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철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미조직비정규국부국장

작년 말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된 비정규법은 정부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화하는 악법이다. 모든 노동자들을 정부와 자본이 원하는 대로 비정규직화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개악에 개악! 한마디로 비정규 시행령을 통해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노동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4월20일 비정규 시행령 입법 예고 이후 우리 사무금융연맹은 ‘대국민 거리선전전’, ‘신문광고’, ‘사무금융노동자 결의대회’, 빗속 ‘자전거 선전전’ 등 비정규철폐와 비정규 시행령 폐기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하였다.

왜 우리 연맹이 비정규 악법 철폐와 시행령 폐기투쟁을 전개하였을까? 이는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이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음모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시행령의 본질과 문제점을 알려냄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만이 비정규법을 돌파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사무금융노동자 비정규직 전락 우려

5월17일 노동부는 4월20일 입법예고한 비정규법 시행령을 더욱 개악시킨 시행령을 확정 발표하였다. 기간제 특례 대상에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손해사정사, 변호사, 의사 등 16개 전문직 종사자도 모자라 항공기 조종사, 한약조제사 등 10개 전문직 종사자를 추가로 삽입하였고, 단시간 근로자(주 15시간 미만)와 대학교 조교도 포함하였다.

파견허용업종도 기존 138개 업무에서 4월20일 입법예고 시에는 191개로 늘린데 이어, 5월17일에는 고객서비스 사무종사자(콜센터), 배달, 택배 등 10개 업무가 추가돼 총 201개 업무로 근로자 파견을 확대하였다. 또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파견허용대상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번 비정규 시행령은 금융, 증권, 보험, 일반사무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기간제 예외조항의 더 큰 문제는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0(의회의원,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의 중분류 일반관리자(03)이다. 자칭 ‘일반관리자’라고 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예외조항에 포함됨으로써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또한 대분류 1(전문가)의 상위 25%에 속하는 노동자 역시 예외조항에 포함시키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가’ 양성을 주장하더니, 이제는 영원한 ‘비정규’노동자로 고착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파견 대상에서 공무원만 제외

또한 정부는 파견업체들에 날개를 달아주고자 파견대상을 전 산업분야로 확대하였다. 한국표준직업분류 (구)근로자파견대상업무에 존재하지 않았던 금융보험전문가, 금융전문가, 증권전문가, 금융상품개발전문가, 기타 금융전문가, 보험전문가, 사무지원종사자, 일반사무 지원종사자, 자료입력사무종사자, 컴퓨터 관련 (준)전문가 등을 추가한데 이어 고객서비스 사무종사자(고객상담 사무원 및 기타 고객관련 사무원)등을 노동부 시행령 확정안에 포함시켜 거의 모든 사무직 및 금융권 노동자들은 파견허용 대상이 되어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보존하기 위해 행정, 경영 및 재정 전문가 중 161(1611 정부정책 기획 및 행정 전문가, 16110 정부정책 기획 및 집행 행정 전문가)은 제외했다. 다른 직종에는 무제한으로 확대를 시도 하면서 ‘전문가’ 중 공무원 자신들만 예외로 두고 있음을 볼 때 이건 누가 보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견 수렴하겠다”는 약속 깬 노동부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비정규 시행령은 경총과 경제부처의 입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20일 비정규 시행령 입법예고 이후 노동부는 한 번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여론 및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 5월3일 공개토론회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경총 등 경제단체에 계신 높으신 분들(?)에게는 수시로 찾아 가면서, 이 땅 노동자들에게 목숨과 집결되는 중차대한 토론회에 노동부 장관은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연맹을 비롯한 비정규노동자들은 항의를 했고 결국 정부는 기약도 없이 토론회를 무산시켰다.

여론수렴기간 마지막 날인 5월9일 우리 연맹은 노동부를 항의 방문했다. 면담요청을 했지만 장차관은 나오지 않고, 근로기준국장이 대신해 참석하였다. 비정규 시행령 관련한 의견수렴 계획을 묻자, 그는 단칼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 연맹이 노동부를 대신하여 토론회를 개최할 테니, 노동부 장관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장관의 일정이 많아서 힘들다고 대답했고, 계속된 항의에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또 연맹 항의단이 ‘비정규 시행령’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근로기준국장은 계속 사무금융연맹에 문제가 되는 것을 요구하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우리 연맹은 비정규법 철폐를 위해 총력투쟁을 벌였다. 거리선전전과 자전거 투어 등 연맹 투쟁이 언론지상에 오르내리자 부담을 느꼈는지,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5월16일 여론을 수렴한다는 취지로 만나자는 요청을 먼저 해왔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우리 연맹 대표자들은 ‘비정규 시행령’ 폐기를 주장했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연맹의 의견을 요구했다. 이 장관도 근로기준국장과 마찬가지로 사무금융연맹 입장(무엇을 뺄 것인지?)을 달라는 것이었다. 한 두 개 씩 빼주고,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을 갈라치기하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는 아이처럼’ 떼를 쓰면 한두 개 빼주고,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확대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정규 시행령 폐기’ 하라고 주장하면 더 확대하는 노동부와 노무현 정부의 작태인 것이다.

면담이 이루어진 다음 날 정부는 재입법 예고도 거치지 않고 고객관련 사무종사자(콜센타 등)를 포함하는 등 파견허용대상 업무를 더욱 확대해 시행령 확정안을 발표했다.

경제논리로 경총과 경제부처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주는 ‘무원칙’하고 ‘무능’한 노동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5월3일 공개토론회에서 근로기준국장에게 “당신의 딸 중 한 명이라도 기륭전자에서 한 달 만이라도 근무해보라”는 비정규 노동자의 피울음 섞인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오는 7월1일 비정규법 시행으로 앞두고 현재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쫓겨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관료들은 애써 무시한 단 말인가?

비정규 시행령은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제·개정 돼야 한다.

비정규 악몽! 노동자 단결 투쟁으로 막아내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절반밖에 안 되는 임금과 승진 차별, 그리고 1년, 6개월, 3개월, 1개월, 0개월 계약 등 해고의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기간제 노동자들, 그리고 이 땅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이 말도 안 되는 차별에 신음하고 있다. 내 가족, 내 자녀가 기간제법으로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법이 있는 한, 우리들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지금 현재 정규직도 파견 노동자로 전락되어 저임금에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비정규 악몽에서 떨치고 일어나 전체 노동자가 대동단결하여 비정규악법 철폐를 위한 6월 대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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