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말 마련된 이른바 ‘비정규직법’은 어쨌거나, 한국 노동시장의 왜곡현상을 상징하는 비정규직의 보호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진 입법이었다. 노동계는 함량미달의 법률을 우선 통과시키는 것은 더 많은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며 반대했고, 정부와 정치권은 우선 입법을 추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나중에 채워나가자며 강하게 입법을 추진했다.

한편, 정부는 비정규법의 핵심을 ‘차별은 없게, 고용은 유연하게’라면서 나름대로 비정규법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노라 강변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유연한 고용의 내용을 담은 법안은 지난해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그에 대응하는 조치인 차별시정제도에 대한 내용은 법안 시행을 한 달을 채 못 놔둔 현재까지도 해석과 의견이 분분했다. 

“노동부 기준 장차 판례로 굳어질 가능성 우려”

지난 6월3일 노동부는 ‘차별시정제도 안내서’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차별시정 절차뿐만 아니라 그간 의문시 되어왔던 차별시정제도 상의 쟁점에 대해 노동부 나름의 입장을 담고 있다. 노동부는 책의 앞머리에서 “노동위원회의 판정이나 법원의 판례를 통해 차별적 처우의 내용이 확정되겠지만 판례가 축적되어 이를 참고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결릴 것이므로 우선 참고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안내서를 발간한다”고 하였다. 결국 이 책자는 차별시정절차의 기준도 아니고 기준이 아닌 것도 아닌 매우 애매한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부가 발표한 기준은 노동위원회의 판단기준으로 여과 없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고, 이와 같은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장차 판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 안내서가 담고 있는 내용이 가진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매우 간결하게 쓰여진 문체 때문이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안내서에는 다시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고, 비교적 입장이 분명한 부분 중에도 노동부가 과도하게 해석한 부분이 있다. 따라서 이 기준 자체를 놓고서도 이후 많은 파장이 발생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면 관계상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노동부의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왜 명문화되지 않은 근로조건은 차별시정의 대상에서 배제되는가
 
노동부는 차별적 처우가 금지되는 영역인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에 대해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서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근로기준법 제2조제5호)을 의미한다고 하고,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조건과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 등에 의한 근로조건이라고 하며, 이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조건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노동부의 판단으로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과 같이 규정화되어 있는 근로조건만을 차별시정의 대상인 것이고, 그 밖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근로조건은 근로조건이 아니라고 하는데, 하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적용하는 근로조건을 전부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은 현실에서 이와 같은 기준은 사실상 차별시정의 실효성을 반감시키는 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더군다나 어느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부가 명문화된 근로조건에 한해 차별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이 내용은 비교대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경우를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이와 같은 설정 자체도 비현실적이다.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조합 가입자체도 소위 “잡(job)"을 걸고 결심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한편, 상당수의 기업은 취업규칙을 작성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기 위해 정규직용 취업규칙과 비정규직용 취업규칙을 적절히 분리해서 작성·적용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에게 하나의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아래에서만 비교대상 정규직과의 차별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 것 역시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기준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둘째, 사업장의 분리는 비교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심사되어야 할 사항이 아닌가?
 
노동부는 ‘사업 또는 사업장’을 해석함에 있어 회사가 본사와 여러 지점, 지사 등으로 구분되어 각 사업장 별로 인사·노무·재정 및 회계 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고 서로 다른 단체협약,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등 각각의 사업이 독립적으로 영위되는 경우 사업장별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의 사업이 여러 개의 사업장을 분리하여 운영하더라도 어떤 근로자는 사용자의 분리운영 목적과 상관없이 다른 사업장에서 비교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A사업장의 식당 종사자와 B사업장의 식당 종사자와 같이 두 개의 사업장을 분리운영 한다 하더라도 수행하는 업무가 동일하면, 하나의 사업에 있는 동종 근로자를 선정할 수 있을 텐데 노동부가 마련한 기준에 의하면 이런 비교가능성 자체가 사전에 차단되어 버린다. 차라리 사업장 분리에 따른 비교대상선정의 문제는 노동위원회 심사 과정 중에 비교가능성 타진 단계에서 개별 사안의 특징에 맞게 심사하는 것이 더 원칙에 부합하는 기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셋째, 파견노동자의 차별시정을 위해 사업장을 결정할 때 인원수에서 파견노동자를 빼는 것은 합리적인가?

노동부는 파견법 상의 차별시정제도의 적용여부의 기준이 되는 상시근로자수 산정범위에 있어서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모든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하면서, 비교대상자 존재여부 및 사용자의 법준수 능력 등을 고려하여 직접고용 근로자가 5인 미만인 경우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사람이 5명 미만이면 파견노동자가 300명이 넘더라도 차별시정제도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말인데, 이 기준을 설명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노동부는 직접고용 근로자가 5명 미만이면 비교대상 근로자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차별시정제도의 적용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는데, 이러한 추정이 기준 수립의 방식으로 적절한 것인지 자체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와 같은 문제는 비교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다룰 문제이지 이런 이유 때문에 파견노동자를 5인 미만 산정원칙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나아가 사용자의 법준수 능력을 고려한다는 설명은 더더욱 놀라는 표현이다. 파견노동자를 얼마를 고용하던 상관없이 직접고용을 5인 미만으로 하게 되면 법준수 능력이 없다고 보는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고용인원의 수와 법준수 능력이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말은 또 무슨 논리란 말인가? 

넷째, 갱신이 예정된 기간제근로계약과 연봉제 근로계약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동부는 안내서에서 “근로계약기간이 근로계약의 종료가 아닌 동일한 임금조건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해석될 경우 기간제 근로계약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언뜻 보면 연봉제 근로자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동일한 임금조건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해석될 경우’라는 말의 의미를 보면 다른 조금 달라진다. 예를 들면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하긴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지난 기간동안 계속 근로계약을 갱신해 오면서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한 노동자의 경우이다. 이럴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근로계약을 함부로 해지하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럼 이러한 근로계약기간은 근로계약기간을 정하긴 하였지만 동일한 임금조건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데, 이럴 경우 차별시정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원칙은 기간제법이 명시하고 있는 ‘기간제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이 장기간 반복되는 경우 예상될 수 있다. 노동자는 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용자는 그 순간 이들 근로자들의 기간의 정함은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다며 차별시정의 의무를 피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차별시정의 대상이 되는 금전채권의 성격

노동부는 차별적 처우로서의 임금은 ‘임금’채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노동부가 스스로 만든 행정해석 뿐이다. 차별시정으로 확인된 채권의 성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일견, 3개월의 제척기간을 염두에 두고 차별시정의 신청이 있기 전 3개월간의 차별적 처우에 대한 금전보상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척기간은 권리의 소멸을 다루는 소멸시효와는 다른 규정이라서 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채권의 소멸시효를 정하는 민법의 규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임금채권이 아니다’라고만 말하고 있으면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차별시정제도는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평등의 원칙을 노동의 영역에서 구현하는 의미 있는 제도다. 더군다나 노동에 있어 상존하고 있는 차별의 철폐를 제일의 목표로 하는 세계 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노동부의 판단기준 안내는 차별시정제도가 많은 사례와 판례들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해온 지난날의 태도와는 달리 차별시정제도에 접근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매우 제한적으로 한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과연 이런 기준에 따른 차별시정제도가 앞으로 제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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