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선역으로 배치가 된 후, 노동자가 노력을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영업목표가 부여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과도한 목표를 부여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느끼는 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결국, 후선역에 배치된 노동자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낄 정도의 모멸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스스로 작업장을 떠나게 된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로 악용되고 있는 후선역직위 제도의 비인간성을 정연갑 금융노조 정책국장<사진>은 이와 같이 요약했다. 지난해 KB국민은행지부에서 금융노조로 파견된 이후, '진정성 있는 참신한 정책브레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 국장은 올해 금융노조 임단협 안건 채택 과정에서 후선역직위 제도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이다.

후선역직위 제도는 해당 직급 노동자의 영업실적 또는 점포단위 실적을 평가해, 최하위 20% 정도의 영업점포장을 후선으로 배치하고, 별도의 개인영업목표를 부여하는 제도다. 정 국장은 이 제도가 외환위기 이전에도 일부 부점장급에 대해 한정적으로 적용됐으나, 명목상 존재했던 제도라고 말한다.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적주의, 성과주의가 지배적인 기업문화로 자리 잡고,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기제로 후선역 제도가 새롭게 부활한다. 정 국장은 "후선역직위 제도는 각 사업장마다 운영의 차이는 있으나, 통상 6개월마다 평가를 통해 기존직급에서 받았던 임금을 축소시킨다. 결국 2년 정도 후선역에 배치돼 근무를 하면 기존 임금의 절반까지 삭감이 된다"고 강조한다.

후선역직위 제도가 상시적인 노동자 퇴출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정 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통상 후선역에 배치되면 업무추진역->상담역->관리역->대기역 등으로 순차적인 강등수순을 밟으면서 임금삭감을 당한다. 평균임금이 줄기 때문에, 퇴직전 3개월의 평균임금에 근거해 주는 퇴직금도 삭감된다. 그래서 통상 업무추진역 상태에서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후선으로 배치가 되더라도 일반적으로 노력을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영업목표가 부여되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과도한 목표를 부여하기 때문에, 후선으로 배치되면 노동자들이 받는 심적 부담감이 크다는 게 정 국장의 설명이다. 여기에 몇 년 동안 몸담았던 조직 내에서 결국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 찍혔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 인간을 위해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인간을 학살하는 기제로 제도가 작용하는 면을 후선역직위 제도에서 보게 된다고 정 국장은 설명했다.

또한 이 제도는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제도라고 그는 강조했다. "후선역직위 제도는 연간 평가를 통해 하위 20% 정도의 점포장을 후선으로 배치시킨다. 점포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퇴근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고, 점포장이 퇴근을 하지 않아 직원들도 눈치보기를 한다. 인사고과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점포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퇴근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특히 실적이 저조하다고 점포장이 판단하면, 직원들에겐 실적 압력이 가해지고, 이는 노동강도 강화로 연결이 된다."

후선역직위 제도는 점포 간 상대평가를 통해 하위 20%정도를 선정하기 때문에, 점포간 과다경쟁을 유발하게 되고, 이는 노동자들의 만성적인 시간외 근로와 휴일 근로를 발생케 하는 요인이라고 정 국장은 덧붙였다.

그래서 금융노조는 올해 단협 안에서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후선역직위 제도 및 후선역직위 제도 운영부서를 둘 수 없다고 요구했다. 정 국장은 "근로조건 저하 없는 후선역직위 제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후선역제도를 폐지하라는 것이 금융노조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9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