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마트에서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근무하는 김민주(가명·33세·여성)씨는 출근 전 친정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겨놓고 출근길에 나선다. 출산 후 일자리를 찾던 김씨는 정규직 취업이 쉽지 않자 A마트 계약직 계산원으로 1년 전 입사했다. 출산 전에는 B마트 매장관리 정규직 주임으로 근무했지만, 이 같은 경력이 재취업에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근무시간 내내 계산대 앞에 서서 근무하는 김씨는 ‘회사가 복리후생 차원에서 계산대 앞에 의자라도 설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지만,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는 회사가 이 같은 바람을 들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C백화점에 파견돼 식료품을 판매하는 최유정(가명·31세·여성)씨는 ○○식품 회사에 고용된 협력업체사원이다. 백화점 정규직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받고,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한 시간 근무하지만, 임금이나 휴일 등 근로조건은 차이가 난다. 노조에 가입해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협력업체 직원을 받아주는 노조는 없다. 생계를 위해 백화점에 나가고 있다는 최씨는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와 최씨의 사례는 유통업체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고민의 일부다. 서비스연맹(위원장 김형근)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상태와 의식 변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통업계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노동자들의 직장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이직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현대백화점, NC백화점, 롯데미도파백화점, 홈에버, 리베라세이브존, 세이브존, LOK 등 7개 사업장 소속 직영사원 및 협력업체 사원 32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지난 2003년 같은 주제로 진행된 조사와 비교 분석도 이뤄졌다.


휴일 늘어 근무시간 줄어든 대신 잔업 증가

유통업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32세, 절반은 미혼이며, 80%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인한 이직률이 높고, 주40시간제 도입 이후 평균 휴일이 늘었지만 잔업이나 초과근무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통업 노동자 전체의 평균근속년수는 다소 증가(2003년 1.8년→2006년 2.3년) 했으나, 정규직의 평균근속년수가 2.7년인데 반해, 비정규직의 평균근속년수는 1.7년에 그쳤다.

유통업 종사자들의 노동시간은 2003년 41.6시간에서 2006년 33.7시간으로 다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통업 종사자들의 평균 휴일 수 증가(2003년 4.6회→2006년 7.3회)에 따른 결과다. 다만, 잔업과 같은 업무준비 및 마무리시간은 2003년 7.6시간에서 2006년 7.9시간으로 다소 증가했고, 평균 초과근무 회수 역시 2003년 3.3회에서 2006년 3.5회로 늘어났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건 격차 심화

유통서비스 부문 노동시장은 이동성과 대체가능성이 높다는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유통업 노동시장의 이질성, 저임금, 장시간노동, 복리후생 등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조사 결과, 유통업 노동자들의 일과 직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임금, 노동시간, 담당업무, 업무 스트레스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부정적 의견이 높았고, 특히 2003년 조사 당시 긍정적 의견이 많았던 고용불안, 노동강도, 인간관계 스트레스, 복리후생, 자아실현, 비전 등 항목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할인점보다 백화점 노동자들이, 여성보다 남성이 노동조건과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유통업 노동자들은 복지제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직원 휴게 공간 마련(84.8%) △매장근무자를 위한 의자 도입(74%) △작업장 동선 개선(61.1%) △일요 휴무 도입(58.9%) △계산근무자를 위한 의자 도입(59.7%) 등으로 조사됐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4대보험 등 법정 복지혜택 수혜율은 2003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고용보험은 2003년 83.3%에서 26.1%로, 산재보험은 62%에서 24%로, 건강보험은 71.4%에서 26.9%로, 국민연금은 84.7%에서 26.2%로, 퇴직금은 80.2%에서 20.6%로 각각 적용률이 크게 낮아졌다. 이 밖에 초과근무수당, 생리휴가, 출산휴가 등의 적용률도 크게 낮아졌다.

기업 내 복지혜택 수혜율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 유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업 내 복지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하계휴가 및 휴가비, 식비, 명절 상여금, 병가, 건강검진 등의 항목은 20% 내외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정규직 '노조 가입 의사' 높아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근로조건 차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의사를 높이고 있다. “노조에 가입해 노조활동에 참여 하겠다”는 응답의 비율이 2003년 21.65%에서 2006년 42.7%로 크게 올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 노조에 편입되는 방식을 선호(2003년 69.3%→2006년 80.7%)하고 있으며, 매장 내 파견돼 근무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소산별 형식의 ‘유통업계 노조’를 선호(2003년 46.7%→2006년 50.6%)했다.

한편, 유통업 노동자 87%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특히 유통업체 직영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업무량 및 노동시간, 임금 등을 차별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유통업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 상급단체(서비스연맹)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비스연맹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직접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단위 노조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2003년 25.6%→2006년 28.5%)와 ‘임금 인상 등 차별철폐’(2003년 25%→2006년 28.5%)를 주문했다.
 
"감시 받고 싶지 않다"
유통업 종사자 '모니터링' 제도 부정적으로 인식
유통업체들은 고객 서비스 제고 차원에서 각종 모니터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모니터링 제도가 노동자를 감시,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서비스연맹의 조사 결과, 7개 유통매장 종사자 중 95.9%가 ‘모니터링 제도가 존재한다’고 답했고, 58.45의 응답자가 ‘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유통업 종사자들은 △감시받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40.7%) △모니터링 제도가 서비스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며(30.3%) △모니터링 제도로 인한 조치가 불이익(재교육, 시말서, 감봉)으로 이어진다(12.5%)며 모니터링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유통업 종사자들은 매장 내 동료들과 친밀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에 바빠 교류할 시간이 없고(38.2%) △근무시간이 서로 달라 만나기 어렵다(19.8%)는 이유에서다.
 

유통업 종사자의 60.9%가 2명의 자녀를, 31.6%가 1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미취학 자녀의 탁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가족이나 친지에 자녀를 맡기거나(49.2%) △사립탁아시설에 맡기는 것(23.7%)로 조사됐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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