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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깃발이 아니라 실천으로 광주정신 되살리자"
1980년 5월16일. 서울 지역의 ‘의혈청년’들의 ‘서울역 회군’ 다음날이며, 신군부의 군사적 대응 협박에 민주화 운동 세력이 움츠려들고 있던 날이었다. 그날 광주에서 횃불이 솟았다. 시민과 학생, 노동자들은 광주시내 주요거리에서 횃불시위를 벌이며, 군부독재에 경고를 보냈다. 이틀 뒤인 18일 신군부는 경고에 답했고, 항쟁은 시작됐다. 모두 알고 있듯, 1980년 5월의 광주는 결코 서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쟁이 없었다면, 2007년 5월18일 광주 망월동 거리에서 대통령이라는 분이 “나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라고 뽑힌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27년이 지난 2007년 5월19일 밤, 민주노총 조합원 1천여명이 다시 수백개의 횃불을 들고 광주 거리를 걸었다. 민주노총은 “5월 정신을 계승하며 한미 FTA를 막아내겠다”며 거리를 밝혔다. 노동자들은 군사독재 27년전 군사독재와 싸우듯, ‘통상독재’ 정부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횃불 집회는 광주 밤 시가지에서 장관을 이루었다. 시민들은 줄이어 걸어가는 노동자들의 횃불대열을 구경했고,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 중에는 손가락을 꼽은며, “올해로 28년 째인지, 27년 째인지”를 세어보는 모습도 보였다.

더 이상 광주에는 공수부대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군대뿐이겠는가. 이날 횃불 행진에 앞서 열린 ‘5월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선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에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것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폭행했다고 주장하는 한 늙은 청소부 노동자의 절규가 있었다. 음료 영업을 하는 한 노동자는 노조 만들겠다고 했다가 미행하던 경찰의 차에 매달려 400미터를 달려갔다고 했다.

이제 이날 모인 사람들의 상당수는 사회적으로 ‘귀족’이라는 놀림을 받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5월 광주에 우리 노동자들은 몇 명이나 모여 있나.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깃발로 한미 FTA를 막을 수 없다. 이제 다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구호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천으로 나서야 한다.”(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회사 중)

항쟁의 도시 광주에서, 매년 열리는 그 기념대회가 올해도 진행됐다. 모두가 움츠려들었던 80년5월16일 횃불을 들었던 그들처럼, 이틀 뒤 전남대 앞에서 무장한 군인에게 투석으로 저항하던 그들처럼, 노동자들은 한미 FTA와 비정규직 확산에 저항할 수 있을까. 내년에도 기념대회를 열릴 것이고, 오늘 한 말은 내일 다시 확인될 것이다.


아이는 저기 깃발이 앞서 간다며 팔을 잡아 끄는데 엄마는 망부석이다. 19일 오후 망월동 구묘역을 찾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노동열사의 묘를 살피고 있다.

















광주역 앞에서 열린‘오월정신계승 노동자대회’문화공연에, 대형 단일기가 등장했다
아이들은 소풍 나온 듯 마냥 뛰어다녔다. 아빠는 노동자대회에 오기 전, 망월동 묘역에서 가족과 함께 ‘소풍’을 즐겼다.













<사진=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1일

정용상 기자  ysjung@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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