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쟁점은 단연 민중참여경선제다. 이미 당은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경선방식을 당원직선으로 결정했고, 그에 따른 경선 일정을 확정한 상태.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전농, 빈민 조직 등의 조합원·회원에게 대선후보 경선 투표권을 주자’는 민주노총의 주장과 요청은 식을 줄 모른다.

민주노총은 14일 중앙집행위원회 결정을 통해 민중참여경선제의 도입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 최고위원회는 16일 민주노총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당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표현’을 통해 거부 입장을 밝혔고, 18일 당 대표가 직접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이를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는 이석행 위원장의 광주지역 현장대장정 일정 중인 19일 밤 전국철도노조 광주역지부 사무실에서 40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내내 이석행 위원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 문성현 당 대표와 18일 밤 만난 것으로 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문성현 대표의 요청은 나하고 독대를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통보든 설득이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만날 때도 광주지역본부장하고 부위원장하고, 셋이 같이 만났다. 문 대표는 ‘나는 최고위원 중 한사람이고 내가 결정을 바꿀 순 없지만 다시 논의는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소신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데, 대표는 왜 못 하시냐’고 했다. ‘새로운 대안이 없겠냐’고 물으시기에 ‘새로운 대안은 없다’고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에서 민주노총에게 민중참여경선제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 거꾸로 우리가 하겠다고 하는데 당이 못 받겠다고 하고 있다. 이건 개인 또는 조직들의 자기 전망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냐.”

“내부 주도권 다툼 때문에 못 받는 것 아니냐?”

-‘자기 전망’이라면, 내부 논리를 의미하는 거냐?

“그렇다. 내부의 헤게모니 쥐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문 대표는 26일로 예정된 중앙위 연기를 확답한 것이냐?

“정확히 말을 옮기면, 광주본부장이 ‘논의를 시작하려면 당 중앙위(26일 예정) 일정부터 미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대표 비서실장이 ‘그렇지 않아도 연휴가 끼어서 미룰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가 ‘미루는 김에 일주일 정도 미루지 말고, 이주 정도 미뤄서 충분히 논의해보자’고 했더니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 이미 당 경선은 3자 구도로 진행 중이다. 후보가 경선방식의 득실을 고민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내용은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경선인데, 방식을 바꾸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이미 시작된 것인가? 후보 등록하면 그냥 시작되는 것인가? 자꾸 형식논리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정치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각 주체들이 진실 되게 참여해서 승리할 길을 찾는다면 형식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민중참여경선제 요구 자체가 후보들의 득표전술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권영길 후보는 ‘길을 찾아보자’고 말하고 있고, 노 후보는 ‘당원 직선’을 주장해왔다. 심상정 후보는 ‘현 시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의도하던 안하던 후보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고, 민주노총은 개별 후보에 대한 ‘호불호’ 문제를 부담으로 안게 되는 것 아닌가?

“아직 후보등록 기간도 안 끝났다. 당원이 수만명인데, 누가 더 나올지 알 수 없다. 또 지금이 선거운동 기간 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직 그것도 아니다. 그리고 자꾸 앞서 나가지 말라. 민주노총도 그렇고 민주노동당도 그렇고 그동안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우기 이전에 다 대상화 시켜왔다. 내 주장은 그런 운동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이다. 찍어질지 안 찍어질지 모르겠지만 소신을 가지고 싸우겠다는 것이다. 자꾸 앞서 나가면서 후보들의 유불리를 따지는데,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집권으로 도약하는 길을 찾기 위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 형식에 매몰돼서 진짜 중요하고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민주노총 행보에 대한 세가지 부정적 시선'

이 즈음에서 3가지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민중참여경선제 추진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오만론’, ‘흑심론’ 그리고 ‘민폐론’이다.

- 최근 이석행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지분을 이용해서 민주노동당의 최고 의결기구가 이미 결정한 문제에 ‘오만하고도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나는 압력을 행사하려고…, 아니 이렇게 보자. 언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의견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받아 준 적이 있었나? 민주노총의 의견을 중심으로 논의해 본적은 있었나? 철저히 민주노총의 의견을 무시해왔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지금 이렇게 한다고 해서 최고위원들이 압박을 받고 있냐? 후보들이 압박을 받고 있나? 그리고 지금 이걸 압박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완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에 따른 충정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압박이라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

- 다음 우려는 이석행 위원장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견해다. 당 중심성을 훼손해서, (정치지형 오른편의) 저쪽에 이롭게 하려는 것 아니냐? 많이 나간 견해 중에는, 민중참여경선제는 ‘연립정부’ 구성을 의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나도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내 생각의 처음부터 끝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를 알면 그렇게 말 안할 것이다. 그런 일을 할 거면 차라리 난 깨끗하게 탈당한다. 하지만 탈당하지 않을 것이고, 당원으로서 당을 강화하기 위한 의무를 다할 것이다.”

-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누구 책임이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선을 앞두고 당과 민주노총의 밀접함을 더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계급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 큰 문제다. 그리고 당과 민주노총 둘을 두고 누가 더 여론에 좋은지 나쁜지 조사해본 적이라도 있나?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민주노총이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가질 계급성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 쟁점으로 당 지도부와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밀고 갈 것인가?

