별적 처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차별이 아니라고 한다. 사용자는 다양한 합리적 이유의 외형을 창출하여 차별시정을 회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직무급제, 성과급제, 연봉제 등 임금체계를 개편하여 직무의 성격, 개별 노동자의 능력, 실적과 공헌도에 따른 합리적 차별이라고 항변하는 경우, 채용기준과 방법, 절차에 차이를 이유로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로 둔갑시키는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별도의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관리하는 방법, 징계나 인사, 전보 등에 관한 규정의 차이를 두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노동부가 안내서 초안에서 밝힌 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원이 아니어서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여 발생하는 불리한 처우는 합리적 이유로 인정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안내서에는 기간제의 특성 때문에 근속을 이유로 한 모든 금품과 교육훈련 등에서 차별을 하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또 실제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어도 결재라인에서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여 권한과 책임에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하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다름이다.

노동부는 또 관행으로 지급하는 금품, 사용자의 임의적 지급, 은혜적 지급, 일회적 지급 등 취업관계와 연관성이 갖는 다른 금품 지급 등은 차별영역에서 제외되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조건 등’이라고 함은 명시적인 근로조건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므로 모든 불리한 처우를 차별금지 영역에 포함하는 것이 법문에 충실한 해석일 것인데도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또 노동부는 파견 노동자에 대하여 ‘임금’에 대하여 차별을 하더라도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책임을 묻지 못하고 사용사업주는 피신청인이 되지 않고 해결해 줄 능력도 권한도 없는 파견사업주만이 피신청인이 책임주체라고 한다. 이는 터무니없는 자의적인 해석이고 파견 노동자에 대한 차별시정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해석이며 수규자를 파견·사용사업주 양자로 삼고 있는 법 규정에도 반하는 해석이다.

또 파견법에서 상시근로자 산정범위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근로자를 포함하되, 파견근로자는 제외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상시고용 근로자수를 기준으로 적용범위를 정하는 것은 그 사업장 규모와 규범 준수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며 수백명의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을 규범 적용대상에서 배제할 이유가 없으므로 사용사업주 사업장의 파견근로자도 포함하여 상시 근로자수를 산정해야 할 것이다.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차별시정절차를 이용하게 되더라도 마지막으로 노동위원회라는 불공정한 기구를 만나야 한다. 현재 부당해고 신청시 인정률은 20% 수준이며, 부당노동행위는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차별은 부당노동행위보다 인정을 받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중론이므로 그보다 인정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직군분리제를 통해 비교대상 노동자를 없애거나, 여러 가지 합리적 이유의 외형을 창출하여 현실의 차별이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로 둔갑할 가능성 큰데, 여기에 더하여 노동위원회의 구조적인 불공정성 등으로 인하여 차별시정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로 합리화하는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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