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대형 비행사고가 다시 대한민국에 일어날 것이다.

대한민국역사에 있어서 “실패한 민주주의의 대표정부”로 지칭되는 참여정부가 노동자를 배제하고 자본의 독주를 보호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인 “전국민의 비정규직 노동자화”를 위한 마지막 칼을 빼들었다. 가뜩이나 복수노조 3년 유예로 참여정부의 민주성을 스스로 부정하더니, 국민들은 동의하지도 않는 FTA를 퍼주기 협상으로 일관하다가, 거짓말로 포장하고 폭력적으로 관철 시켰던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이 미국의 노동, 환경기준과 충돌하면서, FTA를 전면 재협상해야 하는 국면까지 내몰리면서도,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의 마지막 절규처럼 “비정규직노동자의 대량생산체제”의 칼을 빼든 것이다. 시대착오라 해도, 이는 정말 한심한 시대착오이다.

해마다 비행사고가 발생하던 시절, 대한민국의 비행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이었다. 사소한 실수가 아닌 한마디로 말해 총체적 부실로 인한 무리한 비행, 위험한 비행 끝에 결과적으로 다가오는 참사였다. 항공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부터, 그것을 감시감독 해야 할 건설교통부, 현장의 일선 조종사나 노동자들까지 안전이란 회사의 이윤창출보다 낮은 목표였다. 비행안전 전반에 대한 총체적부실속에서 수도 없이 비행사고가 났지만, 정부나 경영자들은 뒷짐만 지고 원인도 모른 채, 조종사 죽이기에만 열중했고, 비행사고는 또다시 이어졌다.

그러한 후진국형 비행사고의 연쇄작용을 끊은 것이 바로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탄생이었다. 조종사노조의 설립이후 “연간비행시간제한 1000시간”과 “비행근무패턴의 변화” 등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무리한 비행, 위험한 비행의 가능성은 대폭 줄었고 현재는 항공사고에 있어선 중간수준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도 비행사고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제도적 장치들이 완전하게 확립된 것은 아니다. 후진국형 비행사고는 아직도 아프리카 지역이나 동남아 일부, 러시아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선진국형 비행사고의 원인은 “사소한 실수”에서 기인한 것이 많다. 무리하고 위험한 비행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에어프랑스의 콩코드기 추락사고의 예를 보면 활주로에 버려진 자그마한 타이어 조각이 연료탱크에 부딪혀 화재가 발생했고, 이는 수 백 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후 에어프랑스와 정부당국은 콩코드기의 취항을 금지시켰고, 수년간의 사고조사 끝에 위와 같은 사고결론을 도출했다. 어느 누구나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 있듯이 비행사고를 100% 막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항공사고의 비판과 분석을 통해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선진국형이든, 후진국형이든, 비행사고가 발생하면 치명적 인명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

특히 조종사들의 근무조건과 승급 등, 고용안정과 관련한 심리적 안정은 선진국형 비행사고를 줄이는데 대단한 작용을 한다. 즉 “사소한 실수”의 가능성을 대폭 줄이는 것이 바로 비행안전의 핵심요인인 것이다. 항공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이러한 이유를 일찍이 깨달았고 비행사고에 있어서 인적요인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기에 그들은 정부와 기업, 노동자 모두가 하나 되어 항공산업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사고발생시 징계 등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개념으로 인식했고 지금도 그것을 지키고 있다.

고용불안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불안은 비행사고가 발생하는데 무척 치명적인 요소이다. 조종사뿐만이 아니고 정비사, 객실승무원등의 심리적 불안은 비행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노동부가 대통령령을 통해 “기간제법 적용 예외 26개직군”을 발표한 것을 보면 이는 한마디로 인적과실을 높여 다시금 예전과 같이 참혹한 비행사고를 재현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비행사고를 막기 위한 현재 정부와 기업의 노력상태이다.

특히 이번 예외직종 분류의 기준이 된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 라는 표에 의하면 하위직군에서는 예외 없이 비정규직화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수준이나 학력 기준 등으로 짜여진 위 표에서 대한민국에서 못 배우고 가난하면, 평생 수모와 멸시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서글픔을 함께 알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작하자마자 이미 전경련과 경총 등에 의해 탈법화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전국민의 비정규직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대업(?)을 달성하겠다는 망상을 표명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규직 전환 예외직종의 기준이 된 근거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많이 배우고, 임금을 많이 받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일전에 비정규직법 관련 공청회에서도 어는 국회의원이 “월급 많이 받는 사람들 단체행동권 제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고 하여 깊은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다. 이 삐뚤어진 고임금, 고학력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도대체 무엇으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대통령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많이 배워서 석사나 박사학위를 따고, 일터에서 전문가가 되어 일하고 노력하는 것도 생산성을 높이고, 보다나은 생활을 위한 인간적 노력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정작 탈법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한 부패한 부유층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눈감아주고, 노동자가 많이 배우고, 월급 많이 받으면, 권리를 제한하고 고용불안을 가중시켜야 옳다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진 삐뚤어진 윤리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유화되고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시킨 영국철도에서 대형 참사들이 어떻게 발생했나를 분석해 보면, 이윤을 우선시 하는 정책이 어떻게 인명을 앗아가는 가를, 비극이 왜 발생하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 되었고 이로 인한 각종 범죄와 비극이 도를 넘어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표준직업분류” 표에 근거한 소위, 고임금 노동자들마저 이 비극에 끼워 넣고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를 내세워 참여정부는 노동자, 농민들과 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 드라마틱했던 대통령선거, 국민들은 그렇게 열망했건만, 노동자, 농민을 배반한 참여정부의 독선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어느 교수의 지적처럼 독선과 아집으로 노동자, 농민을 배제한 민주주의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우리 조종사 노동조합은 우리의 생명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몽매한 짓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에 비수를 겨누는 짓을 하는 줄도 모르는 이 짓을 멈추게 할 것이다. 우리와 애꿎은 국민들이 죽어나가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은 모르세 할 것이 뻔히 보이는 이 상황을 우리는 온몸으로 막아 낼 것이다. 그것은 내 생명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요 정당방위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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