“이걸 마찰로 보면 안 된다. 내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은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있고, 지금도 무시하고 가고 있다. 내 생각에서 올바른 것을 주장하고 있고,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도 있기에 관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꾸 앞서 나가면서 내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내가 그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경선방식 바뀌지 않으면 그때 가서 판단한다”

- 만약 당이 당원직선을 끝까지 고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이 문제에 있어서 비타협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길게 멀리 보면서 가기 위한 것이다. 언제 당이 결정한 것을 가지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렇게 대든 적이 있었는가. 나도 욕 안 먹으려면, 가만히 두면 된다. 가만있으면 욕 안 먹는다. 당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판단을 당이 한다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다.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

- ‘당이 안 받으면 민주노총만이라도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도 있는데.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현장 조합원들이 잘 모르던 시기였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 말이다. 그리고 그러려면(민주노총 자체로 투표를 하는 것)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내 진의를 파악한 조합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거 해야 한다’, ‘그거 왜 안하냐’고 말하고 있다.”

- 대선을 앞두고 진보대연합 역시 논란꺼리다. 갈림이 있다. 하나는 ‘당은 아직 충분히 진보진영을 모으지 못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전농의 지지를 끌어낸 것으로 노농연대가 구성됐고,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연합할 대상이 없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 맞다고 보는가.

“나는 아직 좁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논리에 빠져서 축소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다. 시민들에게도 민주노총을 사랑해달라고 호소해야 하며, 당도 마찬가지다. 또한 운동을 고민했던 사람, 전망이 없다고 생각해 떠났던 사람들도 다시 모야야 한다. 세를 확장해야 한다.”

- 진보대연합을 하자는 분들이 직면한 비판 중 하나가 ‘도대체 누구랑 하자는 것이냐’는 거다. 현실적으로 대상을 찾기 어려운 것 아닌가.

“가능하다면 사회당도 설득해야 하고, 당을 부정하고 있는 몇몇 운동단체들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 단체 중 함께 할 수 있는 단체는 찾아가고 설득해서 참여시켜야 한다.”

-대체로 당의 ‘왼쪽’에 대한 진보대연합은 ‘노력해야 한다’에 논란의 여지가 적은 것 같다. 하지만 ‘오른 쪽’의 경우는 좀 다르다.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는가.

“시민사회단체들, 건전하고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를 끌어 들여서 안고 가야 한다.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 표 찍고 만족하고, 그동안 그렇게 좁혀진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이 즈음에서 툭툭 던지듯 실명과 단체명을 거론하며 질문을 했다. 거명된 분들과 조직은 그분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2007년 현재, 진보대연합 논쟁의 현장에서 자주 거명되는 분들이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지면에 적는다.

- (FTA 반대하며 단식했던) 천정배 의원은 어떤가?

“난 거기까지 안 나갔다.”

- 그럼 (또한 FTA 반대를 주장하는) 김근태 의원은 어떤가?

“거기까지 안나갔다니까, 사람 이야기 하지 말자. 난 시민사회단체를 이야기 했다.”

- 그럼 (개혁세력의 결집을 표방하는) 미래구상은 어떤가?

“그건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다.”

“수학공식이 아니다, 중요한 것 놓치고 있다”

- 민중참여경선제와 진보대연합은 현실에서 모순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폭 넓은 배타적 유권자들이 후보를 선출하고 나중에 덧붙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후보전술은 당연히 좁아지고, 정책연대 역시 좁아질 것 같다.

“선거다. 선거를 수학공식 보듯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외도 있고 변수도 있다. 형식적인 틀에 박히게 하는 게 맞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 하지만 선거법 문제도 그렇고, 대중조직의 결정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고, 민중참여경선을 하면 밖으로는 폭이 좁아지는 것은 사실 아닌가.

“지금 그걸 걱정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거다. 운동의 질적 변화를 위해선 전체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참여 속에서 책임지고, 책임에 대해 평가도 하고, 이게 기본이 돼야 한다. 작은 걸음이라도 한걸음씩 함께 가야 한다. 한미 FTA 막자고 하는데,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비정규직 다 싸워야 한다고 말만하지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대중이 객체화 됐다. 현장에서는 민주노총 중앙 지침을 지침으로 보지도 않는다. ‘뭐 또 하는 구나’ 그러고 만다. 이런 상황을 바꿔나가야 한다. 대중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설려면, 배타적지지 결의한 사람을 포용하고 주체적으로 나서게 해야 한다. 그걸 왜 못하냐?”
(답답한 듯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 벽쪽으로 손짓을 했다)

“여기 이 조합 사무실에도 민중참여경선이 되면 예비후보들의 포스터가 붙을 것이다. 공장에도 붙고, 버스에도 붙을 수 있다. 그 열린 공간을 다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그게 민주노동당을 위해 옳은 것이냐? 그 공간을 다 주겠다고 민주노총이 말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저의가 있다, 나쁜 놈이다,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 사실 어렵고 한심하다.”

- 못 다한 말이 있는가?

“가슴을 열고 진정성을 가지고 토론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그림 그려서 나오는 뒷말은 그만 듣고 싶다. 내 의견에 반대한다면 당당하게 이야기 해 달라. 꼭 내가 아니더라고 민중참여경선제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모여서 토론회라도 열었으면 좋겠다. 당에서 그런 거 잘 하던데, 이 문제로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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