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노동자통일대토론회 뭘 남겼나

남북노동자대토론회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대표들이 만나 통일운동 방향과 실천 과제를 폭넓게 논의한 자리였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실 6. 15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정부 당국자간 대화가 주를 이뤄왔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는 6. 15 공동선언의 실천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자가 아닌 민간의 부문단체로선 최초로 일정한 합의를 이뤄낸 행사로 평가된다.

특히 토론회 결과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 지형에서 6. 15 공동선언의 의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남북 노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가 등에 대해 참석자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그 주요내용을 공동호소문으로 공식 천명했다는 사실이다.

한국노총의 이정식 대외협력본부장은 "공동호소문은 남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떤 원칙과 방향에서 통일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인가 등의 좌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동호소문에서는 "6. 15남북공동선언이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을 반영한 민족자주선언이자 통일선언"이라는 점과 남북의 노동운동단체간 지속적인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통일운동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역할과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남북의 노동자들이 분단 고통의 원인 제공자인 '외세'를 배격하는 것은 물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 15공동선언을 공동의 강령으로 삼아 조국통일의 '기수', '선봉'이 돼야 한다고 호소문은 밝혔다. 이는 남북의 노동자들이 통일운동과정에서 우선 극복해야 할 대상과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 그리고 노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특히 외세 배격과 관련해 "온갖 범죄행위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그 피해보상을 받아"낼 것을 방법론으로 제기한 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 노근리 양민학살과 매향리 사격장 등 주한미군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호소문에서는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대결과 분열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철폐"해야 한다고 밝혀, 그 동안 남쪽 시민사회단체들이 줄기차게 제기한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간접어법으로 표현했다.

더불어 "조국통일에 이로운 일이라면 계급과 계층,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초월해 손잡자"며 남북노동자 뿐 아니라 통일운동을 벌여나가기 위한 사회 각부문의 연대와 단결을 강조했다.

한편, 노동계 안팎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대목인 왜 토론회 결과가 공동호소문의 형식으로, 그것도 상당히 '완곡한' 표현법으로 작성됐는지에 대해 양대노총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는 북한 직총 관계자들의 노력과 배려"라고 말했다.

호소문이란 형식과 관련해 민주노총쪽 참석자는 "직총 관계자는 회의(협상)나 대회, 그리고 토론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양식이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다"며 "회의의 결과는 합의문, 공동보도문의 형식으로 나오고, 대회는 결의문으로 나오지만 토론회는 말 그대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공유하는 자리인 만큼 좀 더 느슨한 호소문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완곡한 표현기법은 6. 15선언 이행과 관련해 당국자간 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번 토론회가 '돌출변수'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민감한 문제를 쟁점화해 논란거리가 만들지 않겠다는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사실 남쪽의 양대노총간에도 통일문제와 관련해선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토론회에서 채택된 호소문이 민주노총 관계자의 지적처럼 "남북노동자들의 통일운동의 장전(章典)이라고 할 만하다"는 평가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호소문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느냐의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참가단체들이 각자의 조직 내에서 얼마큼 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양대노총과 북한의 직총은 이 호소문을 소속 연맹 기관지 등에 전문 게재하기로 합의했다.

* 시급한 노동자 통일운동의 과제는

올해 노동계의 대외 활동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반미' 집회와 통일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와 인원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연초 불거진 매향리 미군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는 현장 집회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물론, 단위노조까지 조직적으로 결합한 것은 물론,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는 미군기지 앞 시위 현장에서 파업 중인 노조 단체의 깃발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노총의 경우는 창립 이후 최초로 기록되는 '반미' 투쟁인 SOFA 개정 촉구집회를 지난 5월 용산 미 8군사령부 앞에서 갖기도 했다.

또한 지난 8월 한양대에서 치러진 통일대축전 행사에 당시 파업 중이던 사회보험노조 노조원 7,000여명을 포함, 조직적 참가를 결의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 1만여 명이 참여한 것도, 이전의 8월 통일행사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는 6. 15선언이 발표되면서 매년 정부와의 충돌이란 악순환을 거듭했던 8월 통일행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외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그 동안 분열을 거듭해 온 민간 통일운동 진영이 어쨌든 한자리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하면서 민주노총의 선택을 쉽게 만든 측면도 있다.

이런 여건에서 민주노총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지난 8월 통일 행사의 기조와 연대의 폭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지난 4일 준비위원회가 발족된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운동연대(통일연대)'에 양대노총이 나란히 함께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정부 당국과 마찰을 거듭해 온 범민련 남측본부나 전국연합 등 '전통적' 민간통일운동 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통일연대에 당초 민화협에 들어있던 한국노총이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아직 통일연대 참가에 대한 조직적 결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시민단체까지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진 못하지만 6. 15선언 이후 민간통일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한국노총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올해의 양상에 대해 민주노총의 김영제 통일국장은 "노동계의 통일운동이 그만큼 양적이나 질적인 면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통일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전담 인력 확보와 단위노조까지 이어지는 정연한 조직체계의 구축, 간부 및 노조원 대상 통일교육의 일상화, 통일운동에 대한 사업 우선순위 재고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중에서도 당장 시급한 게 바로 전담 인력 문제다.

양대노총, 특히 한국노총의 경우 불과 한달 전에 사무총국 차원의 전담기구인 통일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당초 정치위원회 업무를 담당하던 간부들이 실무를 겸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속 연맹이나 지역본부 차원의 전담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민주노총은 대부분 연맹과 지역본부에 통일위원회나 통일사업 담당자가 있긴 하지만, 아직 4개 연맹에는 전담 간부가 없다. 또한 대부분 연맹과 지역본부의 통일사업 담당자들은 정책 생산자의 역할에 주력하고 있어, 대중 접촉면이 넓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 한국노총은 조만간 별도의 통일사업 전담자를 세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관계자는 "본부 산하에 통일국장을 별도로 내오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내년도 통일사업의 조직적 측면에선 지금껏 정책 생산에 주력했던 통일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김영제 통일국장은 "현장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적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6. 15공동선언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발맞춰 비약해야 할 노동계 통일운동을 이제는 준비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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